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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겹 추상화'서 헤매는 즐거운 방황
● 이영준
지하철 노선도건축설계 같은레이어 추상화
유화·아크릴 등다양한 소재로  깊이감 더해



방공제이영준, ‘Notation_ outgoing invasion #4’(2024). 피비갤러리 제공


지도는 대개 방황하는 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영준(41)의 ‘지도’는 조금 다르다. 그의 그림은 얼핏 지하철 노선도나 건축설계도, 또는 풍경지도를 연상케 한다. 그 위에 쌓인 10여 집담보추가대출 겹의 층이 사물의 원래 형태를 흐린다. 시선이 캔버스에 갇혀 ‘즐거운 방황’을 하게끔 작가가 설계한 장치다.
서울 삼청동 피비갤러리의 ‘오렌지 컨테이너’ 전시는 작가의 신작 추상회화 22점을 선보인다. ‘레이어 기법’으로 대표되는 최근 3년간 작가의 예술 실험을 모았다. 레이어 기법은 회화의 겹을 지층처럼 구분해 쌓는 표현 방식이다. 유화 직업군인 부사관 와 아크릴, 목탄, 차량 도색용 페인트 등 여러 소재가 어우러지며 깊이를 더한다.
작가는 2012년 성균관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 미술대학으로 건너갔다. 그의 그림에선 안젤름 키퍼, 게오르크 바젤리츠 등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의 강렬한 색감이 엿보인다. 기하학적 요소로 각 레이어를 구성한 부분에선 에티오피아 출신 작가 줄리 머레투 정부근로자대출 의 건축적 추상회화를 떠올릴 만하다.
그의 작품은 특정 주제를 전하지 않는다. ‘휙(Schwuppdiwupp)’ ‘물감을 씻어내다(Wusch)’ 등 단순한 소리나 행동을 의미하는 제목이 보여준다. 메시지에 이끌리기보다 형식미에 푹 빠져 감상하길 바랐다는 게 작가의 얘기다.
작가가 레이어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생태1등급 최근 일이다. 독일에서 선보인 초기작은 자전적 서사를 담은 회화가 주를 이뤘다. 일례로 2015년작 ‘고향’은 탁한 하늘을 배경으로 그린 무덤 앞에 빈 소주병이 놓인 장면을 묘사했다. 작가는 “수년간 비슷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한계에 부딪혔고, 새로운 화법을 찾던 중 레이어 기법을 실험하게 됐다”고 말했다. 레이어 기법에 관한 작가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알루미늄이나 벽화 등 캔버스를 대체할 배경을 찾고 있어요. 평면을 벗어나 3차원 설치작업으로 레이어를 확장해보려고 합니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무의식 항해…동양 붓질과 초현실주의 만남
● 이유진 
전통 한지에 그린신작 '잠수부'
물에 다이빙하듯 엎드려 작업동양화 여백의 미 곳곳에 묻어나



이유진, 'Taucher'(2024). 우손갤러리 제공


검은 잠수복을 입은 한 사람이 심연을 향해 가라앉고 있다. 호수의 밑바닥에 드리운 블랙홀 같은 구멍엔 비스듬히 기운 초승달이 떠 있다. 단번에 봐도 이 세상 풍경이 아니다. 무의식을 향해 침잠하는 작가 자신을 묘사한 이유진(44)의 신작 ‘Taucher(잠수부)’다.
20세기 전후(戰後) 유럽에서 유행한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분류하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동양적인 요소를 발견했다면 그렇다. 서양의 캔버스가 아니라 전통 한지에 그려진 점이 하나다. 메마른 붓으로 꺼칠꺼칠하게 표현한 암벽은 동양화 기법인 ‘준법(皴法)’을 떠올리게도 한다.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유진 작가의 개인전 ‘Positive Sinking’은 서울 성북동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동서양의 기법을 혼합한 초현실주의적 회화와 조각 20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가라앉다’(Sink)와 ‘생각하다’(Think)의 영어 발음이 비슷한 점에 착안한 언어유희다. 작가는 “작품을 그릴 때도 종이를 이젤에 세우지 않고, 마치 물에 다이빙하듯 엎드려 그린다”고 했다.
엉뚱하게 조합된 동식물과 인물은 각 대상이 내포한 상징적인 의미에 대한 호기심을 안긴다. 둥지가 오히려 새를 품고 있는 2021년작 ‘Eggs(달걀)’도 그렇다. 화면을 양분하는 듯한 대칭 구도가 돋보인다. 현실과 꿈이 혼재한 상태를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내면으로 ‘잠수’를 시작한 것은 2004년 독일 유학길에 오르면서다. 작가는 “나의 무엇이 한국적인 요소고, 무엇이 유럽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검증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독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2년간 한국화를 전공했다. 신작 ‘Napping(낮잠)’ 등에 등장하는 나무에선 옛 문인들의 노송도(老松圖)가 겹쳐 보인다. 배경 묘사를 절제한 점에서 동양화의 여백의 미도 감돈다. 전시는 4월 5일까지.
 수술대 오른 풍경화…해부학과 자연의 결합
● 조한나 
식물인듯중추신경인듯해부학 이미지로인간관계 질문
현미경으로 본듯인공적 시점 구성



조한나, '무제'(2024). P21제공


식물일까 혹은 인체의 일부일까. 조한나(34)의 ‘무제’(2025)는 둘 사이에 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직선에서 좌우로 뻗어나가는 선은 식물의 뿌리와 인간의 중추신경계를 동시에 닮았다. ‘피부 아래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작가의 인간관이 투영된 작품이다.
서울 이태원동 P21의 ‘기원의 땅’은 조한나·이천국을 조명한 2인전이다. 1990년대생인 이들이 각각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회화와 조각 10여 점을 걸었다. 이 중에서 독일에 기반을 둔 조한나는 해부학적 인체 이미지를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그는 베를린과 슈투트가르트, 라이프치히 등지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조한나는 신체와 땅, 자연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인공적인 시점으로 그린다. 그의 붓끝에서 인간의 횡격막은 활짝 핀 꽃의 형상으로, 습지에 돋아난 균류는 팔다리의 관절로 재구성된다. 표피와 진피, 피하조직으로 구성된 피부 단면은 퇴적물이 쌓인 지층의 단면을 연상케 한다.
2019년 독일로 처음 건너갔을 당시만 해도 그의 관심사는 인물화였다. 작가는 “머리카락이나 표정 등 인물의 성별을 추측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한 인물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선의 느낌 때문에 성별이 특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예 껍데기를 없애보자’는 발상으로 해부학과 자연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을 2년 전부터 내놓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캔버스나 나무판자 위에 물감의 두꺼운 층을 쌓고 이를 긁어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현미경과 X선 등 기계의 시선이 들춰내는 건 인간적인 선입견이 사라진 세계다. 오로지 물질의 생동감만이 화면에 남아 숨 쉰다. 작가는 “자연과 해부학의 유사성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내면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