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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즙수병햇 작성일25-03-06 17:42 조회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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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엄마의 장례를 치른 화자 ‘동이’에게 친구 ‘혜란’이 전화를 걸어온다. 당연히 동이의 안부를 물을 줄 알았던 혜란은 대뜸 ‘석이’가 캄보디아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세 명은 9년 전 대학시절 해외봉사단으로 한 계절을 캄보디아에서 보낸 친구 사이다. 동이와 혜란은 석이를 찾아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2014년, 캄보디아 바울학교에서 세 친구는 학생들을 위한 교재를 제작하거나 한국어와 영어, 음악 수업을 도맡으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의심이 피어오른다. 석이의 문제 제기다. “어떤 애들은 나보다 영어를 잘하고 어떤 애들은 한국어 문법에 대해 놀랄 만큼 잘 알고 있기도 해. (…) 그럼에도 내가 여기서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딱 하나인 거 같아. (…) 내가 한국 30대 직장인 사람이라는 거. 조금 더 잘사는 나라 사람이라는 거.”(31쪽)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예소연 작가는 “슬픔을 잘 빚어 내 감정의 하나로 고이 모셔두고, 어떤 슬픈 마음이 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정호 대부업조회 선임기자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던 어느 수요일, 세 친구는 스마트폰 너머 한국에서 “온종일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며 처음 경험해 보는 끔찍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속했던 세계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과 “대상 없는 대구한국주택공사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수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느낌”(33쪽)에 휩싸인 그날 이후로 세 친구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어쩐지 날 선 상태로 서로를 대했고, 사소한 다툼을 벌이는 일도 잦았다.

무겁게 침잠한 나날에도 슬픔의 위계는 엄격히 작동한다. 세월호 참사에 안타까움을 파산신청비용 표하면서 2010년 캄보디아 프놈펜 물축제에서도 압사 사고가 발생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됐노라며 말을 꺼내는 바울학교 학생 ‘삐썻’. 그에게 석이는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잠시 머물다 가는 타국의 번민을 가까운 슬픔처럼 무겁게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화자 역시 석이의 의견에 동조한다. “우리조차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사건 개인일수대출 을 캄보디아 사람이, 하필 그런 식으로 부려놓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져서다.(59쪽)
수년이 흘러 30대가 된 세 친구는 이태원 참사를 겪는다. 석이는 어느새 “정치색이 너무 짙어서 만나기가 껄끄러운” 사람이 되어 버린다. 결혼을 앞둔 혜란이 청첩장을 주는 자리에서도 석이는 끝없이 이태원의 비극과 죽음을 되뇌어 기어코 혜란을 울게 만든다. “크나큰 불행을 혼자만 짊어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석이의 격앙된 마음의 근원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신의 고통에만 골몰해 차가운 말을 뱉는다. 요양병원에서 엄마를 간병하며 생계를 위해 발을 동동거리는 처지인 동이는 참사 이야기를 꺼내는 석이에게 말한다. “그럼 도대체 어떡하자는 건데. 일어난 일을.”(61쪽)




석이의 자취를 찾던 동이와 혜란은 삐썻의 안내로 2010년 350명이 사망한 프놈펜 꺼삑섬 물축제 압사 현장에 도착한다. 참사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지우려는 시도가 역력한 이곳에서, 동이는 엄마의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고는 생각한다. 상실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상실 속에서 슬픔에 둘러싸여 뚜벅뚜벅 살아가는 인생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동이는 마침내 말한다. “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113쪽)

소설가 예소연(32)이 지난해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경장편 ‘영원에 빚을 져서’는 사라진 친구를 되찾는 과정에서 과거를 소환해 지난 삶의 오류들을 되짚는 화자의 여정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개인의 슬픔과 집단적 애도를 엮어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이후 시간을 돌아보도록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으로 지난해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3위에 뽑힌 예소연은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평을 고루 받는 드문 작가다. 등단 4년 만인 올 초 ‘그 개와 혁명’으로 제4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작품이 수록된 ‘사랑과 결함’은 지난해 7월 출간 이후 벌써 7쇄를 찍었다. 열두 살 무렵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고, 문예창작 전공 학·석사 과정을 거치며 20대를 온통 소설에 대한 고민으로 보냈다는 그의 여로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작가를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화자의 친족 간병과 상실 경험은 자전적 이야기로 읽힌다.
“이 소설을 쓸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슬픔에 젖어 있었다. 병실에서도 쓰고, 간병을 교대할 때는 방에서 썼다. (작가의 아버지는 지난해 6월 위암 투병 중 별세했다.) 소설을 쓸 때는 온 마음을 다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마음속에 있는 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늘 현재 매몰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데 최근 가장 중요한 화두가 기억과 상실, 애도에 관한 것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는데, 한편 아빠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복잡한 마음이다.”
―작품의 구상은 어디서 시작했는지.
“가장 수치스러웠던 경험을 꺼내어 소설로 풀어놓는 편이다. 실제 세월호 참사가 있던 시기 캄보디아에 머물렀는데, 내가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고 이상한 수치심이 들었다. 또 캄보디아 현지인으로부터 꺼삑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믿지 않았던 일이 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그처럼 단순하고 안일하게 감각했다는 사실이 나중에는 화살로 되돌아오더라. 친밀한 존재들을 떠나보내거나 이별과 가까워가는 일련의 사건을 겪고 보니 ‘한치 앞도 모른 채 태연하게도 살았구나’ 싶었다. 견디기 힘들었다. 이 감정을 소설로 다뤄야 하겠다고 생각이 번져갔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흔적을 한 작품에 엮는 일이 무겁지는 않았나.
“굉장히 무거웠다. 사건 자체가 심각한 것은 물론이고, 모두의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개인의 입장에서 그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면 좋지 않을까 했다. 어떤 무거운 일 앞에서도 ‘나는 관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일상에 사건이 스며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다.”
―화자는 “슬픔을 믿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슬픔에 ‘의지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상실의 슬픔을 이겨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슬픈 일은 앞으로도 많을 거고 그 슬픔 속에서도 마주해야 할 일은 많을 것이다. 외면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슬픔을 잘 빚어내 감정의 하나로 고이 모셔두고, 어떤 슬픈 마음이 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점차 껄끄러운 존재가 되어가는 석이의 모습 역시 인상적인데.
“석이는 매우 예민하고 촉각이 곤두 서 있는 사람이다. 진짜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온몸으로 감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질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거고 그럴 용기도 없다.(웃음) 석이는 고통을 겪다 돌연히 바뀌고 옛 친구들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인데, 석이의 변화엔 마땅한 이유가 있다. 이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아무리 나와 다르거나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왜 그럴까’를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람의 사정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바늘 구멍 하나라도 들어갈 틈새를 만드는 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내내 그는 차분하게, 하지만 또렷하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들려주었다. 등단한 이후로도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소설을 쓴 그는 여전히 전업작가가 아니다. 최근 계약직 일자리를 그만뒀지만,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20대 내내 소설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우울감도 심했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의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최소한의 고정비를 벌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취업이 정말 어려워요. 적은 돈을 쪼개고 또 쪼개어 융통해야 하다 보니 고정 수입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요.”
‘그 개와 혁명’, ‘팜’ 등 작가의 소설 속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자) 신분인 여성 주인공들의 표상이 겹쳐 보인다.
―차기작 계획은.
“올해 안에 쓸 단편소설 5편이 계약돼 있어요. 저는 늘 청탁이 없는 상황만 걱정했지 넘쳐서 걱정인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써야 할 원고가 이렇게 많아졌는데, 열심히 해야죠.(웃음) 아직은 주목을 받거나 독자들이 좋아해 주시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고 감을 잘 못 잡는 것 같아요. 내년엔 장편소설 구상도 해볼 작정입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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