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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사는 유슬기(25)씨의 삶은 12·3 내란사태 이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올해 1월 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대학원생노조)에 가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분회 설립을 준비 중이다. 대학원 석·박사 통합 과정에 진학한 지 올해로 5년이 됐지만 지난해까지 노조 가입에 뜻이 없었다. 생각을 바꾼 건 광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힘을 보태기 위해 자주 나간 대전 서구 은하수 네거리 집회는 각계각층 시민들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장 신협저축은행 이었다.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걸 새삼 인지한 것 같아요. 전업주부의 발언을 들으며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로 보지 않는구나 싶었고요. 우리 사회가 다양한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노조 가입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많은 대학원생은 연구원 등으로 일 예금이자 하지만 학생이라는 이유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노동자로 인정 못 받는 노동자들
12·3 내란사태부터 123일간 이어진 응원봉 광장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이나 정당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특히 광장의 주체로 주목받은 2030 여성·성소수자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주로 청년층 기업은행마이너스통장만들기 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인 대학원생노조의 경우 지난해 12월2일과 올해 4월4일 사이 조합원이 두 배 이상 늘었는데, 신규 조합원 가운데 여성과 남·여 이외 성별은 각각 51%, 8%였다. 신규 조합원 유입으로 남성 조합원 비중은 59%에서 41%로 줄었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4일부터 올해 4월 8일까지 당 sbi저축은행 스피드론 에 가입한 이들 18%가량이 2030 여성이다. 전체 당원 가운데 2030 여성 비중이 5%에 그치는 점을 고려해볼 때 눈에 띄는 변화다. 39살 미만 정치인들의 성장을 돕는 비영리단체 뉴웨이즈의 뉴스레터 구독자는 지난해 11월 말 3만3959명에서 이달 초 5만3170명으로 56% 늘었다. 매달 정기 후원자도 553명에서 782명으로 41% 증가했다고 뉴 은행 사업자대출 웨이즈 쪽은 밝혔다.



백단비씨는 지난해 12·3 내란사태 이후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백단비 제공


윤 대통령 탄핵 광장이 인생 첫 집회였던 백단비(33)씨는 한 달 전 더불어민주당 당원이 됐다. 민주당 화성시(정) 지역위원회의 여성위, 청년위, 홍보소통위원회뿐 아니라 화성시의 청년정책협의체까지 활동 무대도 점점 넓어지는 중이다.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는 지난해 11월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이직을 준비하던 중에 내란의 밤을 목격했다. 시민들이 탱크를 막아선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나가게 된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의 힘을 깨달았다고 했다. “중·고등학생 시민들이 발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는 발언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는데 나보다 어린 시민분들이 저 자리에 나와 목소리를 낸다는 게 울림이 컸던 것 같아요. 성인으로서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어요.”
학생 시민들 모습에 죄책감·책임감
내란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정치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겠다 싶었다. 정치인이 어떻게 선출되는지 이들의 의정 활동을 청년 시각으로 어떻게 살펴야 할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올해 초 뉴웨이즈가 여는 ‘젊치인(젊은 정치인의 줄인 말)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게 사회 변화를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란 생각”이 들자 정당 가입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강명지(트위터 활동명 모레·27)씨는 내란의 밤 이후 여의도·광화문을 거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전봉준 투쟁단을 지키려고 간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지난해 12월 21~22일)에서 원·하청 노동자 차별과 부당 해고 등에 맞서는 전국의 투쟁 사업장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등으로 이어진 후원 물결에 동참했고, 2024년 마지막 날엔 거통고지회가 남태령 시민을 초대한 새해맞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연대버스를 타고 경상남도 거제로 향했다. ‘성 중립 숙소’ 마련 같은 큰 환대의 기억은 지속적인 연대, 나아가 노조 가입으로 이어졌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깃발을 든 강명지씨의 모습. 강명지 제공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뒤 논문 작업 중인 그는 최근까지 대학원생노조를 알지 못했다. 노조에 가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투쟁 사업장에 개인으로 연대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평소 품었던 문제의식도 크게 작용했다. “대학원 자체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학생이 버티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어떻게 하면 연구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했던 명지씨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왔다.
다양한 연구 노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세 사람이 만들어 내고픈 변화는 무엇일까. 슬기씨는 분회 활동을 통해 대학원생에 대한 처우 개선을 끌어내고 싶다. “대학원생들의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요.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없고, 휴학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를 못하게 하는 상황도 있어요.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쉴 수 없는 환경인 거죠.” 명지씨는 연구 노동의 공공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길 바란다.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 학업을 할 수 있다면 다양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경험, 계층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경제적인 문제가 연구 노동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고 싶어요.”
단비씨는 탄핵 광장으로 쏟아진 청년들의 목소리가 현실 정치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주민이나 성소수자, 소외된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권이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를 해 이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원으로서 그런 부분이 보이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어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