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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신민주 캠페이너]

11월 25일, 가로 30m, 세로 24m 길이의 거대한 눈 모양 깃발이 부산 요트경기장 위에 떠올랐다. "Governments, The world is watching. Cut plastic production Now! (각국의 정부는 주목하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지금 당장 오늘이나내일 플라스틱 생산을 줄여라!)"라고 쓰인 깃발은 총 6472명의 세계 시민의 초상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거대한 눈이 응시하고 있는 곳은 INC-5, 즉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회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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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회의(INC5)가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가운데, 그린피스가 협상장 인근 요트경기장에서 #WeAreWatching(전 세계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깃발을 띄우며 생산 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협약 지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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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peace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회의인 INC-5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이로써, 내년에 세계는 다시 플라스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산유국들의 반대와 기업의 신용보증기금대출조건 로비가 이어지며 협상은 난항을 겪었고,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국가들과 폐기물 중심 관리를 원하는 산유국 사이의 대립이 봉합되지 못했다. 1천여 명의 시민들의 행진, 수많은 기자회견과 퍼포먼스, 환경 단체들의 성명 이후 플라스틱 생산 감축의 가능 여부는 내년으로 한 번 더 미루어졌다.

플라스틱, 썩지 않는 이자율 높은 예금 영원의 저주
플라스틱이 썩어 없어지는 모습을 본 인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작은 조각으로 플라스틱이 쪼개지더라도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오늘 사용한 일회용 컵이 자연에 해를 끼지치 않고 사라지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류는 아직 없다. 어쩌면 인류는 인간이라는 종의 운명보다도 더 길게 이 세상에 남아있을 물질을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셈일지도 모른다.

플라스틱의 시간은 인류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남아있지만, 그 플라스틱이 쌓이는 공간의 시간은 그렇지 못하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썩지 않는다는 특성으로 인해 플라스틱은 생산과 소비와 폐기까지의 전 과정 동안 지구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플라스틱을 삼킨 새의 사체에서도, 해안가와 심지어 인간의 몸 속에서도 검출되는 미세 플라스틱에서도, 점점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지구의 운명을 결정짓는 바로미터로 기능한다.










▲  장항습지 내 스티로폼과 페트병 쓰레기 사이에서 서식하는 왜가리. 장항습지는 한강 하류의 유일한 람사르 습지로,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다. 그린피스의 조사에 따르면 장항습지에서 발견된 쓰레기는 총 4,006개였으며, 이 중 플라스틱 쓰레기는 3,945개로 무려 98.5%에 달했다.


ⓒ Greenpeace




분명한 것은, 플라스틱은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플라스틱은 인간이 만들어냈음에도 인간이 완벽히 없애는 법을 알아내지 못한 물질이기도 하다. 곤란한 상황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을 극복하는 것이고,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둘러싼 많은 갈등은 크게 보자면 이 두 가지 원칙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인류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인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험을 관리하자는 주장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 채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자는 주장 중 전자의 주장을 택해왔다. 이번 플라스틱 협약 과정에서 나온 "플라스틱 자체가 아닌 오염이 문제"라는 표현은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인류의 행위를 통한 편익은 유지하면서도 위협을 인간의 통제 속에 둘 수 있다는 믿음은 꽤 오래 이어져 온 믿음이다.
그러나 편익과 위협을 나누어 후자만 관리하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편익을 뛰어넘는 위협이 몰려올 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무력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특히 환경문제에서 이러한 지점이 두드러진다. 기후재난과 플라스틱 오염, 원전 사고와 지구 온난화 등이 그렇다.
위험과 편익이 뒤섞이고, 편익이 위험의 유일한 원인일 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애초에 인간이 플라스틱을 만들었더라도, 인간은 플라스틱이 될 수 없는 유기체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언젠가 죽고 완전히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진실이다.
여성주의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이 사실을 지적하며 '쑬루세(Chthulucene)'를 제안했다. 인류가 멸종시킨 수많은 생물과 지질학적으로 미친 영향을 강조하며 '인류세', 즉 인류가 만든 지질 시대를 뜻하는 표현이 등장했다면 '쑬루세'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컫는 표현에 가깝다. 쏠루세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도전이 아니라, 인간도 하나의 유기체로서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건 또다시 시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의 시간을 영원에 놓지 않고, 죽어 사라지는 현재의 시간으로 돌려야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다. 땅속에 있는 모든 것을 추출하고 편의에 따라 사용하는 행위는 인간과 그 밖의 모든 것이 구분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실상은 인간은 지구에서 외따로 존재하는 생물이 아닌 다른 생물들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 땅속에 있는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또한 땅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할 때이다.
겸손은 쑬루세의 중요한 윤리이다. 인간은 인간 자체의 한계와 지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생존을 위해 과거의 편익을 내려놓고,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업을 지닌 존재일 뿐이다. 영원을 약속하는 플라스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썩어서 사라질 모든 존재 속의 한 개체로서 세상을 고민할 때 인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플라스틱의 시대를 끝내자










▲  INC-5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을 앞두고, 최소 1,500명이 부산에서 플라스틱 생산 축소를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 Greenpeace




INC-5에서 인류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험을 관리하자는 주장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 채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자는 주장이 경합을 이룬 까닭이다. 그럼에도 아예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반인 100여 개 국가가 파나마 성명을 통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지지했다. 이는 환경 단체들과 플라스틱 협약을 지켜보고 있었던 수많은 시민,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갈 길이 아직 남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우호국 연합(HAC) 소속임에도 생산 감축을 포함하는 강력한 협약을 촉구하는 성명에 끝내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심지어 협약의 결과가 나오는 회의 개최지가 대한민국의 부산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특히 아쉬운 면모이다.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강력한 플라스틱 협약이 필요하다. 아쉬운 결과이지만, 우리가 이 기회를 통해 한 발짝 멀리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현실이 어둡지만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플라스틱 시대의 종결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불안과 위험의 시대에 영원을 약속하는 일을 끝내자. 대신, 썩어 사라지는 존재들을 위한 피난처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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