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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조금씩은 들뜬 크리스마스 시즌. 한밤중에 깨어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한 사람의 내면은 근심으로 가득하다. 남자는 얼마 전 자신이 눈앞에서 본 것, 그리하여 깊이 자각하게 된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거대하고 조직적인 불의 앞에 선 나의 양심과 정의가 너무 작고 초라하기에 더욱 짙게만 느껴지는 어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렇게 까마득히 이어지는 주인공의 불면의 밤을 따라간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부커상(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 후보에 오른 클레어 키건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원작은 원서 기준 116쪽에 불과해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작품'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적금 50만원 . 영화는 원작의 결에 별다른 설명을 덧대는 대신 책 속의 풍경과 정서를 고스란히 펼쳐 보인다. 조용한 정물화의 인상을 닮았지만, 그 안에는 양심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격랑이 존재한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고려대 대학원 침묵할 수 없는 사람의 내면
주인공 빌 펄롱(킬리언 머피)은 신실하게 노동하고, 아내와 이룬 가정 안에서 다섯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석탄 장수인 그의 하루는 반복적 일과로 채워진다. 마을 곳곳에 석탄을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종일 일하느라 검게 변한 손을 구석구석 솔로 닦아낸다. 간단한 식사 후 사법고시고사장 잠에 들고 아침이면 다시 반복되는 일과. 빌은 고된 노동에 별다른 이유와 불평을 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다.
빌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어느 날부터다. 그는 야외 창고에 감금된 젊은 여성 세라(자라 데블린)를 발견한다. 세라의 몸에는 수녀원에서 오래도록 노역하고 학대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사실 수녀원의 견고 우리은행 신용대출 금리 한 문 안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오래도록 침묵해 왔다. 지역 공동체의 모든 질서는 수녀원을 위시한 가톨릭 교회의 규율 아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실체를 본 순간, 빌은 그로부터 쉽게 눈을 돌릴 수 없다. 그렇다고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을 당장 취하기도 어렵다. 침묵으로 공모된 시스템 안에서 농협자산관리 부조리한 권력에 저항하는 대가는 참혹할 것이다. 침묵하지 않음으로써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 고난은 무엇일까.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부조리에서 쉽게 눈을 돌릴 수 없는가. 빌의 고요한 밤은 긴 고민과 질문들로 채워진다.
원작을 미처 읽지 않았거나 아일랜드의 참혹한 역사인 '막달레나 세탁소'를 접하지 못한 관객에게 이 영화는 드문드문 빈 곳을 남겨둔 퍼즐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가톨릭 교회와 정부의 운영 및 지원하에 소위 타락한 여성, 방탕한 소녀들을 계몽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기관이다. 미혼모, 성폭력 범죄 피해자, 성매매 여성, 혹은 그저 외모나 행동이 불순해 보인다는 이유 등으로 아일랜드의 수많은 여성이 이곳에 감금돼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채 강제로 노역했다.
1922년부터 1998년까지 참회와 갱생을 이유로 감금된 무려 5만6000명 이상의 젊은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고통받았다. 후에 이 부지에서 유해가 발굴된 것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내에서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2012년 2월 당시 총리였던 엔다 케니가 국가를 대신해 사과한 뒤 보상을 위한 여러 기금이 설립됐다.
영화에 구체적 설명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빌이 세라를 발견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가톨릭 교회가 국가의 모든 부분과 결탁하며 사회를 통제했던 아일랜드의 억압적 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조용하고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기를 강요받았다. 영화 속에서 근심을 털어놓은 빌에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모른 척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있는 거야. 그쪽 사람들과 척지면 안 돼. 어쨌든 우리 애들은 그런 일 안 겪을 거야." 개인의 인간적 감정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분위기에 이미 젖어버린 이들은 부수적인 피해자에 다름 아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영웅이 아닌 '고민하는 사람'의 선의
영화는 학술 보고서와는 달라야 한다. 여기에는 역사의 객관적 기록과는 다른 영화만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캐릭터의 눈을 통해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를 통해 삶의 더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연결할 수 있게 하는 부드러운 추동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세라가 아니라 그를 발견한 빌 펄롱을 경유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유다.
과묵한 인물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방식의 이 영화는 원작이 그러했듯 '보여주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막달레나 세탁소 안에서 벌어지는 학대의 구체적 양상보다, 폭력으로부터 눈 돌릴 수 없는 개인의 양심을 이야기한다. 고통과 시련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사이에서 사랑은 어떤 일을 하는지.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가치는 무엇이고 그를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다.
빌은 엄청난 카리스마로 관객을 이끄는 영웅이 아니라 두려움 많은 평범한 사람에 가깝다. 스스로를 특별히 정의로운 사람이라 느끼지도 않고, 타인의 의견을 완강히 거부하며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타입도 아니다. 다만 그는, 모른 척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가정에서 학대받는 것이 빤한 아이에게 동전 몇 푼이라도 쥐여주는 이가 빌이다. 맨발로 남의 집 계단에서 우유를 허겁지겁 훔쳐먹는 아이에게, 수녀원에 억지로 자신을 밀어넣는 부모에게 울며 사정하는 소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에 괴로움을 느끼고 홀로 맞이한 불면의 밤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불의 앞에서 진실한 영혼이고자 하는 빌이 느끼는 두려움은 영화 내내 신중하게 포착된다. 그는 눈 돌리고 망각함으로써 편해지는 대신 기억하고 바라보기에 계속 고통받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빌은 과거 입주 가정부로 일하던 어머니와 어린 자신을 내치지 않고 품어주었던 윌슨 부인(미셸 페얼리)의 보살핌이, 그 밖에 인생에서 작은 깨달음과 사랑을 축적하게 했던 모든 '사소한 것들'이 지금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세라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뒤에야 내내 굳어있던 빌의 표정에는 그제야 옅은 미소가 감돈다. 원작은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설명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영화와 원작 소설이 비추지 않는 영역 안에서 빌과 그의 가족은 여러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어쩌면 침묵하지 않는 데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빌은 영웅이 아닌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세상은 그런 이들의 선의가 모여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 전 광장에서 함께 경험했던 색색의 빛나는 응원봉들과,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한강 작가가 언급한 연설문의 문장과도 포개지는 하나의 진실이기도 할 것이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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