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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이해 분위기상 뚝 노란색이었다. 이해가 다르게영덕군 지품면에서 1000평 규모로 복숭아 농사를 짓는 박두용(남성·76) 씨가 1일 불에 타버린 컨테이너 대기실에서 피해 상황을 토로하고 있다. 영덕=이용경 기자


[헤럴드경제(의성·안동·영덕)=이용경·이영기 기자] 경북에 불어닥친 유례 없는 대형 산불. 불은 꺼졌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주민들의 고통은 이제부터다. 그들은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했다. 생계와 일상의 회복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한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온나라가 걱정했지만, 주민들은 영남의 처지가 금세 잊혀지지 않기를 바랐다.
1일 헤럴드경제 취재진이 찾은 경북 영덕, 청송, 안동, 의성 일대는 대형 산불이 휩쓸고 간 흔적들로 가득했다. 화마로 자동차대출금리 뒤덮였던 마을 곳곳에서는 남김 없이 타버린 집 수십여 가구와 함께 검게 그을린 사과, 복숭아 나무들이 주인을 잃은 채 방치됐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군 내 체육관과 마을회관 등지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이들 대다수가 60대 이상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경북 사과·복숭아·고추·마늘 농가 ‘초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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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일대 마을이 불에 탄 모습. 안동=이영기 기자


유례 없는 대형 산불로 경북 일대에서는 사과와 복숭아 농사 등을 하는 농민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안동 길안면 임봉산 중턱의 사업 한 면에 빼곡히 들어선 사과 과수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수원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는 겉보기에도 매마르고 꽃눈까지 말라 비틀어진 상태였는데, 그 주변에는 화염을 견디지 못하고 계곡처럼 녹아내린 플라스틱 대형 물탱크의 흔적도 눈에 들어왔다.
경기 성남에서 자영업을 하다 귀농한 이재연(60) 씨는 “사과나무(1800그루) 대부분이 고사하며 약 서브프라임다큐 2억4000만원 정도 손실을 입었다”며 “올해는 작물보험으로 살 수 있겠지만, 내년에는 정말 살 길이 없어 막막하다. 올해 5억5000만원을 들여 과수원을 처음 매입했는데 이렇게 바로 손실을 입어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불길이 번질 당시 밭에서 나무를 지키려 했던 당시 상황도 회상했다. 그는 “물 뿌리던 고무호스가 녹아 유니온저축은행 버릴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며 “산이 서서히 불탄 게 아니라 한 순간에 산 전체가 확 불 탔다”고 했다. 이씨도 결국 산불이 거세지자 현장에서 대피했다고 했다.



이재호(71) 씨가 1일 열 피해를 입은 사과 나무가지 피해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가지는 초록색이 아니라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안동=이영기 기자


6년간 사과 농사를 지은 이재호(71) 씨의 피해 상황은 더 심각했다. 670평 규모 밭에서 150그루의 사과나무를 소유한 그는 물 탱크마저 산불에 고장이 난 탓에 나무들이 고사하는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는 “화재보험도 따로 들어놓지 않아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됐다”며 착잡해 했다. 이씨는 “매년 사과 400박스 정도를 2500~3000만원선으로 판매하는데, 올해는 산불 피해를 입은 사과나무의 꽃눈 상태 보니까 한푼도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청송군 진보면 황장재 어귀에서 남편과 과수원을 하는 A(65)씨는 불에 타버린 사과나무들 사이마다 고추 모종을 심고 있었다. A씨는 “피해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며 “집 다 탔지, 50평짜리 창고랑 기계실도 탔지, 사과나무도 다 타버려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오후 5시 28분쯤 이웃 친구가 ‘청송 파천면에 불이 붙었다. 난리가 났다’면서 전화를 해와 밖으로 나와보니까 순식간에 앞산 뒷산에 불이 붙어 남편과 황급히 영덕군 체육관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영덕군 지품면에서 1000평 규모로 복숭아 농사를 짓는 박두용(76) 씨도 타버린 복숭아 나무를 보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10분 만에 이 일대가 전부 화염에 휩싸였다. 나무들이 불에 타서 꽃잎이 말라붙었다”며 “복숭아 열매를 맺을 확률은 낮아 보이지만, 그래도 있어 봐야 한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운이 좋아 복숭아를 수확한다고 해도 올해 산불 때문에 상품 가치는 낮게 측정될 것”이라며 “추정치로 대략 3000만원 정도의 피해를 볼 것 같다”고 했다.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의 한 마늘 밭. 불똥으로 타 비닐이 다 벗겨진 마늘 밭 뒤로 가옥 한 채가 불에 타있다. 의성=이영기 기자


마늘 생산지인 의성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단촌면은 마늘 농가 피해가 심각했다. 마늘 농사를 짓는 농가가 주로 모인 단촌면 초입의 작은 마을은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됐다. 인적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20년 째 마을 농사를 지어온 정강래(75) 씨도 앞길이 막막해졌다. 당장 1600평 마늘 밭 중 절반이 타버렸다. 초록잎이 가득해야할 밭에는 붙에 타 갈색으로 변한 마늘 잎이 반을 넘었다. 정성스럽게 싸놓은 마늘 밭 비닐도 불똥이 튀어 누더기처럼 됐다. 그는 “800평 정도 마늘이면 2000만원 정도다”라며 “이걸 팔아서 가을 농사도 짓고, 내년 농사도 준비해야 하는데 당장 걱정이 크다”고 한숨 쉬었다. 그러면서 “20년 만에 이런 피해는 처음이다”라며 “그래서 작물보험도 없는 상태라 정부 보상 말고는 어떤 보상도 없어서 눈앞이 캄캄하다”고 토로했다.

상인·한우 농민 등도 산불 피해
“지원 절실해…잊지 말아달라”




영덕군 지품면에서 남편과 함께 한우 55마리를 키우는 전모(여성·72) 씨는 산불에 놀란 소들이 물을 먹지 않자 연신 “걱정된다”는 말을 쏟아냈다. 경북=이용경 기자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덕군 지품면에서 남편과 함께 한우 60마리를 키우는 전모(72) 씨는 불에 탄 집과 우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연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불이 확산하며 소 한 마리가 죽고, 4마리는 우사(牛舍) 밖으로 뛰쳐나가 실종됐다고 한다. 산불 사태에 놀란 소들은 지금도 여전히 물을 잘 먹지 못했다. 다행히 산불 피해를 입지 않은 큰집에서 잠시 대피해 생활하고 있다는 전씨. 그녀는 물을 먹지 않는 소들의 모습에 하염없이 “걱정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씨는 “면사무소에서 어느 정도 산불 피해를 입었는지 적어내라 하길래 일단은 냈는데, 당장에 집이 100% 타버려서 너무 힘들다”며 “우리가 키우는 소는 마리당 400~500만원 정도로 거래하는데, 총 5마리가 죽거나 사라져서 피해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9년을 빼놓고는 화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피하고 이튿날 집에 다시 오니까 전부 불에 타버렸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며 “다행히 큰집에서 배려해줘 잘 지내고 있지만, 형편이 너무 힘든 상황이다. 지자체나 국민들의 지원과 관심이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청송군에서 수석을 판매하는 권태암(75) 씨도 1일 불에 탄 상점에서 파손된 수석들을 가리키고 있다. 경북=이용경 기자


청송군에서 수석을 판매하는 권태암(75) 씨도 불에 탄 상점과 기계를 보며 망연자실해 했다. 작품 하나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수석들이 전부 불에 타 부서지거나 그을렸다. 돌을 자르는 기계마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권씨는 “돌 자르는 기계부터 해서 수석의 원재료인 꽃돌마저 다 불에 타 쓸 수 없게 됐다”며 “피해 규모는 최소 수억 원이지만, 지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현재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명 중이라는 권씨는 “꽃돌에 대해서도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서 피해액 감정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면사무소에 가보니 이런 원재료 돌은 피해대상으로 산정하지 않는다며 피해접수를 받지 않았다”며 “수천만원을 넘는 돌들이라 일단 면사무소에서도 서류는 받아주기는 했는데 꼭 피해에 상응한 적절한 보상책을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북 일대에서 산불 피해로 집을 잃은 주민들은 인근 마을회관이나 체육관, 청소년센터 등지로 대피한 상태다. 일부는 친척 집에 몸을 의탁하기도 했지만 생활 기반을 잃은 이들에게는 앞으로의 삶이 더 큰 걱정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