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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즙수병햇 작성일24-12-29 01:54 조회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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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나온다 해서 욕문산이다."
"이렇게 힘들기만 하고 볼 게 없는 산은 처음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용문산은 부정적인 말로 가득했다. '정말 힘들기만 한 산행일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모두 재미없는 산이라고 했지만 분명 즐거운 일이 생길 것이라 확신했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 있다고 했다. 나만의 꽃을 찾으려 눈을 크게 뜨고 용문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백패킹 초보를 도와줄 옆자리의 베테랑은 본지에 '낭만야영'을 연재하는 민미정 여행작가다. 용문산 정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상에서 하룻밤 야영하고, 다음날 능선을 주파해 백운봉까지 갈 계획이다.
1100살 은행나무 앞에 섰다.
"요상하게 생겼네요."
다들 소원을 적어 매단다. 높이 42m 거구의 나무를 보며 소원을 빌기보다는 안아보거나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민미정 작가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 맞장구치며 함 10등급무직자대출 께 웃었다. 들어오는 길 도로 양옆에 심어진 키 작은 나무들은 이미 샛노랗게 물들었는데 이 큰 나무는 아직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되었는지 초록빛이다.



용문산 초입에는 나무다리가 많다. 계곡을 건너 본격적인 등산로로 진입한다.


업무무관가지급금 무겁고 든든한 배낭을 메고 용문산으로
"저희의 산행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들머리에 서 있는 등산로 지도가 보기 좋아 잠시 멈춰 설명을 한 번 하고 가기로 한다.
"저희는 여기 용문사에서 출발해서 오늘 용문산 정상, 가섭봉에서 텐트를 칠 예정이고요. 내일은 백운봉을 지나 백운봉자연 개시결정후 휴양림 쪽으로 하산해 백숙을 먹고 해산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대장 노릇이다. 출발 전엔 긴장 상태로 온갖 걱정이 들었지만 막상 닥치니 이것도 나름 재미있다. 아마도 쉬운 길, 좋은 지도, 그리고 실수해도 같이 웃어줄 것 같은 동행들 덕분이었으리라. 시작은 언제나 즐겁다. 생각보다 배낭도 멜 만하고 '흐림'이라고 적혀 있던 하늘도 나름 인증필요 파란 부분이 있으니 출발길이 설렜다.



용문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지도를 보며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북한산에서 보던 붉고 짙은 색 단풍과 달리 용문산의 단풍은 밝고 쨍한 빛의 단풍이었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것 같은 어린 단풍들이었다. 살짝 뜬 해에 군데군데 빛이 내려오고 나무 하나 하나 다른 빛을 띠는 가을 풍경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등산로 옆에는 계곡이 흘렀다. 중간 중간 작은 폭포들도 있었다. 우리는 앉기 좋은 바위가 계곡과 만나는 어디 즈음 잠시 멈춰 배낭을 내려놓았다. 몸을 무겁게 누르던 등껍데기를 벗어 내리니 날아갈 듯 훨훨 가볍다. 성큼 성큼 큰 바위를 건너 계곡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용문산의 어린 단풍들은 밝고 쨍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저는 이 바위 할게요", "그럼 저는 이 바위!"
적당한 돌을 하나씩 골라 앉으니 바람도 솔솔 불고 쉬어가기에 딱이다. 가재가 살 것 같을 정도로 맑은 물이다.
백패킹을 오래한 민미정 작가는 이 정도면 마셔도 된다며 거침없이 손으로 퍼 물을 마신다. 그 옆에 나도 웅크리고 앉아 손에 물을 담아보았다. 마셔도 문제없어 보여 벌컥 벌컥 공짜 물을 마셨다. 찬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중간 중간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웅덩이들도 나온다. 여름이었다면, 하산길이었다면 주저앉아 폭포에 등을 대고 물살을 즐겼을 것이다.
한바탕 쉬고 일어나 배낭을 다시 멘다. 바닥은 끝없는 돌길. 왜 사람들이 힘든 산이라고 하는지 점점 몸소 느껴지고 있었다. 땀을 닦으려 어깨에 매달아 둔 스포츠 타월을 보고 민미정 작가는 "아저씨 같다"고 했다. 땀이 나면 흐르기 전에 바람이 말려 주는 선선한 날씨에 어쩌면 손수건은 넣어두어도 되겠다. 산행하기 딱 좋은 가을 날씨다.



맑은 계곡 물을 사이에 두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 "이렇게 멋진 계곡이 있는데 왜 볼 게 없다고들 했을까?" 우리는 의문을 품었다.


차곡차곡 정상으로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1,000m 가까이 고도를 올려야 했다. '그래, 천천히 가면 어떻게든 가겠지'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 가다 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최대한 짐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가늠해 보니 내 배낭은 13~14kg 정도였다. 생각보다 그 무게가 산행에 지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 안도했다.
3km라는 짧은 거리 동안 1,000m의 고도를 올리는 일은 아주 힘들고도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힘들지만 이렇게 훅 치고 올라가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지루한 산행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거리는 더디게 줄어도 팍팍 줄어드는 고도를 보며 치고 올라가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민미정 작가도 이런 스타일의 산행이 마음에 들었는지 즐거운 표정과 목소리로 시계를 보며 고도가 몇 미터 남았는지를 외쳤다. 산행이 처음인 김용재 사진기자는 아마 괴로웠을 것이다. 어쩌면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욕 나오는 산 같으니라고.'
두 시간을 걸어 나온 마당바위는 우리가 약속한 '쉬는 지점'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쉬고 있었지만 곧 떠났고, 그 후로 넓은 마당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쓸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평평할까. 정말 말 그대로 '마당' 같은 바위에 앉아 행동식으로 들고 온 귀중한 바나나를 까먹었다. 발라당 드러누우니 색색의 단풍이 하늘을 덮는다. 손을 휘저으니 마당에 깔린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차가운 바위에 등을 대니 온몸이 서늘해져 오래 누워 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그 자리에 앉아 내 잘 곳을 들고 걷는다는 것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든다. 등에 집을 지고 걷는 백패커의 모습이 마치 달팽이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백패킹의 세계에 스을쩍 마음을 들였다. 그렇게 한참을 쉬다 다시 힘을 내 등껍질을 짊어 메고 출발했다.
"가자 정상으로!"



마당바위에서 나눈 유익한 대화의 현장이다. 베테랑 선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고 있는 초보 백패커.


마당바위부터 정상까지는 이제까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너덜 바위길이었다. '이걸 등산로라고 부를 수 있을까'하는 바위길이 이어졌다. 다리를 올리고 체중을 실어 일어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피로와 배낭 무게가 다리를 짓눌렀다. 그 무게를 버티고 한번 "으쌰" 일어나면 그제야 한 발이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을 무겁게 내딛으며 올라갔다. 그렇게 다른 생각 없이 다음 발을 내딛고 몸을 한 칸 한 칸 올리는 것에 집중하며 차곡차곡 고도를 높여 갔다.
'지옥의 계단'이라 불리는 계단이 나온다는 말을 사전에 들었다. 나오는 계단마다 "여러분 여기가 지옥의 계단입니다. 여기만 넘으면 곧 정상입니다. 거의 다 왔다고 볼 수 있지요"라고 했지만 지옥의 계단은 끝없이 등장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이고 미안해요. 아마도 다음 계단인가 봅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의도치 않게 두 대사를 번갈아 이야기했다. 그래도 조금씩 목표 고도에 가까워져 갔고, 마침내 오후 5시경 계획한 대로 무사히 정상에 설 수 있었다.
1,157m에 차린 오늘의 집
바람이 쌩쌩 부는 정상은 벌써 냉기로 매서웠다. 첫 백패킹을 간다며 한마디 조언을 묻고 다닐 때 가장 많이 들은 대답은 "밤에 추우니 방한 준비 잘해 가라"였다. 그중 핫팩은 필수라 하여 집 서랍장을 뒤져 작년 겨울 쓰고 남은 군용 핫팩을 두 개 챙겨왔다. '네 개 챙길걸…'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초저녁 추위였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오늘 지나온 길이 겹겹이 보인다. 아직 초록잎 나무들 사이사이 붉은빛 노란빛 단풍들이 섞여 있다. 중간 중간 가지를 드러낸 나무도 있다. 멀리 놓고 보니 폭신 폭신해 보여 뛰어들고 싶다는 말을 해본다.
폭풍우 내리치는 날, 텐트가 없어 밤새 타프 밑 흙바닥에서 모기에게 뜯긴 엉망진창의 밤이 있었다. 그 밤, 어둠 속에서 중고 텐트를 알아봤다. '텐트', '입문 텐트', '백패킹 텐트'… 그 날 이후 텐트에 대한 욕망은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백패킹 취재가 잡혔고 머릿속은 텐트에 대한 로망으로 반짝거렸다. 등산학교 동기에게 텐트를 빌렸다. "장비를 빌려주는 것은 병자호란 때로 치면 말을 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선배의 말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조심히 쓰고 돌려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둠이 깔리고 우리 주변의 빛은 텐트 안에 켜둔 랜턴들뿐이었다.


"텐트 칩시다!"
각자 배낭에서 오늘의 집을 꺼낸다. 초록 텐트, 파란 텐트, 하얀 텐트. 제일 오른쪽의 하얀색 텐트가 오늘 나의 집이다. 우당탕탕 텐트를 치고 옆을 보니 다들 비슷한 속도로 피칭을 마쳤다. "아, 텐트 빨리 치기 대결을 하자고 할 걸 그랬어요"하니 "제가 무조건 일등일 걸요. 제가 또 이런 데에 승부욕이 있거든요"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민미정 작가. 해가 지고 나면 딱히 할 만한 일이 없는 백패킹에서는 이런 작은 재미를 찾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민미정 작가는 함께 백패킹 간 친구와 에어매트 빨리 불기 시합을 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가 지고 하늘은 캄캄하고 바람이 쌩쌩 부니 주머니 속 핫팩이 두 개뿐인 것이 머리 지끈 지끈하게 안타까웠다. 바들바들 떨며 잠자리를 준비하고 좋은 밤 되라는 인사를 하려는데 민미정 작가가 데크 끝 쪽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밤새 별을 찍어보겠다며 열심이다. 구름 낀 하늘에 별이 보일까 의문이었지만 구름이 흘러가는 사이사이 보일 거라고 카메라를 설치한다. '산에서 보내는 밤에 별이 빠지다니…' 첫 백패킹에 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던 참인데 영상으로라도 볼 수 있으려나 작은 기대감에 슬쩍 웃음이 났다.
찬바람 부는 산 정상에서 텐트 속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콸콸 비가 내릴 때 우산을 쓰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설치한 나만의 작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기분은 꽤 아늑하고 좋다. 좁고, 일시방편이고, 그다지 쾌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상황을 모면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 자연과 간접적으로 부딪힐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만큼 산꼭대기에서 텐트를 흔드는 바람소리는 멋있었다. 아늑한 침낭 안에 쏙 들어가니 생각보다 포근하고 보송보송했다. 추위에 잠을 깰까 걱정했지만 새벽 여명을 보려고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여명을 거쳐 아침이 오고
새벽 5시 50분. 여명을 보기 위해 일찍 눈을 떴다. 아직 밤 같은 어둠에 '조금만 더 잘까' 고민에 빠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풍경을 놓칠까 벌떡 일어나 텐트 문을 열었다. 고개를 빼꼼 내미니 머리 위에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우와" 별들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튀어나왔다. 익숙한 모양의 별자리가 예쁘게 반짝거렸다. 산 위에서 보니 국자가 더 커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아쉽게도 곧 밝아지기 시작해 그 별자리는 혼자만 볼 수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고 어둡던 새벽에서 해가 뜨는 일출로 넘어가는 신비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일출보다 어쩌면 더 멋있는 여명을 보며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양쪽 주머니 속 햇팩을 꾹 잡고 데크 한가운데 가만히 서보았다. 빛이 서서히 밀려들어오면 고요히 또 다른 아침의 시작이다. 은은한 빛을 뒤에 두고 유심히 보면 가까이부터 멀리까지 그 산세를 하나하나 읊어볼 수 있다. '첩첩산중'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눈앞의 산자락부터 저 멀리 능선까지 어느 하나 똑같지 않고 자기 모습대로 멋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송전탑과 풍력발전기까지 구경하고는 일출 맞이할 준비를 한다.



용문산 정상, 가섭봉에서 본 아침 풍경. 여명에서 일출로 이어지는 신비로운 순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뜨는 해를 보며 카메라를 집어 드는 민미정 작가는 "이거 보려고 백패킹 하지"라며 아침 풍경에 만족한다. 뜨거운 낮, 서늘한 저녁, 차가운 밤과 또 고요한 새벽 아침까지 하루 통째로 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이 백패킹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느껴져 오는 산의 기운이 산마다, 또 날마다 다르다는 것이 백패킹을 계속 하고 싶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 하산, 땅으로…
결코 쉽지 않은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는 이튿날. 백운봉을 지나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거리는 어제의 두 배인 7.2km였다. 용문산 백패킹을 찾아보면 양평역 쪽 백운봉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해 백운봉에서 야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백패킹 루트이다. 하지만 백운봉에 널찍한 데크가 설치되기 전에는 용문사에서 출발해 가섭봉으로 가는 것이 정석적인 루트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용문산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용문사를 들머리로 하는 것이 조금 더 전통적인 방향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차며 열심히 백운봉을 향해 걸었다.


유명한 은행나무를 보러 용문사를 찾았다가 3km라는 숫자에 가벼운 마음으로 용문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조난 신고도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높이 1,157m로 경기도에서 화악산과 명지산, 국망봉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산이다. 높이도 높이지만 산세가 가파르고 험해 경기 남동부의 제왕이라고도 불린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지막한 산들 사이 우뚝 서 있는 용문산의 산세를 눈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거리가 짧다고 얕봐서는 안 된다. 용문산을 호락호락하게 봤다가는 여러 방향으로 큰 코 다칠 수 있다. 다음날 앓아눕는다거나 제때 하산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거나 급한 마음에 하산하다가 길을 잃어버린다거나 등등. 언제나 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하산이 오르는 것보다는 쉽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큼직한 바위가 이어지는 돌산에서의 하산은 매 순간이 위험천만했고 집중하지 않는 순간 굴러 떨어져 머리를 바위에 박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바위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낙엽들은 바스락 바스락 좋은 소리를 냈지만 동시에 아주 미끄러워 마치 누가 미끄러지라고 설치해 놓은 바나나 껍질 같았다.
"제가 앞장설 게요."
우리의 든든한 조력자 민미정 작가는 씩씩한 모습으로 노련하게 낙엽을 발로 차가며 길을 터주었다. 무거운 배낭에 하산길 난이도는 배가 되었고 닿을 듯 안 닿을 듯 끝없이 사라졌다 보이기를 반복하는 백운봉이 야속했다. 민미정 작가를 제외하고 나와 김용재 사진기자는 크게 한 번씩 넘어졌고 정신이 혼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정신줄을 잡고 산행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을 4시간 넘게 반복한 끝에 백운봉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함왕봉에서 백운봉으로 가는 길. 바위가 이어지는 하산길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정상 데크는 단연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박지의 모습이었다. 숨겨진 빗자루는 아마 데크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도구였으리라. 백운봉은 우리에게 그리 긴 시간을 주지는 않았다. 탁 트인 전망에 솟아오른 봉오리는 멋진 풍경을 주지만 동시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추위에 얼마 견디지 못하고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내 등 뒤에 내 집을
누군가는 '욕문산'이라 했지만 용문산은 거친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바위 하나하나 부딪히고 오르내리며 이름 그대로 용 한 마리를 만나는 듯한 거센 경험을 맛보게 해주었다. 민미정 작가는 "이런 산이 재미있지요!"라고 외쳤고, 나도 "멋진 산이네요" 동의했다.
백운봉에서부터의 하산길은 사뭇 잔잔했다. 이제 돌길은 끝났는지 살랑살랑 걷기 좋은 오솔길을 내주었고, 하산지점에 가까워지니 예쁜 나무다리도 나왔다. 낙엽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민미정 작가와 텐트 상담을 했다. 아무래도 내 집 장만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의식주를 배낭에 넣고, 그 짐을 내가 들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내 집을 통째 지고 걸으며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모험감 같은 것이 피어났다. 이번 백패킹에서는 산을 오르고 내려와 집으로 돌아갔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곳 없이 하루 하루를 늘려가며 발길이 닫는 곳 어디로든 걸어보고 싶다. 집은 내 등 뒤에 있으니. 등 뒤에 껍데기 대신 텐트를 올린 달팽이를 상상하며 하산을 마쳤다. 초록 텐트, 파란 텐트, 하얀 텐트를 올린 달팽이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걷기 좋은 길이 나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잠시 데크길에 걸터 앉아 여유를 부려본다.


백패킹 꿀팁!!tip1. 백패킹 배낭은 무겁다. 아무렇게나 메면 허리를 다칠 수 있다. 자세를 낮추고 한쪽 무릎에 배낭을 올린 뒤 먼저 한 팔을 넣고 어깨를 돌려 반대 팔도 넣어 준다. 허리 벨트는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을 정도로' 조여 주는 것이 좋다. 어깨보다 몸의 중심으로 배낭을 메게 되어 훨씬 힘이 덜 든다.
tip2.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행할 때는 스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하산 시에는 스틱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최대한 만들지 않도록 한다. 가파른 길을 하산하다 넘어질 경우 스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처음엔 스틱 사용이 어색할 수 있지만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좋다.
tip3. 산행 시 수분 섭취는 매우 중요하다. 물을 마실 때 한 번에 콸콸 마시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이렇게 마시면 훨씬 체내에 흡수가 잘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번 산행에서는 꼭 물을 한 번 마실 때 두 모금씩만 마시겠다고 스스로 제한을 두었다. 물을 아낄 수도 있고 일석이조다.
tip4. 야영 시 잘 때 바닥에 까는 매트는 아주 중요하다. 울퉁 불퉁한 바닥에 등이 배기는 것을 막아 주기도 하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발포매트는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피가 크고 방한 성능이 떨어진다. 바람을 넣어 사용하는 에어매트는 부피가 작고 냉기를 막는 기능이 탁월하지만 비교적 가격이 비싸다. 에어매트와 발포매트를 함께 이용하는 것이 방한에는 가장 좋다고 한다.
용문산 취재진의 백패킹 장비민미정 작가의 백패킹 장비



배낭
피엘라벤 카즈카 55L
등산화
한바그 뱅크스
스틱
레키 등산스틱
침낭
파작 래디컬 8H(3계절침낭)
텐트
블랙다이아몬드 하이라이트
매트
니모 텐서 알파인 에어매트
정유진 기자의 백패킹 장비



배낭
로우알파인 마나슬루 ND 50/65L
등산화
살로몬 X 울트라 4 MID GTX W
스틱
노스케이프 등산스틱
침낭
Rab 미틱 울트라 360(3계절침낭)
텐트
Montbell 스텔라릿지2
매트
네이처하이크 발포매트
들고 온 장비 중 내가 산 내 장비는 1만3,000원짜리 발포매트 하나였다. 배낭, 침낭, 텐트 모두 빌린 것이었고 등산화와 스틱은 물려받은 장비였다. 백패킹을 입문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이 바로 장비의 벽이다. 어떤 장비부터 사야 할지, 어떤 제품을 사야 할지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또 가격은 왜 이렇게 비싼지 선뜻 시작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자. 의외로 선뜻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지금껏 나의 산행에 도움을 준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백패킹의 주요 장비, 침낭Rab 미틱 울트라 360



필파워
900 FP
충전량
360g
총중량
(Reg)645g, (Long)706g
내한온도
-8℃
패킹사이즈
(Reg) 36×18cm
형태
가는 머미형



"백패킹 가는데 가을 날씨에 맞는 침낭 어떤게 좋을까요?"물으니 주저없이 미틱 울트라 360을 추천한다. 900 필파워를 자랑하는 초경량 백패킹 침낭이다. 침낭을 처음 만져보았을 때는 다른 침낭에 비해 원단이 굉장이 쫀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접 사용해 보니 원단이 바실 바실하게 느껴져 그만의 쾌적함이 있었다.
예상보다 추운 날씨로 코와 입만 내민채 꽁꽁 싸매고 잤는데 얼굴 부분의 조임끈이 유용했다. 3계절 침낭이라 추위를 조금 걱정했지만 보송보송하고 포근하게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었다.



(야영일 밤 기온 약 8℃)
용문산(1,157m)



산행길잡이
용문산 산행은 1100살의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에서 시작된다. 용문산 관광단지에서 20분 정도 걸어올라가면 용문산 입구가 있는 용문사를 만날 수 있다. 들머리에 보기 좋은 등산지도가 있고 1.7km 정도 오르면 마당바위가 나온다. 마당바위부터 정상인 가섭봉까지는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돌길이 이어진다. 철골 계단 네 다섯개를 지나며 1.3km 오르면 용문산의 정상 가섭봉이다.
양평 시내로 이어지는 양평 백운봉자연휴양림으로의 하산은 장군봉과 백운봉을 지난다. 완만한 하산길이 아닌 암릉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높은 난이도의 구간이다. 백운봉을 지나면 비교적 난이도가 낮아지며 자연휴양림이 가까워질수록 나지막한 계곡 하산길이 나온다.
교통
용문역(경의중앙선, 무궁화호, ITX-새마을)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용문사와 이어지는 용문산 관광단지로 이동한다.(약 15분 이동) 양평 백운봉자연휴양림을 날머리로 두면 양평 시내가 가까워 교통편이 용이하다. 택시가 쉽게 잡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약 10분 이동)
맛집
용문산 관광단지에서 식사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면 좋다. 용문산중앙식당(0507-1488-3422)의 산채비빔밥(1만1,000원)과 더덕구이가 포함된 더덕산채정식(1만7,000원)이 유명하다. 양평 시내로 하산할 경우 장터집양평해장국(0507-1308-6282)의 해장국이 양평 5대 해장국으로 유명하다.
*등산 지도 _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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