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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평화재단은 3월 새마을금고인터넷뱅킹 20일 동아닷컴 회의실에서 트럼프 발 국제질서 개편과 우리의 대응책에 대한 전문가 초청 및 연구위원 간담회를 가졌다. 인남식 국립외교원교수, 박재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가(왼쪽부터) 토론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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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현인택 전 통일부장관)는 20일 동아닷컴 대회의실에서 중동 전문가 및 사내외 연구위원 초청 간담회를 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국제질서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점검하고 우리 대응책을 모색했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행보에 철저히 대비하고 중견국으로 저축은행 학자금대출 우리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박재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나다 순)가 참석했다. 사회는 김영식 동아일보 재단협력위원장이 맡았다.
김영식=트럼프 2기 집권 50일이 지났다. 취임 10 청주학자금대출 0일 동안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동안 세계질서에도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박재적=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확실하다. 신고립주의는 지켜볼 대목이다. 그동안 미국은 서구와 함께 중국과 대립하면서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유럽과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충분히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신협파산 유럽과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을 심었다. 지금 유럽은 ’자강론‘을 이야기한다. 많은 국가들이 방위비를 GDP의 2~3%로 맞추고 호주도 방위비를 올리고 있다. 미국이 국제 질서를 리셋하고 자유주의 질서의 리더로 나서는 일정한 리셋 기간이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신고립주의 측면으로까지 보기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
김영식=미국은 4월 2일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동맹국은 물론 우호국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 경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 정치력 부재의 우리나라가 막무가내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구연=트럼프 2기 시작과 함께 한 관세 전쟁은 관세 뿐 아니라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은 지금의 국제질서에서 미국 국민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포퓰리즘 측면도 있다. 이 결과로 벌써부터 미국 내 물가가 오르고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경고한다.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는 회의적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킨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뮌헨의 최근 안보회의에 참석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총리가 아니라 극우 정당지도자를 만났다. 이런 선동이 자유민주질서의 생태계를 흔들고 있어서 큰 문제다.
김영식=미국은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면서 관세 또는 비관세 장벽을 둔 국가를 ‘지저분한 15개국’(dirty 더티 15)으로 지칭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손보겠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존 질서를 유지하던 가치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마무리 협의 과정을 보면 기존의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관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박재적=기존과는 다른 방법이다. 미국은 러-우 휴전을 중재하면서 일극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기존과 다른 실용적 접근이다. 최근 방한한 케빈 매카시 전 미국 하원의장은 “지금 언론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시각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휴전 아니면 종전과 정전 과정에서 나토군이 주둔하거나 미군이 주둔한다고 했을 때, 과연 러시아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러 나오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우크라이나에 심어놓으면 러시아가 재침공하지 못해 방어가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자체로는 궤변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게 지금 미국이 세계의 사건들에 접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박재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영식=기존과 다른 실용적 접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박재적=기존에는 국제적인 절차와 관행을 따르거나 미국이 지도적 위치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제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부분에 힘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가장 실용적인 것은 대선 공약 사항이던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 관심이 인도-태평양으로 넘어왔는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유럽에 발목을 잡히면 중국 견제에 미국의 자원을 투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러시아도 끌어들이고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 안보 공약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정구연=NATO에 대해서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감정을 표출했다. 최근 국방부 개혁안에 따라 미국이 4성 장군 자리인 유럽 통합군 사령관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트럼프는 얼마 전 “나토는 미국을 갉아먹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을 정도다. 미국 의존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NATO와 EU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 여지가 많지 않다 는 미국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김영식=지금까지 미국의 숙적은 러시아였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다. 언제부터 미국이 중국을 적대적 상대라고 생각했을까.
정구연=미국내 중국의 위협론은 2000년대 초반부터 나왔다. 남중국해 충돌 문제 등이 나오는 가운데, 특히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두 개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군사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내 국가주의 강화와 자신감 상승이 변곡점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활동 증가 등이 중첩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식= 중국은 함정 건조와 보유 측면에서 놀라운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러시아에 대한 위협 감도가 미국에서 낮춰진 결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 문제에서 미국이 러시아 편을 드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재적=상대적 국력 상승의 문제인 것 같다. 클린턴 때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고 서구 질서에 진입시키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가 되었다. 반대로 러시아는 국내 정치적 문제로 경제가 상당히 침체되어 있어 미국이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영토적 야욕도 러시아 논리가 어느 정도 타당한 측면도 있다. 러-우 전쟁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다.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정서적 야욕이나 남중국해 분쟁 등은 결이 달라 위협을 느끼는 강도는 훨씬 다르다.
김영식=중동을 살펴보자. 중동은 국제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미국은 한반도 보다 중동을 항상 우선시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제안이었다. 지금은 다시 가자지구에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중동 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남식=중동은 오히려 예측하기가 조금 쉽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 대외 정책에서 굉장히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믿는 분야가 중동이다.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강고한 우정을 드러냈다. 단순히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전통적 미국 남부의 보수 기독교 표를 던지게 하는 지지 기반을 만들었다. 또 하나는 2020년 ‘아브라함 협상’이다. 1978~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과 맞먹는다. 4개 아랍국과 이스라엘 간 수교를 자기가 했다고 하는 상징성이 크다. 전통적이고 고질적이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세기의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분리 독립이라는 구체적 안건을 냈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무산되었다. 또한 트럼프는 이란 제재 복원(snapback)을 통해서 위험한 국가를 자기가 막아냈다고 말한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이를 돌리려다가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에 경사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최대의 압박을 계속할 것이다. 이란의 수족을 끊어 항복을 하든지 체제 변화를 하라고 유도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를 이루게 된다면 엄청난 업적이 될 것이다. 집권 후반기까지는 지금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이 직접 들어가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기 어렵다. 미국 내 반대는 물론이고, 국제법적으로 ‘선주민 강제 이주’는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그런 부담 보다 트럼프는 상상할 수 없는 아젠다를 던진 것이다. 그게 먹혀서인지 3월 초에 아랍 국가들이 긴급 정상회담을 열어 530억 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평화 유지군 이야기도 나눴다. 이렇게 아젠다를 세게 던지고 혼란스러움을 틈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국제 자유교역, 영토 주권 존중이라는 ‘베스트팔렌 조약’ 전통이 지켜온 가치에 매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김영식=아랍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이런 움직임을 한 것을 예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남식=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을 방치하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같은 경우 친미 국가들이 어려워진다. 아랍 국가들이 그동안 함께 모여 구체적인 안건을 내놓은 적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작동하게 한 것이다. 가자지구 구상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고 불법적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국내외에 보여주었다.
김영식=아랍에서는 먹히고 있지만 다른 곳까지 적용하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이 다시 공세적이다. 이-팔 전쟁은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인남식=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휴전 3단계 프로세스 중 1단계는 마무리가 됐는데 3월 1일로 6주간 휴전 기간이 지났다. 인질 교환 협상을 비롯해 2단계가 나와야 하는데 진전이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전쟁을 혐오하기 때문에 가자지구 휴전을 굉장히 중요한 아젠다로 삼고 있다. 오히려 지금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예루살렘 위협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금 트럼프 귀환을 가장 환영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이다. 트럼프 2기 최초 해외 정상 방문이 사우디아라비아가 되는 순간 이스라엘을 넘어서 사우디가 가장 강력한 미국의 우방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지금 러-우 전쟁 중재국으로 빈 살만의 사우디를 앞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 사우디 이스라엘 ‘삼각 안보 협력 체제’로 이란을 붕괴시킬 수 있다면 ‘아브라함 협정’의 완결판이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와 이란 체제 변화 유도는 양수겸장 포석이다. 유일한 장애물이 네타냐후다.
김영식=인도-태평양 특히 동북아 지역이 어려워 보인다. 기존 외교 안보 협력 방식이 먹히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이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경쟁을 준비하고 관세와 글로벌 경제 재편 등을 통해 중국 배제 생태계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정구연=중국이 뭘 원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기 보다는 중국 영향권에 두는 것을 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영향권에서 빼내는 것이다. 트럼프가 동맹 분할을 하는데, 한미일 보다는 한미, 미일 등 3자 보다 양자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미국은 이렇게 양자적으로 만들어 동맹과 기존의 질서를 약화시키고 있다. 상당히 우려되는 지점이다. 미국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동맹국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중국에 호재다. 인도-태평양 전략도 기존에 동맹 기반 안보 체제 구축이 아니라 각 동맹국들 역량을 강화시켜 이 지역에서 안보를 동맹국들이 책임지는 일종의 역외 개념과 비슷하다.
박재적=저는 생각을 달리한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 위협론은 초당적으로 대응한다. 영토적 문제뿐만 아니라, 기술과 정보 통신 등에서 미국의 적대적 국가로 대두하는 것은 맞다. 지금까지 트럼프가 굉장히 모순적인 행동을 많이 보여 왔다. 대외원조 기관 미국국제개발처(USAID) 중단과 상호관세 부과는 주요 동맹국들에 피해가 간다. 다만 미국의 리셋 단계가 끝나면 지속할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 2025년 2월 개최된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미·일·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등의 다층적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협력)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나쁘지는 않은 상태다. USAID 중단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 들어가는 군사 원조는 예외 조항으로 두었다. 필리핀이 인-태 지역 소다자 안보 협력 핵심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식=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민감국가’로 지정해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동맹 다른 쪽으로 파장이 미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로 정리되고 갈 수 있는지 더 심각하게 봐야 하는가.
박재적=좀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 우리나라 잠재력 핵무장론에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에 있어서 핵 비확산은 우선 사항이었다. 이와 더불어 미국으로선 12월 계엄과 탄핵 소추 등 한국 정부가 흔들리는 상황과 향후 정권 교체 시 민감 정보 기밀 누설 가능성을 상당히 우려했을 것이다. ‘오커스 필러 2’와 ‘파이브 아이즈’ 확장 시 한국의 참여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정보 보안 체계와 수준에 대한 우려를 짚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영식=일본은 수십 년 간 조심하면서 재처리 시설을 설명하고 권리를 얻어 냈다. 트럼프 진영에서 핵 무장과 핵 전술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 자제력이 무너지면서 조심성이 흐트러지고 미국에 불안감을 준 것 같다. 핵 문제는 조심스런 접근과 외교적 봉합 노력이 필요하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
장원준=10여 년 전 국방기술 보안 문제에서도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전자전 재머 부품을 분해했다가 미국이 제재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제한을 두어 굉장히 고생했다. 그래서 방위사업청에서 기술보호국을 만들고 프로세스와 규정 등을 강화했다. 민감 국가로 지정되는 것이 에너지 뿐만 아니라 K-방산 수출에도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수출이 잘 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기에 들어가는 많은 주요 핵심 부품은 미국 측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수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제재가 심해질 우려가 있다. 또한 미국과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체결 등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기회에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문제를 빨리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분야에까지 더 큰 문제로 커질 수 있다.(한미 양국은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워싱턴에서 회담을 열어 SCL에 한국이 포함된 데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산업부가 21일 밝혔다.)
김영식=트럼프 시대의 세계와 국제 질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박재적=트럼프 시대의 국제질서는 중견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과거에 해오던 국제 공공재 공급을 안 하는 것인데, 미국이 다자협력과 UN을 무시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중견국들 활동 공간이 많아질 수 있다. 미국 배제가 아닌 함께 하는 자유주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등은 혼자가 아닌 연합을 통해 국제질서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 외교는 트럼프와의 양자 관계와 함께 이 역내 중견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지위를 높일 수 있다.
김영식=중견국의 기회 확장에 공감한다. 중동 사례를 봤듯 우리에게도 새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인남식=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에 트럼프가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는 칼럼이 실렸다. 유럽 주요국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질서 유지자의 부재를 실감하며 자기들만의 안보 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샤를 마뉴 대제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유럽 통합에 기여한 1순위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지금 미국 주도의 국제 자유주의 질서의 붕괴는 아노미를 얘기하는 건 아닐 것이다. 각 지역에서 생존과 관련된 새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유럽과의 한보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한일 간 협력도 과거와는 다른 동력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단극 체제의 미국 아래에서 없는 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외교는 레버리지 게임이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혼란 속에서 레버리지를 찾을 수 있다.
정구연=이미 미국을 뺀 탈 패권의 국제 질서를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럽은 물론 우리도 한일협력을 새롭게 해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지역의 질서를 만드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를 준비해야 한다. 중견국이든, 중견국이 아니더라도 미국 부재 시 나머지 국가들이 규칙에 기반한 질서 유지 노력이 필요하다.
장원준=레버리지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할 시기다. 한미 FTA와 방위비 분담금 협정도 그렇다. 일본이 미일 정상회담에서 GDP 대비 2% 국방비 증액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킨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좀 더 다양하게 우리 레버리지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조선과 함정 산업이 중요하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데 특히 방산 쪽에서는 우리에게 상당히 좋은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캐나다와 유럽이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K-방산에 대한 문의도 크게 늘고 있다. 이 기회를 살리고 실리를 확보할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김영식=트럼프의 행보가 한미 동맹에 부정적 파장을 미칠 수 있을까. 한미 동맹은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유지되고 지역 질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박재적=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가 중국이라면 한미 동맹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 중심이어야 되겠지만 인태 지역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은 인-태 지역 안보에서 한국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이게 미국이 없는 공간을 채우는 것인지, 또는 같이 채우기 위한 것인지는 봐야 한다. 아직은 리셋의 시간이어서 좀더 볼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자강’ 움직임에서도 보듯 인태 지역에서도 미국 혼자가 아닌 역내 국가들이 같이 하는 질서 유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범위 넓히면서 유럽과 아시아 안보가 연계되는 방향으로, 또한 확장하는 한미 동맹으로 나가야 한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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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현인택 전 통일부장관)는 20일 동아닷컴 대회의실에서 중동 전문가 및 사내외 연구위원 초청 간담회를 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국제질서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점검하고 우리 대응책을 모색했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행보에 철저히 대비하고 중견국으로 저축은행 학자금대출 우리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박재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나다 순)가 참석했다. 사회는 김영식 동아일보 재단협력위원장이 맡았다.
김영식=트럼프 2기 집권 50일이 지났다. 취임 10 청주학자금대출 0일 동안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동안 세계질서에도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박재적=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확실하다. 신고립주의는 지켜볼 대목이다. 그동안 미국은 서구와 함께 중국과 대립하면서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유럽과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충분히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신협파산 유럽과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을 심었다. 지금 유럽은 ’자강론‘을 이야기한다. 많은 국가들이 방위비를 GDP의 2~3%로 맞추고 호주도 방위비를 올리고 있다. 미국이 국제 질서를 리셋하고 자유주의 질서의 리더로 나서는 일정한 리셋 기간이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신고립주의 측면으로까지 보기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
김영식=미국은 4월 2일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동맹국은 물론 우호국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 경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 정치력 부재의 우리나라가 막무가내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구연=트럼프 2기 시작과 함께 한 관세 전쟁은 관세 뿐 아니라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은 지금의 국제질서에서 미국 국민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포퓰리즘 측면도 있다. 이 결과로 벌써부터 미국 내 물가가 오르고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경고한다.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는 회의적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킨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뮌헨의 최근 안보회의에 참석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총리가 아니라 극우 정당지도자를 만났다. 이런 선동이 자유민주질서의 생태계를 흔들고 있어서 큰 문제다.
김영식=미국은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면서 관세 또는 비관세 장벽을 둔 국가를 ‘지저분한 15개국’(dirty 더티 15)으로 지칭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손보겠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존 질서를 유지하던 가치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마무리 협의 과정을 보면 기존의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관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박재적=기존과는 다른 방법이다. 미국은 러-우 휴전을 중재하면서 일극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기존과 다른 실용적 접근이다. 최근 방한한 케빈 매카시 전 미국 하원의장은 “지금 언론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시각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휴전 아니면 종전과 정전 과정에서 나토군이 주둔하거나 미군이 주둔한다고 했을 때, 과연 러시아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러 나오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우크라이나에 심어놓으면 러시아가 재침공하지 못해 방어가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자체로는 궤변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게 지금 미국이 세계의 사건들에 접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박재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영식=기존과 다른 실용적 접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박재적=기존에는 국제적인 절차와 관행을 따르거나 미국이 지도적 위치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제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부분에 힘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가장 실용적인 것은 대선 공약 사항이던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 관심이 인도-태평양으로 넘어왔는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유럽에 발목을 잡히면 중국 견제에 미국의 자원을 투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러시아도 끌어들이고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 안보 공약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정구연=NATO에 대해서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감정을 표출했다. 최근 국방부 개혁안에 따라 미국이 4성 장군 자리인 유럽 통합군 사령관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트럼프는 얼마 전 “나토는 미국을 갉아먹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을 정도다. 미국 의존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NATO와 EU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 여지가 많지 않다 는 미국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김영식=지금까지 미국의 숙적은 러시아였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다. 언제부터 미국이 중국을 적대적 상대라고 생각했을까.
정구연=미국내 중국의 위협론은 2000년대 초반부터 나왔다. 남중국해 충돌 문제 등이 나오는 가운데, 특히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두 개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군사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내 국가주의 강화와 자신감 상승이 변곡점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활동 증가 등이 중첩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식= 중국은 함정 건조와 보유 측면에서 놀라운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러시아에 대한 위협 감도가 미국에서 낮춰진 결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 문제에서 미국이 러시아 편을 드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재적=상대적 국력 상승의 문제인 것 같다. 클린턴 때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고 서구 질서에 진입시키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가 되었다. 반대로 러시아는 국내 정치적 문제로 경제가 상당히 침체되어 있어 미국이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영토적 야욕도 러시아 논리가 어느 정도 타당한 측면도 있다. 러-우 전쟁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다.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정서적 야욕이나 남중국해 분쟁 등은 결이 달라 위협을 느끼는 강도는 훨씬 다르다.
김영식=중동을 살펴보자. 중동은 국제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미국은 한반도 보다 중동을 항상 우선시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제안이었다. 지금은 다시 가자지구에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중동 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남식=중동은 오히려 예측하기가 조금 쉽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 대외 정책에서 굉장히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믿는 분야가 중동이다.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강고한 우정을 드러냈다. 단순히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전통적 미국 남부의 보수 기독교 표를 던지게 하는 지지 기반을 만들었다. 또 하나는 2020년 ‘아브라함 협상’이다. 1978~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과 맞먹는다. 4개 아랍국과 이스라엘 간 수교를 자기가 했다고 하는 상징성이 크다. 전통적이고 고질적이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세기의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분리 독립이라는 구체적 안건을 냈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무산되었다. 또한 트럼프는 이란 제재 복원(snapback)을 통해서 위험한 국가를 자기가 막아냈다고 말한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이를 돌리려다가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에 경사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최대의 압박을 계속할 것이다. 이란의 수족을 끊어 항복을 하든지 체제 변화를 하라고 유도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를 이루게 된다면 엄청난 업적이 될 것이다. 집권 후반기까지는 지금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이 직접 들어가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기 어렵다. 미국 내 반대는 물론이고, 국제법적으로 ‘선주민 강제 이주’는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그런 부담 보다 트럼프는 상상할 수 없는 아젠다를 던진 것이다. 그게 먹혀서인지 3월 초에 아랍 국가들이 긴급 정상회담을 열어 530억 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평화 유지군 이야기도 나눴다. 이렇게 아젠다를 세게 던지고 혼란스러움을 틈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국제 자유교역, 영토 주권 존중이라는 ‘베스트팔렌 조약’ 전통이 지켜온 가치에 매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김영식=아랍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이런 움직임을 한 것을 예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남식=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을 방치하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같은 경우 친미 국가들이 어려워진다. 아랍 국가들이 그동안 함께 모여 구체적인 안건을 내놓은 적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작동하게 한 것이다. 가자지구 구상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고 불법적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국내외에 보여주었다.
김영식=아랍에서는 먹히고 있지만 다른 곳까지 적용하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이 다시 공세적이다. 이-팔 전쟁은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인남식=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휴전 3단계 프로세스 중 1단계는 마무리가 됐는데 3월 1일로 6주간 휴전 기간이 지났다. 인질 교환 협상을 비롯해 2단계가 나와야 하는데 진전이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전쟁을 혐오하기 때문에 가자지구 휴전을 굉장히 중요한 아젠다로 삼고 있다. 오히려 지금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예루살렘 위협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금 트럼프 귀환을 가장 환영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이다. 트럼프 2기 최초 해외 정상 방문이 사우디아라비아가 되는 순간 이스라엘을 넘어서 사우디가 가장 강력한 미국의 우방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지금 러-우 전쟁 중재국으로 빈 살만의 사우디를 앞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 사우디 이스라엘 ‘삼각 안보 협력 체제’로 이란을 붕괴시킬 수 있다면 ‘아브라함 협정’의 완결판이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와 이란 체제 변화 유도는 양수겸장 포석이다. 유일한 장애물이 네타냐후다.
김영식=인도-태평양 특히 동북아 지역이 어려워 보인다. 기존 외교 안보 협력 방식이 먹히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이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경쟁을 준비하고 관세와 글로벌 경제 재편 등을 통해 중국 배제 생태계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정구연=중국이 뭘 원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기 보다는 중국 영향권에 두는 것을 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영향권에서 빼내는 것이다. 트럼프가 동맹 분할을 하는데, 한미일 보다는 한미, 미일 등 3자 보다 양자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미국은 이렇게 양자적으로 만들어 동맹과 기존의 질서를 약화시키고 있다. 상당히 우려되는 지점이다. 미국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동맹국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중국에 호재다. 인도-태평양 전략도 기존에 동맹 기반 안보 체제 구축이 아니라 각 동맹국들 역량을 강화시켜 이 지역에서 안보를 동맹국들이 책임지는 일종의 역외 개념과 비슷하다.
박재적=저는 생각을 달리한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 위협론은 초당적으로 대응한다. 영토적 문제뿐만 아니라, 기술과 정보 통신 등에서 미국의 적대적 국가로 대두하는 것은 맞다. 지금까지 트럼프가 굉장히 모순적인 행동을 많이 보여 왔다. 대외원조 기관 미국국제개발처(USAID) 중단과 상호관세 부과는 주요 동맹국들에 피해가 간다. 다만 미국의 리셋 단계가 끝나면 지속할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 2025년 2월 개최된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미·일·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등의 다층적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협력)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나쁘지는 않은 상태다. USAID 중단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 들어가는 군사 원조는 예외 조항으로 두었다. 필리핀이 인-태 지역 소다자 안보 협력 핵심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식=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민감국가’로 지정해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동맹 다른 쪽으로 파장이 미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로 정리되고 갈 수 있는지 더 심각하게 봐야 하는가.
박재적=좀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 우리나라 잠재력 핵무장론에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에 있어서 핵 비확산은 우선 사항이었다. 이와 더불어 미국으로선 12월 계엄과 탄핵 소추 등 한국 정부가 흔들리는 상황과 향후 정권 교체 시 민감 정보 기밀 누설 가능성을 상당히 우려했을 것이다. ‘오커스 필러 2’와 ‘파이브 아이즈’ 확장 시 한국의 참여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정보 보안 체계와 수준에 대한 우려를 짚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영식=일본은 수십 년 간 조심하면서 재처리 시설을 설명하고 권리를 얻어 냈다. 트럼프 진영에서 핵 무장과 핵 전술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 자제력이 무너지면서 조심성이 흐트러지고 미국에 불안감을 준 것 같다. 핵 문제는 조심스런 접근과 외교적 봉합 노력이 필요하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
장원준=10여 년 전 국방기술 보안 문제에서도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전자전 재머 부품을 분해했다가 미국이 제재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제한을 두어 굉장히 고생했다. 그래서 방위사업청에서 기술보호국을 만들고 프로세스와 규정 등을 강화했다. 민감 국가로 지정되는 것이 에너지 뿐만 아니라 K-방산 수출에도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수출이 잘 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기에 들어가는 많은 주요 핵심 부품은 미국 측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수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제재가 심해질 우려가 있다. 또한 미국과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체결 등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기회에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문제를 빨리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분야에까지 더 큰 문제로 커질 수 있다.(한미 양국은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워싱턴에서 회담을 열어 SCL에 한국이 포함된 데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산업부가 21일 밝혔다.)
김영식=트럼프 시대의 세계와 국제 질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박재적=트럼프 시대의 국제질서는 중견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과거에 해오던 국제 공공재 공급을 안 하는 것인데, 미국이 다자협력과 UN을 무시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중견국들 활동 공간이 많아질 수 있다. 미국 배제가 아닌 함께 하는 자유주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등은 혼자가 아닌 연합을 통해 국제질서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 외교는 트럼프와의 양자 관계와 함께 이 역내 중견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지위를 높일 수 있다.
김영식=중견국의 기회 확장에 공감한다. 중동 사례를 봤듯 우리에게도 새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인남식=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에 트럼프가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는 칼럼이 실렸다. 유럽 주요국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질서 유지자의 부재를 실감하며 자기들만의 안보 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샤를 마뉴 대제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유럽 통합에 기여한 1순위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지금 미국 주도의 국제 자유주의 질서의 붕괴는 아노미를 얘기하는 건 아닐 것이다. 각 지역에서 생존과 관련된 새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유럽과의 한보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한일 간 협력도 과거와는 다른 동력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단극 체제의 미국 아래에서 없는 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외교는 레버리지 게임이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혼란 속에서 레버리지를 찾을 수 있다.
정구연=이미 미국을 뺀 탈 패권의 국제 질서를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럽은 물론 우리도 한일협력을 새롭게 해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지역의 질서를 만드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를 준비해야 한다. 중견국이든, 중견국이 아니더라도 미국 부재 시 나머지 국가들이 규칙에 기반한 질서 유지 노력이 필요하다.
장원준=레버리지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할 시기다. 한미 FTA와 방위비 분담금 협정도 그렇다. 일본이 미일 정상회담에서 GDP 대비 2% 국방비 증액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킨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좀 더 다양하게 우리 레버리지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조선과 함정 산업이 중요하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데 특히 방산 쪽에서는 우리에게 상당히 좋은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캐나다와 유럽이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K-방산에 대한 문의도 크게 늘고 있다. 이 기회를 살리고 실리를 확보할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김영식=트럼프의 행보가 한미 동맹에 부정적 파장을 미칠 수 있을까. 한미 동맹은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유지되고 지역 질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박재적=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가 중국이라면 한미 동맹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 중심이어야 되겠지만 인태 지역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은 인-태 지역 안보에서 한국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이게 미국이 없는 공간을 채우는 것인지, 또는 같이 채우기 위한 것인지는 봐야 한다. 아직은 리셋의 시간이어서 좀더 볼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자강’ 움직임에서도 보듯 인태 지역에서도 미국 혼자가 아닌 역내 국가들이 같이 하는 질서 유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범위 넓히면서 유럽과 아시아 안보가 연계되는 방향으로, 또한 확장하는 한미 동맹으로 나가야 한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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