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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맘을 단단히 먹었었다. 육아는 겁나 힘들단 얘기도 많이 들었다. 이제 잠은 다 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아들 앞에서 대놓고 "무자식 상팔자다"라고 했다(예?).
뭐 하러 애 낳니, 편하게 둘이 놀러 다니며 살아.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절대 결혼 안 한국sc저축은행 한다. 아빠가 옆에서 그 얘길 듣고 못 들은 척했다. 쓰디썼다. 경력자의 충언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진심 어린 충고는 쓴 법이었다.
실은 '딩크(애 안 낳는 것)'도 고민했었다. 둘이 살아도 좋고 행복해서. 세월이 흘러 이젠 결정해야 했다. 아내 나이가 그렇게 됐다. 오래 대화한 끝에 결심했다. 아가를 하나만 낳자. 우리가 몰랐던 1년거치 행복이 있지 않을까. 둘이 함께 한다면 괜찮을 거야.
"아, 환자분. 정자 개수는 괜찮은데, 모양이…."
정상 모양 정자가 4%는 넘어야 한다고 했는데... /사진=서울의료원 가임센터 홈페이지
비 전세 계약 해지 뇨기과에 갔더니 정자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정자가 모양이 있어요? 그렇단다. 정상 모양 정자가 몇 프로밖에 안 된다고 했다(차마 밝힐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임신 가능성이 높은 정자가 많지 않단 거다.
멍해졌다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양으로 승부하면 되지 않을까요. 인해전술, 뭐 그런 거요. 의사는 냉정했다. 아뇨, 오래 걸릴 수 기업은행마이너스통장만드는법 도 있어요. 울컥. 대체 이유가 뭐냐고 했다. 술·담배는 안 하시는데, 뱃살도 좀 빼셔야 하고요. 오래 앉아 계시지 마시고, 스트레스도 좀 없으시면 좋고(하하, 그래요).
아내에게 미안했다. 임신 테스트기 한 줄이 뜰 때마다, 조명을 다 켜놓고 각도를 바꾸며 다시 살폈다. 단호박으로 한 줄. 쥐며느리처럼 몸을 돌돌 말고 싶었다. 노력하기 보험설계사 월급 로 했다. 매일 저녁 뜀박질하고, 정자에 좋단 견과류와 토마토주스를 매일 먹은 결과, 결국 난임병원에 가서야 임신했다. 매일 배에 주사를 놓아가며, 아내가 많이 고생했다.
희미하게 보이던 임신테스트기 두 줄. 임신이라는 결과가 보임에도 안심할 수 없어,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아기집을 보고 심장소릴 들은 뒤에도 조마조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가가 찾아왔다가, 한 번 유산한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사진=그럼에도 실은 좋아서 히죽거렸던 남형도 기자
고대하던 아가가 찾아왔다. 아들이었다. 태명을 '나무'라고 지었다. 나무를 이유 없이 좋아해서. 사계절처럼 다채로우며 단단하게 뿌릴 내리란 뜻에서. 나무야, 와줘서 고맙다. 참 오래 기다렸어. 귀도 없는 태아에게 열심히 얘기했다. 행여나 바깥에 알렸다가 떠날까 봐, 안정기(임신 12주)가 지나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태명은 '나무'였다. 단단하기를, 뿌리가 깊기를, 사계절 다른 이파리처럼 다채롭기를. 임신 29주차 초음파 사진에서 그윽한 얼굴을 보여준 나무. 실물은 비슷하지만, 인상을 훨씬 더 자주 쓴다./사진=아빠 얼굴보단 예쁜 엄마 닮길 바랐던 남형도 기자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다. 점 하나만 하던 아가가 심장 소릴 들려주었다. 컴컴한 초음파실에서 별안간 울음을 쏟았다. 아내는 심한 감기에 걸려 기침에 밤을 새우면서도, 약 한 번 안 먹고 나무를 지켰다. 그리 안전히 자랐다. 통통통, 발길질하고, 꿀렁하며 자세를 바꿀 때마다 함께 탄성을 질렀다. 딸꾹질하는 거 보라고 웃었다. 그리 만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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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었는데, 서먹하고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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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싸개에 돌돌 싸여서 나온, 떵님이와 처음 만난 순간. 우렁찬 울음 소릴 들으며 아내는 저도 모르게 수술실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세상의 좋은 장면들을, 벅찬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 싶단 마음. 처음 마주한 생명은 실은 어색하고 낯설기도 했다. 아빠가 이미 됐지만, 그보다 아빠는 되어가는 거였다는 걸./사진=눈은 언제 뜨나 궁금했던 남형도 기자
"우리 나무 태어나면 사진 잘 찍어줘. 영상도 꼭 찍고."
출산예정일보다 빨라 응급 제왕절개로, 수술실로 들어가며 아내는 당부했다. 잘 찍을게. 설렘, 기다림보단 두렵고 걱정됐다. 수술실 앞을 분주히 서성였다. 둘다 제발 건강하게만, 제발.
병원 침대에 누워서 여전히 눈도 못 뜨던 떵님이. 막연히 좋은 아빠가 돼야 한다고 다짐했던 시간들. 신생아실에서 봐주었기에, 아가의 끊임없는 울음을 다 몰랐던 때./사진=폭풍전야,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몰랐던 남형도 기자
분홍색 속싸개를 입은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도 못 뜨는 모습. 음, 쭈글쭈글하고, 생각보다 좀 못생겼고, 너무나 작았다. 이 장면을 늘 상상했다. 벅차게 마주하며 울지 않을까, 내가 네 아빠야, 하며 환희로 가득하지 않을까.
첫 만남. 기쁘지만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느낌. 솔직한 기분이 그랬다. 그러나 그럼 안 될 것 같아 있는 힘껏 웃어 보였다. 텐션을 끌어 올렸다. 이제 아빠가 됐잖아, 아빠답게 잘해야지. 그런 의무감을 갑옷처럼 단단히 둘렀다.
이토록 긴장이 될 수 있을까. 수술대기실에서 화면만 뚫어져라 봤었다. 아가가 태어났다고 하자, 중환자실에 가족이 있음에도 정말 축하한다고 해주었던 다른 환자 가족들. 컴컴한 와중에 환해지던, 떵님이가 태어나던 지난해 12월의 밤./사진=남형도 기자
먼저 신생아실에 올라간 아가보다, 아직 수술 중인 아내 걱정이 더 컸다. 수술대기실 화면만 뚫어져라 봤다. 잘 끝났단 의사 말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안도했다.
병원 4박 5일 입원을 거쳐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천천히 갈게요'를 차 뒤에 붙이고 거북이처럼 운전했다. 급히 끼어드는 차를 향해 나쁜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엄마·아빠를 보고 자랄 존재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바구니 카시트에 탄 떵님이. 머리가 너무 작아서 기저귀를 양 옆에 끼워 고정시켜두었다. 기저귀는 새 거다. 퇴원하던 날, 지하주차장까지 원활히 갈 수 있게 예행연습을 몇 번이나 했었던 추억./사진=그럼에도 벌벌 떨었던 남형도 기자
나아가야 했다, 아빠답게. 여전히 긴장과 걱정을 주로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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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1004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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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작아서, 어떻게 안을 수 있을지 하나하나 다 고민했었다. 처음부터 엄마, 아빠인 건 아니기에 하나하나 다 찾아가며 배워야 했다. 어떤 자세를 아기가 좋아하는지, 울 땐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등과 엉덩이 중 어딜 토닥이는 게 나은지. 아기마다 다르기에 결국 겪어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지만./사진=잘하고 있다고 자주 말해주었던, 남형도 기자 아내
이렇게 안는 게 맞나요. 이건 무슨 표정일까요. 불편한가 봐요. 속싸개가 자꾸 풀려요. 쉬한 건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잘 때도 기저귀 갈까요. 똥을 싼 것 같아요. 우는데 잘 안 달래져요. 트림이 잘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자세가 별로인 걸까요. 모유 수유하다가 자는데 어떡하지요.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요. 딸꾹질할 땐 어떡하나요.
위 사진과 같아 보이지만 다른 날이다. 육아하며 찍은 사진은 대부분 다 비슷한 옷에, 비슷한 모습이지만. 안으면 미세하게 자랐단 걸 느낄 수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하나로 스스로 위안하던 시간들.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었다. 분위기를 내어보려 가렌다를 사다가 붙여두었다. 메리크리스마스, 똥 싸고 울어서 애를 먹었지만./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너무 어려워요. 잘할 수 있을까요. 버벅대며 한숨 쉬던 순간들. 살면서 뭐든 애쓰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건만. 작은 존재 앞에선 이리 작아졌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최대한 많이 배워야 한단 생각에, 매일 이리 물음을 쏟아내었다. 유선 전화로 1004를 누르면 늘 달려 와주셨다. 애정하던 선생님이 이리 말했다.
"울면 불편한 게 없는지 먼저 봐야 해요. 우선 기저귀는 괜찮은가, 배가 고프진 않나, 가스가 찼나, 졸린 걸까. 저희도 다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하나하나 살펴보며 찾아가는 거지요."
어쩌면 이리 작은 생명이 있을지. 오롯이 우리로부터 탄생했기에, 잘 돌보아야 한단 책임감. 잘해야한단 생각에 매순간 압도될 때가 많아서, 마냥 긴장할 때가 많았다. 버벅거리다 더 오래 울리는 것 같을 때엔 어김없이 자책하곤 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그리 오래 봤어도 역시 그렇구나. 정답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아가 울음은 유일한 언어라고. 그러니 두려워 말란 말에도 자꾸 위축되었다. 내가 서툴러 자꾸 우는 것 같아서. 안았다가 불편해하면 주눅이 들고, 눈치를 살피게 됐다. 이리 버벅거리는 게 계속될 것만 같아 작아지기만 했다.
내게 말해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닿을 수 없는 미래만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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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토닥임이 강해졌던 날, 한없이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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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를 갈며 한껏 우는 떵님이. 귀가 얼마나 트였는지, 아주 짧게 우는 것마저 촘촘하게 다 들렸다. 잠귀가 그렇게 어두웠었는데도. 신생아 때는 배우 이계인 목소리로 끄으으응, 끄으응, 하고 반복해서 내고, 용트림을 하고. 그러느라 밤잠을 거의 설쳤다. 우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귀하다. 사진을 찍을 정신 자체가 없기 때문에./사진=금방 갈아줄게, 다했어~하고 거짓말하면서 진땀을 빼는 남형도 기자
3주 동안 산후관리사가 왔다. 오후 5시부터는 아내와 내가 돌볼 시간. 그 무렵 생긴 나무의 애칭은 '떵님이'였다. 먹기만 하면 떵(변)을 싸서 붙여준 별명이었다.
"흐윽, 흐윽, 흐윽, 끄아아아아앙. 흐으윽, 흑, 흑, 헤엑, 끄아아아아아앙."
아가 인상이 찌푸려지면 오금이 저렸다. 또 울겠구나, 하면 여지없이 강성으로 터졌다. 그간 떵님이가 순한 줄로만 알았다. 그건 산후조리원 한정이었다. 아니, 선생님들이 다 돌봐주셨기 때문에 몰랐던 거였다.
저녁으로 갈수록 떵님이는 울상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이 터지고, 잘 달래지지도 않았다. 품에 안아서 아무리 정성스레 애써도, 버둥거리며 더더욱 울기만 했다. 아는 불편이 밥과 기저귀뿐이라 아내는 모유 수유를 시도하고, 난 기저귀만 갈아댔다.
70~80일 정도가 넘어간 뒤부터는 제법 앉을 수 있게돼, 이 자세로 트림시킬 수 있게 됐다. 모유 수유하고 중간 트림, 다 먹고 또 트림. 트림하려고 하면 짜증내며 버둥버둥, 안 할 수도 없기에 달래가며 하느라 참 힘들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그러다 과식해 가스가 차기도 했다. 배앓이가 시작됐는지 지옥 같은 강한 울음이 시작되기도 했다. 10분은 온화하게, 다시 10분은 차분하게, 또 10분은 무표정하게 달랬다.
톡, 톡, 톡. 등을 두드리던 손길이 퉁, 퉁, 퉁, 하고. 나도 모르게 짜증과 함께 조금 더 강해졌을 때. 그걸 알아차린 뒤 멈추고 자책하고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이 정도 의지로 아빠가 되려 한 건가 싶어 바닥을 쳤을 때. 집에 있음에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됐다.
그저 그 시간을 온몸으로 견디는 것밖엔 없었다. 쓰러지면 눈 감고, 희미하게 회복한 뒤 다시 반복하는 것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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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은 많은데, 답변은 거의 다 짐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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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모자이크 해서 사진이 약간 할배처럼 됐는데 눈이 예쁘다. 아가도 초상권이 있는데 허락 받은 건 아니므로. 역시 트림시키는 모습. 어깨에 얹는 자세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이토록 작은 존재. 발가락은 옥수수알처럼 작고 손톱은 종이처럼 오려야 하며, 뒷목을 받쳐주지 않으면 떨구고, 허리가 휘어지며, 위가 일자로 짧게 돼 있어 트림을 꼭 시켜줘야 하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안쓰럽고, 힘들 것 같아 감정 이입하다 또 괴롭고. 하나하나 다 내 탓인듯하여 자책하고. 결국 돌보는 주체는 나와 아내밖에 없기에 버겁기도 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공부하려 애써도 배움 자체가 어려운 영역이었다.
너라도 목욕을 하렴. 아빠는 3일째 못 씻었지만. 작은 대야 안에서 씻기는 것도 두근두근. 육아하며 가장 힘든 것중 하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불안과 싸우는 거였다. 떵님이는 떵을 자주 쌌기 때문에, 엉덩이를 잘 씻겨야 했다./사진=어디서 큼큼한 냄새가 나는지 꿰고 있어 잘 씻기는 남형도 기자
예컨대, 트림을 꼭 시켜야 하는데, 가장 많이 하는 '어깨 얹기 자세'를 죽어라 거부했다. 유튜브에서 온갖 자세를 다 배워봤으나, 전부 싫어했다. 맘카페 등 커뮤니티를 자주 찾아봐도. 물음은 많은데 답변은 거의 다 짐작이었다.
"저희 아기도 먹다가 자고 그랬었어요. 귀 만져도 안 깨고, 내려놓아도 자고요. 힘드시겠어요."
비슷한 상황에 놓여 힘들었다던 누군가의 그 말. 그게 유일한 위로라 정답이 뭔지 잘 모름에도 계속 찾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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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한 번씩 깨고…베란다에 나가 바람을 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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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지 33일. 신생아를 갓 벗어나고 있던 때. 낮잠 자는 떵님이 옆에서 뻗어버린 기자. 아가와 나 사이에 놓인 노란 쪽쪽이는, 신이 내린 발명품이다. 귀청이 나갈 것 같이 힘든 울음을 순식간에 잠재워주므로(물론 안 물 때도 있음). 이걸 만든 이를 존경한다./사진=아빠와 아들이 닮았다며 찍은 남형도 기자 아내
신생아(통상 30일까지) 때 가장 큰 고역은 잠이었다.
아가는 위장이 작아 배고플 때마다 깨서 운다고. 통상 1시간에서, 길어도 2시간 정도면 배가 꺼져서 울었다. 이 타이밍이 정말 예측할 수 없어서, 무작위로 들이닥치는 느낌이었다. 아빠를 찾는구나, 절박하게. 그리 생각할 수 있다면 좋았겠으나.
고된 육아 끝에 짜장면을 주문해놓고, 조용히 넷플릭스를 켜두고. 한숨을 돌리며 우리 시간을 누리려다가, 잠든 줄 알았던 떵님이가 힘차게 울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시간 정도를 시달린 뒤 퉁퉁 불은 짜장면을 보며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우리 이제 면으로 된 건 다신 시키지 말자고. 다짐하며 배고픔에 그릇을 다 비웠다.
탄생 26일차 떵님이. 이때는 놀라며 깨는(모로반사) 일이 잦아서, 맘 편히 잠들지 못하는 걸 보며 안쓰러워 했었다. 엄마 뱃속에 오래 있다가 세상에 나와, 우주가 온통 뒤바뀐 너도 많이 힘들었을테니./사진=노란 쪽쪽이의 위치를 늘 살피는 남형도 기자
하루의 일은 반드시 끝나고, 퇴근하면 쉬었었다. 그 틈을 간절히 바라고 있단 걸, 이전의 삶을 다 내려놓지 못했단 걸 문득 깨달았다. 출산 휴가를 쓰며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의미 없단 걸 깨달았다. '휴(쉴 휴(休))'자는 빼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먹이고, 트림을 정성스레 길게 시키고, 재우고. 짧게 자고 또 먹을 시간이 되고, 먹이고 트림시키다 응아 냄새가 나서 기저귀를 갈다가 동시에 쉬야를 싸서 공격을 당하고, 다 갈아두고 공을 들여 재우려 했더니 미처 다 못 싼 응아를 해서 다시 씻기고. 그러느라 잠을 깨고 거의 못 잔 채 또 먹을 시간이 됐다.
안아주면 어느샌가 팔쪽에 자그마한 주먹을 가만히 갔다대던 떵님이. 귀엽기도 하고, 날 의지한다 생각하면 스스로 채찍질하고, 다짐하고, 맘 먹고. 그러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걸 반복하던 날들./사진=남형도 기자
문득 정신 차리니 사흘이 지나 있었다. 그 사이 머리를 한 번도 감지 못 했단 걸 깨달았다. 길어진 수염을 깎으며 오랜만에 거울을 보다가, 온전히 동떨어진 변기 위에서 우연히 뜬 유럽 시골의 풍경을 보다가. 내가 쌓아왔던 커다란 세계가 완전히 전환이 되고 있단 걸 깨달았다. 시간이 필요한 거였다.
바깥에 못 나가고 있다가, 너무 답답할 땐 베란다에 나가 창문을 열고 숨을 크게 쉬었다. 겨울바람이 차지 않고 시원했다. 아주 시원해서 그대로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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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게 침전되던 화장실에서…잠깐 쉬라던 아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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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발가락을 아래서부터 위로 쭉 올려주면, 옥수수알 다섯 개가 한데 모이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사진=울까봐 무서워서 소심하게 해보았던 남형도 기자
구부러져 아무렇게나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베개도 없이 널브러진 날 보며. 우린 서로를 연민했다. 모유 수유를 하는 아내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며, 아내는 똥 기저귀를 갈려 하는 내게 미리 따뜻한 물을 틀어주며. 교대하는 게 편하단 육아 선배들 말을 뒤로한 채, 둘이 함께 견뎌내었다.
그러면서 자주 그런 말을 했다. 혼자선 도저히 못 해냈을 것 같다고.
"변 색깔이 괜찮은 걸까? 콧물처럼 진득한데 괜찮은가. 열이 나는 게 아닐까.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나를 계속 의심하게 되잖아. 그럴 때 같이 찾아보잖아. 그래서 시간이 흐를 수 있었던 것 같아. 혼자였다면 너무 힘들었겠지. 이게 아닐까, 저게 아닐까, 일단 그렇게 믿고 해보자고."
떵님이가 100일까지 자라는 동안, 거의 하루도 바깥에 못 나갔던 아내.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라고 그리 얘기하는 데도, 어쩐지 못 그러겠다며 나가지 못했다. 배우자 출산휴가 20일을 쓰는 동안 꼭 나가야한다고. 몇 번이고 당부한 뒤에야 아내는 처음 나갔다. 그마저도 맘 편히 못 누리고 금방 돌아왔지만. 맨날 입던 똑같은 옷을 벗어두고 간 모습. 그게 짠해서 찍었다. /사진=그렇게 육아동지가 된 남형도 기자
누구의 말이랄 것도 없이 공감하던 대화들. 정답이 뭔진 몰라도, 매번 고생했다 말해주던 이가 있어서 넘어갔다고.
졸려도 잠들지 못해 귀가 찢어질 듯 울던 떵님이를 안고 절망하던 날이 있었다. 힘들어하는 게 보여 속상했고, 그럼에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자책했고. 배를 미리 채워두지 못해 예민해진 상태여서 인내심이 바닥을 치던 날.
육아하며 자주 해먹었던 비빔밥. 떵님이가 자는 동안 빠르게 먹어치울 수 있고, 설거지도 많이 나오지 않아서 좋았다. 끄앙, 하고 울면 숟가락 바로 놓는 거지만./사진=사진 보니 다시 배고파진 본능에 충실한 남형도 기자
마지막 필살기였던 '수돗물틀기'까지 쓰고도 달래어지지 않아서.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물소리에 묻혀 울다 사라지고 싶을 만큼 울적했던 날. 컴컴하게 침전되던 때, 화장실 문을 열고 이리 말해주던 아내가 있었다.
"이제 내가 재워볼게, 좀 쉬어. 쓰러지겠어."
떵님아, 아빠 돈 벌러 다녀올게.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에 발길이 잘 안 떨어졌지만. 실은 집에서 홀로 하루를 보낼, 아내가 눈에 밟혔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육아가 내겐 출근해 일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버겁고 힘들었으므로. 스위치를 끌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사진=현관을 떠날 수 없는 남형도 기자
아내도 이미 힘들단 걸 알면서도 아가를 건넬 수밖에 없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약"이란 말조차 싫고 위로가 안 될 때, 유일한 힘이 된 건 곁에 있던, 단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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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어,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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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너와 함께 잘 보낼 수 있을까. 다양한 얘기를 울음 하나로 전하는 아가를 보며, 정말 알고 싶어 자는 모습까지 물끄러미 관찰하던 시간들. 그게 켜켜이 쌓이니, 조금은 아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여전히 잘 모르겠다(하하). 아가는 계속 자라고 달라지므로./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그러니 이건 도저히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혼자 잘 참고 해내라 하면 어딘가는 부서지기 쉬울 거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독박육아로 내버려두고 있다면 곁을 꼭 지키며 함께해달라고.
육아는 '종합힘듦예술'이란 걸 알아버렸기에. 체력은 바닥나고 감정은 소모되며 자존감은 떨어지고 실시간으로 힘듦이 달라져 끊임없이 배워야 하기에.
5주간의 출산 휴가(설 연휴 포함)가 끝나고 모처럼 길을 걸어 다니는, 다 큰 어른들을 보았을 때.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존재가 이리 어엿하게 걸어 다니는 게, 우뚝 서 있는 모든 이가 하나하나 다 기적처럼 느껴졌었다. 그만큼 대단한 일이다. 한 사람을 그 정도로 키워내는 건.
빨래는 또 왜이리 매일매일 자주 쏟아지는지. 육아는 진정 끝이 없다. 퇴근하고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다 떠오른 이가 있었다. 첫 손주를 보러 오겠다며 찾아와, 떵님이를 안으며 기뻐하던 사람, 엄마. 40년 만에 안았다면서, 안자마자 울음을 뚝 그치게 해 감탄에 이어 숙연하게 만들었던 존재. 떵님이가 힘들게 할 때면 "나도 엄마 있어 인마"하고 장난스레 투정 부렸었던, 영원한 엄마.
내가 태어난 과정도, 그 당시 모습도 까맣게 모른 채 알아서 자란 것처럼 살다가, 비로소 그걸 하나하나 다 겪으며 저절로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걸 알았을 때. 이리 물었었다. 실은 물음보단 존경과 감사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진정 경험하며 알게 되었으므로.
"엄마는 이 힘든 걸 어떻게 혼자 다 했을까.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 모르겠어."
그 시절 젊었을 엄마의 아기였던, 백일 사진 속 내 모습. 동분서주하며 불안해하고 긴장했을, 차마 몰랐던 시간들을 이제야 짐작하고 있다./사진=연락 좀 자주해야겠다 다짐하는 남형도 기자
말도 마라, 천기저귀 빠느라 애썼지, 동네 엄마들에게 몰라서 물었고. 그땐 다 그랬다. 그로부터 시작된, 모두 첨 듣는 얘기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게 곱게 갈아 넣었던 엄마의 젊은 시절을. 새삼 하나하나 다시 듣고 있다.
떵님이의 50일 기념 사진. 사진 작가님께서 집에 찾아와 찍어주셨던. 눈도 못 뜨던 아가가 이리 하루하루 자라는 건 기적이고, 이를 가능케하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를 존경한다. 정말 고생 많다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진정 그렇다고. 가장 따뜻하고 선명한 말을 건네고 싶다. 그 말 한 마디로, 이 말도 안 되는 여정을 또 견딜 수 있음을 알기에./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충분히 잘 먹고 있는 게 맞느냐며 의심했었다. 입을 오물거리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촉각이 곤두서서, 더 먹여볼까, 아내와 자주 말하곤 했었다. 잠이 들었다가 얼마 못 자고 깨면 역시나 배고픈 게 아니냐며 염려했다.
모유를 먹다가 잘 때면 깨우는 게 미안했었다. 귀와 발을 살살 만져도 안 일어나서, 바닥에 내려놓으니 으앙, 하고 울었다. 울린 게 미안해서 또 속상했다. 그러지 않고 재웠을 땐, 양껏 못 먹인 게 또 미안해서 자책했었다.
트림하기 싫다고 발버둥 칠 때, 15분을 씨름하다가 어쩔 수 없지, 하며 자라고 내려놓은 날도 있었다. 자다 깨서 울 때, 역시 더 시켰어야 했는데 하며, 적당히 타협한 게 미안해 또 스스로 탓했다. 그러나 또 몸부림칠 땐, 더 편하게 해주지 못하는 게 내 탓 같아서 자책했었다.
수유하는 남형도 기자. 베개를 오른 다리에 끼워, 한쪽을 세워 떵님이가 덜 게우게 하는 것. 육아하는 이들은 이 순간에도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지. 정답이 없단 걸 알기에 자책하고 불안해하면서. 앙상하게 흔들리는 이 마음을 돌봐줄 시스템도 더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사진=남형도 기자
의심과 자책이 반복되던 어느 날, 구청에 신청해 간호사 선생님이 집에 방문했었다. 자세히 이것저것 여쭤보시기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얘기했다. 역시나 잘 못 먹었을 거야, 다른 아가들보다 작을 거야, 그런 이야기가 선고되길 기다릴 때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가 너무 잘 크고 있는데요. 평균보다 몸무게도 더 나가고, 키도 크고요."
온몸의 긴장에 확 풀려 아내와 난 이리 답했다. 저희가 잘 못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늘 걱정했고요. 그러자 그는 온화하게 웃으며 이리 말했다.
"너무 잘하고 계신 거예요. 이렇게 잘 컸잖아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잘 모르는 이는 때때로 찾아와 귀여운 아가를 보며 이리 말할게다. 어우, 많이 컸네. 여기에 한 마디만 더 해보면 어떨지. 이리 잘 키우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긴장하고 고민했겠어. 고생 많았어. 비로소 가누는 목에, 짓는 웃음에, 커진 발에, 그 노력이 다 새겨져 있다고. 이는 저절로 되는 게 절대 아니라고./사진=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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