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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로 하와이에 도착한 이인수씨는 마키키가 1층의 창고 같은 방을 침실로 썼다. 그는 하와이에서 양아버지 이승만을 세 번 모신다. 첫 방문이었던 1961년 12월 13일부터 1962년 3월 17일까지, 두 번째는 1964년 1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그리고 임종을 지키기 위한 1965년 7월 4일부터 19일까지가 전부였다.
그가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밤. 여독을 풀기 위해 2층에서 일찍 내려와 잠자리에 들 외국계카드사 무렵이었다. 들릴락 말락 하는 노크 소리에 놀라 일어난 이인수씨가 문을 열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프란체스카의 부축을 받고 선 이 박사가 있었다. 프란체스카가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버님이 지금 한국말로 뭐라고 말씀을 계속하시면서 나를 끌고 이리로 오자고 해. 그런데 무슨 말인지 통 못 알아듣겠으니 통역 좀 해줘."
아파트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면제이인수씨가 급히 방 안으로 모셨다. 작은 의자에 앉은 이 박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얘야, 우리나라 가는 데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이인수씨는 시간을 의미하는 질문 같지 않아서 "경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라고 물으니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인수씨가 프란체스카에게 통역을 해드리자, "또 그 걱정이 일어나셨구나. 윌버트 최씨가 한국에 돌아 해병대직업군인 가는 모든 비용을 대준다고 우리에게 약속했으니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게" 하며 그 과정을 낱낱이 설명했다. 이인수씨가 이 박사에게 우리말로 설명을 해드렸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언제 내가 우리 땅에 가게 돼?"
"한 서너 달 지나면 한국 날씨도 풀리고, 그러면 그때는 가시게 될 겁니다."
즉흥 4대보험 가입기간 적인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 박사는 그 말을 좀처럼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떨리는 손을 펴 보이더니 "자, 이것 좀 봐…내가 전에 가려고 할 때, 석 달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자, 지난번에도 하나 둘 셋…지금도 하나 둘 셋이니 왜 세월은 안 간다나?" 하며 세 손가락을 꼽았다 폈다 했다. 이번만은 속지 않겠으니 정확한 날짜를 대라 mg새마을금고보험 는 표정이었다.
"내가 한국 땅을 밟고 죽기가 소원인데…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해…모두 어떻게 할 작정이야?"
이승만의 상기된 두 볼에서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평양 열대섬의 밤하늘 아래서 세 사람은 한동안 속절없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양어머니 프란체스카와 양자 이인수씨가 종종 겪게 되는 일 중 하나였다.
"두 번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 건국정
이 박사가 컨디션이 좋을 때면 아들 이인수가 부축해 집 주변 산책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 박사는 나라 걱정을 하면서 반복해서 남긴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것이 이승만의 유언이 되었다. 필자가 받아 기록한 것을 옮긴다.
"나라를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 국민들은 잘 알아야 하며, 경제에서나 국방에서나 두 발로 굳건히 서서, 두 번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이 이승만의 독립정신이요, 건국정신의 반석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1898년 배재학당을 졸업한 이승만은 자기 백성을 노비로 삼았던 조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인의 국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에 헌신한 지 50년 만인 1948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 국가인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다. 국가 의식에 각성된 23세 때부터 이승만은 단 한 번도 사적인 이득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오늘날 수많은 보수·우파 지도층들은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유튜브 수익과 책 판매 수입은 늘었겠지만, 후학을 배양하는 자기 희생은 얼마나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층 인사들이 '나라를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정말 알고나 있는 것일까.
1961년 12월 21일에는 이인수씨가 아버님을 모시고 하와이에서 장의사로 유명한 윌리엄 보스윅의 집을 방문했다. 이승만과 보스윅의 우정은 40년을 넘고 있었다. 1918년 11월,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의 원칙으로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자 그의 제자였던 하와이의 이승만 박사는 중국의 김규식, 본국의 장덕수와 김성수, 일본의 김철과 서병호 등에게 밀서를 보내고 소련에는 여운형을 보내어 1919년 3월 1일 역사적인 궐기를 해냈다. 그 여세를 몰아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설치되고(4월 11일), 그해 9월 임정 요인들이 모여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일본의 현상수배를 받고 있었던 이승만은 현지 부임을 고민하다 1920년 여름 장의사 보스윅을 찾아가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뤄졌다.
당시 보스윅은 하와이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죽어간 수많은 중국인을 수습해 상하이로 운송하는 해상 장의업으로 큰돈을 벌고 있었다. 이승만은 그런 보스윅을 설득해 중국인 시체와 함께 관 속에 몸을 숨겨 상하이까지 밀항하는 데 성공한다. 상하이 임정의 이승만 대통령 도착은 이런 식으로 1920년 12월에 이뤄졌다. 보스윅은 미국인도 감히 해낼 수 없는 프린스턴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가진 동양인 이승만이 안락한 길을 마다한 채 독립운동을 위해 시체와 함께 관 속에 숨어 밀항을 시도하는 헌신적인 태도에 감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평생을 존경하는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이인수씨가 양부모님을 모시고 만나본 보스윅은 이 박사보다 크다고 할 수 없는 키에 넉넉한 풍채를 가진 90세의 노인이었지만 정정하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일행이 돌아갈 준비를 하자 보스윅이 잠시 내실로 들어갔다 오더니 프란체스카의 핸드백 속에 봉투를 넣어 주었다. 프란체스카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밖에까지 따라나온 보스윅은 돌연 이인수의 어깨를 감싸안고 현관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귓속말로 "아가, 잘 돌봐드려라. 그는 굉장한(Great) 사람이야. 40년 친구인 내가 모를 리 있겠나?" 하고는 등을 밀치면서 어서 가라고 했다. 이인수는 물론 보스윅의 눈시울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계속>
이동욱 전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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