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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 사이 30m 높이 CCTV 철탑에서, 도로 한복판 지하차도 안내 구조물 위에서, 불에 탄 공장 옥상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노동자들.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에는 탄핵 이후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이 담겨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당장의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목숨 건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를 뉴스타파가 연속해서 보도한다. <편집자 주>
① 조선 하청 노동 고센 스마트론 자가 30m 철탑 위에 오른 이유
② 불탄 공장 위에서 여성 노동자 둘이 사는 이유
“식사하세요. 오늘은 만둣국을 좀 끓였어.”
“응, 고마워. 잘 먹을게.”
지난 3월 19일 오후 12시 30분경. 텅 빈 공장 안 한편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음식 준비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갓 교사주5일제 지은 밥이 어디론가 배달된다. 음식은 밧줄이 연결된 플라스틱 박스에 담겨 9m 높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땅에서 하늘로 하루 두 번씩 올라가는 식사 배달.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 공장에서 1년 3개월째 반복되는 장면이다.
옥상으로 음식을 올리는 사람은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이하 한국옵티칼지회) 제2금융권대출자격 사무장 이지영(35) 씨. 음식을 받는 사람은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 박정혜(41) 씨와 조직부장 소현숙(44) 씨다. 이들은 모두 ‘한국옵티칼’에서 2023년 2월 해고된 노동자들이다.
박정혜, 소현숙 씨는 지난 1월 8일 공장 옥상에 올랐다. 전기도, 물도 나오지 않는 옥상에 천막을 치고 오늘(25일)로 443일째 농성 중이다. 차량연비개선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두 여성 노동자는 왜 옥상 농성을 택했을까. 뉴스타파는 지난 3월 19일 현장에서 이들을 만났다.
경북 구미에 있는 일본 ‘니토덴코’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의 모습. 9m 높이 공장 옥상에서 박정혜, 소현숙 씨가 1 단수취급명사 년 3개월 째 농성 중이다.
불탄 공장 옥상에서 443일째 사는 이유
한국옵티칼은 일본 화학 기업 ‘니토덴코’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한국의 자회사다. 외국인 투자촉진법에 따라 50년간 토지 무상 임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고 2003년 구미 국가산업4단지에 입주했다. 노트북, 휴대폰, 태블릿 PC 등에 들어가는 LCD 편광필름을 생산해 LG디스플레에 납품해 왔다.
박정혜, 소현숙 씨는 구미 한국옵티칼에서 각각 12년, 16년을 일했다. 하루 12시간씩 완성된 LCD 편광필름의 불량을 검수하는 일을 했다. 노동 강도는 높았지만,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이었기에 큰 불만 없이 일했다.
외국인투자지역인 경북 구미4공단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한국옵티칼은 일본 기업 ‘니토덴코’가 100%지분을 가진 LCD 편광필름 생산 업체다. 니토덴코는 2022년 10월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자 법인 청산을 결정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러던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4시간 동안 이어진 화재로 1만 2천 평에 달하는 큰 공장 대부분이 불에 타버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설비 배선 누전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했다.
화재 직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공장 재가동을 이야기했다. 노동자들은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돌연 한 달 만에 법인을 청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옵티칼 측은 ‘회사도 공장 재가동을 요청했지만 (일본) 니토 그룹이 법인 청산을 결정했다’고 했다.
한국옵티칼지회는 고용 유지를 논의하자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는 곧바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210명의 노동자 중 193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노동자 17명은 2023년 2월 2일 해고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때부터 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2022년 10월 4일 발생한 화재로 공장이 전소됐다.
“생산 물량은 승계하면서 노동자는 왜 버리나”
노조는 화재로 인한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노동자 전원을 내보내는 회사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국에는 니토덴코의 또 다른 LCD 편광필름 생산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옵티칼의 모기업 ‘니토덴코’는 경북 구미뿐 아니라 경기도 평택에도 LCD 편광필름 제조 자회사(한국니토옵티칼)를 두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물량 계약은 납품처와 자회사가 아닌 본사 ‘니토덴코’가 직접 했다. 니토덴코가 납품처와 계약한 뒤 각 자회사에 물량을 배정하는 식이다. 공장 화재 이후 니토덴코는 구미의 LG디스플레이 납품 물량을 평택 공장으로 옮겼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물량을 옮긴 만큼 평택 자회사로 자신들이 옮겨 일할 수 있도록, 고용승계를 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에선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이고, 법률상의 업무 양도양수도 없었기 때문에 고용승계 의무 역시 없다’고 맞섰다. 대신 평택에서 노동자 30명을 신규로 채용했다. 박정혜, 소현숙 씨는 배신감이 들었다.
16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회사인데 한순간에 불이 난 건 정말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긴 한데 근데 그 과정에서 경영진들이 저희한테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할 테니까 기다려 달라고 말했거든요. 그 한 달 동안 저희는 정말 회사를 믿고 기다렸는데, 물량은 평택의 자회로 옮기면서 직원은 해고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30명을 신규 채용할 거면 해고한 17명을 먼저 고용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과거에는 니토덴코의 다른 자회사로 전환 배치되는 경우 있었거든요. - 소현숙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조직부장
“혜택만 받고 책임은 회피하는 ‘먹튀’기업 없어야”
노동자들이 더 화가 나는 건 ‘니토덴코’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외국인투자기업으로 한국에 각종 혜택을 받고 공장을 세운 뒤 노동자 고용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옵티칼은 구미공단에 입주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18년간 7조 7,000억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2~2022년)간 연평균 영업이익은 200억 원이 넘었다. 한국옵티칼의 지분 100%를 가진 니토덴코가 배당금으로 가져간 돈만 1,573억 원(연평균 143억원)이다. 공장 화재 보험금도 재건 비용(약 1,000억 원 추정)을 넘어선 1,300억 원가량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미 공장의 물량은 평택으로 옮기고, 화재 피해는 보험금으로 만회하고…니토덴코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한국에서 혜택을 보고, 이익을 낸 만큼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도 다하라는 게 저희 요구인데요. 현행법에는 한국에서 혜택을 받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법인을 청산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해도 제동 걸 수 있는 방안이 없어요.- 소현숙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조직부장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해고 이후, 평택에 있는 또 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평택공장 앞에서노 농성을 벌였다. 구미 공장과 평택 공장 모두 일본 니토덴코가 100%지분을 보유한 곳이다.
현숙 씨와 정혜 씨는 해고된 동료들과 함께 2023년 4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까지 모두 기각됐다. 노동위는 화재로 인한 법인 청산과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회사의 입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물량만 옮기고 노동자 고용책임은 무시했다”는 노조 입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조는 노동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법정 싸움과 별개로 공장 안에 있는 노조 사무실을 점거하며 농성을 계속했다. 이즈음 사측은 공장 철거 허가를 구미시에 신청했다. 구미시는 지난 2024년 1월 8일 철거를 승인했다. 그리고 이날 새벽, 박정혜 소현숙 씨는 공장에서 강제로 끌려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작년쯤에 이제 (법인) 청산인들이랑 함께 이제 경찰들도 같이 여기 앞에 많이 깔려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여기 올라오지 않았으면 진작에 다 끌려서 나갔을 거예요. 솔직히 여기까지 이렇게 올라오지 않았으면 우리 문제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처음 옥상에 올라왔을 때는 금방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평생 니토덴코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고용승계하는 일이 이렇게 안 될 일인가요. 440일을 넘길 줄 몰랐죠.- 박정혜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
옥상 농성 기간 사측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회사는 박정혜, 소현숙 씨를 포함한 해고 노동자 10명을 상대로 '손배가압류'와 '공장철거 방해금지 등 가처분'을 냈다. 해고 노동자들의 공장 철거 방해로 손해가 발생한다면 이를 보전하기 위해 노동자들에대한 가압류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2023년 8월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 노동자 10명의 부동산과 전세보증금 등 모두 4억원의 가압류를 인정했다. 실제 노동자들의 전세보증금과 통장이 압류됐다. 회사는 공장 점거로 청산 절차가 늦어지면서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며 노조와 해고 노동자 개개인을 상대로 총 2억 원을 물어내라는 손해배상 소송도 청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26일 노조가 법원에 제기한 가압류 집행 취소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현재 가압류는 풀린 상태다.
“우리의 고공농성 기록을 깨는 사람이 없도록”
법으로도, 고공 농성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 국내에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투자기업이 회사를 청산할 때 노동자들의 고용 충격을 완화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외국인투자기업이 폐업과 청산 등을 검토할 때 이 사실을 노동자와 정부에 알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사·정 3자가 협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OECD 가이드라인은 강제 사항이 아니다. 현재로선 외국인투자기업의 노동자 보호 책임을 강제할 법이 없다.
현재 니토덴코는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과 일본 시민들은 지난해 니토덴코가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한·일 양국의 OECD 국내연락사무소(NCP)에 제소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노조는 ‘외투기업’의 일방적인 청산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이른바 ‘니토 방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니토(덴코) 자본의 만행을 알려서 이 문제가 정말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누구나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버려질 수 있다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고공농성을 버티고 있어요. 우리의 농성이 근본적으로는 ‘외투기업’이 한국 정부의 혜택만 받고, 이득을 챙겨 ‘먹튀’ 하지 않도록 관련 법 제정까지 이어지길 바라요. 저희가 고공에서 어떻게든 버텨서 고용승계 쟁취하고, '니토방지법' 제정도 꼭 끌어 내겠습니다.- 박정혜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2024년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공장 옥상에 설치된 박정혜, 소현숙 씨의 천막 농성장.
2023년 1월 해고자 17명이 시작한 투쟁은 시간이 길어지며 7명만 남았다. 2명은 공장 옥상을, 5명은 노조 사무실을 지킨다. 평범한 일상을 포기한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땅에서 옥상으로 하루 두 번씩 식사를 올린 날도 벌써 1년 3개월째다.
고공으로 식사를 올리는 노동자는 “늘 미안한 마음”, 식사를 받는 노동자는 “늘 고마운 마음”이다. 취재진이 공장을 방문했던 날 옥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고 있던 한국옵티칼지회 정나영(45) 조합원은 이런 말을 했다.
고공에 있는 2명을 보면 늘 미안해요. 7명이 함께 싸우고 있지만, 우리를 대신해 2명이 고공에 올라간 거니까요. 그래서 뭐라도 더 만들어 주고 싶고, 더 해주고 싶고 그래요. 우리는 언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정나영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해고 노동자)
경북 구미시 구포동 외국인투자지역에 입주해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지난 3월 19일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이지영 사무장이 공장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정혜 씨에게 식사를 전달하고 있다.
고공 농성자 박정혜 씨의 집은 공장 바로 앞 아파트에 있다. 차로 3분 거리다. 눈앞에 집을 두고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언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일단은 회사랑 대화 자리가 마련이 돼야 어떻게 내려가든지 말든지 결정할 것 같아요. 아직 회사에서는 아예 그냥 묵묵부답으로 나오고 있으니까.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음 좋겠어요. 윤석열의 계엄 사태 이후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묻혔거든요. 하루빨리 탄핵이 되어 저희도 고공농성 중인 다른 노동자들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장기 고공농성’이라는 우리의 타이틀을 깨는 노동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박정혜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
뉴스타파는 한국옵티칼 배재구 대표에게 해고 노동자 고용승계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배 대표는 “공장이 전소돼 해고가 불가피했으며, 평택 공장은 구미 공장과 별개의 법인이 운영하므로 고용 승계는 어렵다. 니토덴코 본사도 같은 입장”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파 홍여진 sara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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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에 있는 일본 ‘니토덴코’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의 모습. 9m 높이 공장 옥상에서 박정혜, 소현숙 씨가 1 단수취급명사 년 3개월 째 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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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혜, 소현숙 씨는 구미 한국옵티칼에서 각각 12년, 16년을 일했다. 하루 12시간씩 완성된 LCD 편광필름의 불량을 검수하는 일을 했다. 노동 강도는 높았지만,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이었기에 큰 불만 없이 일했다.
외국인투자지역인 경북 구미4공단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한국옵티칼은 일본 기업 ‘니토덴코’가 100%지분을 가진 LCD 편광필름 생산 업체다. 니토덴코는 2022년 10월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자 법인 청산을 결정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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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2022년 10월 4일 발생한 화재로 공장이 전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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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의 모기업 ‘니토덴코’는 경북 구미뿐 아니라 경기도 평택에도 LCD 편광필름 제조 자회사(한국니토옵티칼)를 두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물량 계약은 납품처와 자회사가 아닌 본사 ‘니토덴코’가 직접 했다. 니토덴코가 납품처와 계약한 뒤 각 자회사에 물량을 배정하는 식이다. 공장 화재 이후 니토덴코는 구미의 LG디스플레이 납품 물량을 평택 공장으로 옮겼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물량을 옮긴 만큼 평택 자회사로 자신들이 옮겨 일할 수 있도록, 고용승계를 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에선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이고, 법률상의 업무 양도양수도 없었기 때문에 고용승계 의무 역시 없다’고 맞섰다. 대신 평택에서 노동자 30명을 신규로 채용했다. 박정혜, 소현숙 씨는 배신감이 들었다.
16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회사인데 한순간에 불이 난 건 정말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긴 한데 근데 그 과정에서 경영진들이 저희한테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할 테니까 기다려 달라고 말했거든요. 그 한 달 동안 저희는 정말 회사를 믿고 기다렸는데, 물량은 평택의 자회로 옮기면서 직원은 해고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30명을 신규 채용할 거면 해고한 17명을 먼저 고용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과거에는 니토덴코의 다른 자회사로 전환 배치되는 경우 있었거든요. - 소현숙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조직부장
“혜택만 받고 책임은 회피하는 ‘먹튀’기업 없어야”
노동자들이 더 화가 나는 건 ‘니토덴코’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외국인투자기업으로 한국에 각종 혜택을 받고 공장을 세운 뒤 노동자 고용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옵티칼은 구미공단에 입주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18년간 7조 7,000억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2~2022년)간 연평균 영업이익은 200억 원이 넘었다. 한국옵티칼의 지분 100%를 가진 니토덴코가 배당금으로 가져간 돈만 1,573억 원(연평균 143억원)이다. 공장 화재 보험금도 재건 비용(약 1,000억 원 추정)을 넘어선 1,300억 원가량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미 공장의 물량은 평택으로 옮기고, 화재 피해는 보험금으로 만회하고…니토덴코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한국에서 혜택을 보고, 이익을 낸 만큼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도 다하라는 게 저희 요구인데요. 현행법에는 한국에서 혜택을 받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법인을 청산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해도 제동 걸 수 있는 방안이 없어요.- 소현숙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조직부장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해고 이후, 평택에 있는 또 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평택공장 앞에서노 농성을 벌였다. 구미 공장과 평택 공장 모두 일본 니토덴코가 100%지분을 보유한 곳이다.
현숙 씨와 정혜 씨는 해고된 동료들과 함께 2023년 4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까지 모두 기각됐다. 노동위는 화재로 인한 법인 청산과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회사의 입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물량만 옮기고 노동자 고용책임은 무시했다”는 노조 입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조는 노동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법정 싸움과 별개로 공장 안에 있는 노조 사무실을 점거하며 농성을 계속했다. 이즈음 사측은 공장 철거 허가를 구미시에 신청했다. 구미시는 지난 2024년 1월 8일 철거를 승인했다. 그리고 이날 새벽, 박정혜 소현숙 씨는 공장에서 강제로 끌려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작년쯤에 이제 (법인) 청산인들이랑 함께 이제 경찰들도 같이 여기 앞에 많이 깔려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여기 올라오지 않았으면 진작에 다 끌려서 나갔을 거예요. 솔직히 여기까지 이렇게 올라오지 않았으면 우리 문제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처음 옥상에 올라왔을 때는 금방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평생 니토덴코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고용승계하는 일이 이렇게 안 될 일인가요. 440일을 넘길 줄 몰랐죠.- 박정혜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
옥상 농성 기간 사측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회사는 박정혜, 소현숙 씨를 포함한 해고 노동자 10명을 상대로 '손배가압류'와 '공장철거 방해금지 등 가처분'을 냈다. 해고 노동자들의 공장 철거 방해로 손해가 발생한다면 이를 보전하기 위해 노동자들에대한 가압류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2023년 8월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 노동자 10명의 부동산과 전세보증금 등 모두 4억원의 가압류를 인정했다. 실제 노동자들의 전세보증금과 통장이 압류됐다. 회사는 공장 점거로 청산 절차가 늦어지면서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며 노조와 해고 노동자 개개인을 상대로 총 2억 원을 물어내라는 손해배상 소송도 청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26일 노조가 법원에 제기한 가압류 집행 취소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현재 가압류는 풀린 상태다.
“우리의 고공농성 기록을 깨는 사람이 없도록”
법으로도, 고공 농성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 국내에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투자기업이 회사를 청산할 때 노동자들의 고용 충격을 완화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외국인투자기업이 폐업과 청산 등을 검토할 때 이 사실을 노동자와 정부에 알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사·정 3자가 협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OECD 가이드라인은 강제 사항이 아니다. 현재로선 외국인투자기업의 노동자 보호 책임을 강제할 법이 없다.
현재 니토덴코는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과 일본 시민들은 지난해 니토덴코가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한·일 양국의 OECD 국내연락사무소(NCP)에 제소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노조는 ‘외투기업’의 일방적인 청산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이른바 ‘니토 방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니토(덴코) 자본의 만행을 알려서 이 문제가 정말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누구나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버려질 수 있다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고공농성을 버티고 있어요. 우리의 농성이 근본적으로는 ‘외투기업’이 한국 정부의 혜택만 받고, 이득을 챙겨 ‘먹튀’ 하지 않도록 관련 법 제정까지 이어지길 바라요. 저희가 고공에서 어떻게든 버텨서 고용승계 쟁취하고, '니토방지법' 제정도 꼭 끌어 내겠습니다.- 박정혜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2024년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공장 옥상에 설치된 박정혜, 소현숙 씨의 천막 농성장.
2023년 1월 해고자 17명이 시작한 투쟁은 시간이 길어지며 7명만 남았다. 2명은 공장 옥상을, 5명은 노조 사무실을 지킨다. 평범한 일상을 포기한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땅에서 옥상으로 하루 두 번씩 식사를 올린 날도 벌써 1년 3개월째다.
고공으로 식사를 올리는 노동자는 “늘 미안한 마음”, 식사를 받는 노동자는 “늘 고마운 마음”이다. 취재진이 공장을 방문했던 날 옥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고 있던 한국옵티칼지회 정나영(45) 조합원은 이런 말을 했다.
고공에 있는 2명을 보면 늘 미안해요. 7명이 함께 싸우고 있지만, 우리를 대신해 2명이 고공에 올라간 거니까요. 그래서 뭐라도 더 만들어 주고 싶고, 더 해주고 싶고 그래요. 우리는 언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정나영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해고 노동자)
경북 구미시 구포동 외국인투자지역에 입주해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지난 3월 19일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이지영 사무장이 공장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정혜 씨에게 식사를 전달하고 있다.
고공 농성자 박정혜 씨의 집은 공장 바로 앞 아파트에 있다. 차로 3분 거리다. 눈앞에 집을 두고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언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일단은 회사랑 대화 자리가 마련이 돼야 어떻게 내려가든지 말든지 결정할 것 같아요. 아직 회사에서는 아예 그냥 묵묵부답으로 나오고 있으니까.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음 좋겠어요. 윤석열의 계엄 사태 이후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묻혔거든요. 하루빨리 탄핵이 되어 저희도 고공농성 중인 다른 노동자들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장기 고공농성’이라는 우리의 타이틀을 깨는 노동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박정혜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
뉴스타파는 한국옵티칼 배재구 대표에게 해고 노동자 고용승계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배 대표는 “공장이 전소돼 해고가 불가피했으며, 평택 공장은 구미 공장과 별개의 법인이 운영하므로 고용 승계는 어렵다. 니토덴코 본사도 같은 입장”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파 홍여진 sara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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