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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드문드문 바싹 마른 풀이 보였다. 산들바람에도 소스라치듯 흙바람이 뿌옇게 일어났다. ‘딱따구리’(나무 벌채할 때 굴착기에 장착하는 장비)를 장착한 굴착기들과 덤프트럭들이 산을 휘젓고 다녔다. 무생물 상태에 가까운 이곳은 한때 숲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2025년 2 국민주택 월28일 경상남도 밀양시 춘복산(春福山·343m), 봄은 올해도 이 산을 찾지 않기로 했다. 2022년 5월31일 ‘밀양 산불’(피해 면적 660㏊)이 발생한 뒤 2년9개월이 지났고, 수백억원 예산이 아낌없이 투입됐지만 결과가 이렇다. 우리나라 산림정책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현장이다.



주만위해살리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춘복산. 2년9개월 전인 2022년 5월 산불이 일어났다. 막대한 돈·인력이 투입돼 재개발식 벌채와 조림이 이뤄졌다. 여전히 황량한 모습이다. 재선충병에 걸렸거나 의심되는 소나무를 베어내면 숲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고독성 약품을 뿌린 뒤 비닐로 덮어 그 자리에 방치한다. 산불 회사내규에 따름 로 훈증 무더기가 드러나 보였다.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폐허로 남은 산
“이걸 산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경작지지….” 동행한 윤상갑 산림기술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히 보니 젓가락 같은 대나무 지지대에 50㎝ 남짓 편백나무 묘목이 묶여 줄지어 서 있었다. 하나같이 잎이 누렇게 119머니 변했다. 모두 멀리 양묘장에서 키워져, 춘복산으로 옮겨왔다. 소나무만큼은 아니지만 편백은 수지(나무 기름)가 나오는 침엽수 종으로 산불에 취약하다. 더욱이 애초 이 조림에서는 춘복산에 어떤 식물들이 자랐는지, 어떤 들짐승·날짐승의 보금자리였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최근엔 지표면의 낙엽층이나 벌목 뒤 남은 잔가지와 잔해까지 ‘미이용 바이오매스 공급’( 기업은행 대출상담사 2018년 시행)이라는 이름으로 알뜰하게 수거돼 화력발전소로 공급된다. 산림청은 편백 식재 이유에 대한 한겨레21의 질의에 “산불 피해 토양 적응성 등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산불이 아래쪽 초지만 훑고 지나가면 나무 아래쪽은 그슬리지만 살아남습니다. 상당한 피해를 본 것처럼 보일 때도 바로 죽지 않아요. 2~3년에 걸쳐 죽기도 하지만 또 하층 식생(초본이나 키 작은 나무 등)이 살아나면서 잎을 내고 씨를 퍼트리기도 해요. 2~3년은 토양침식과 생물 다양성, 자연복원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산림청은 기계가 들어가서 재개발하듯이 싹 정리하는 게 기본입니다. 중장비가 들어간다고 작업로를 내면서, 또 조림한다면서 한 번 더 식생을 파괴합니다. 이렇게 숲이 황폐화됩니다.”(윤상갑 기술사)
산불 피해에 대한 이런 성급한 접근은 역대 최대 산불로 기록된 2000년 동해안 산불 때부터 꾸준히 지적됐지만 산림정책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 176명이 참여해 만들어진 ‘동해안 산불피해지 공동조사단’은 ‘정밀보고서’에서 ‘산불 후 초기 식생의 조성은 3~4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데 본 조사 기간이 산불 2개월 후부터 약 2개월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원복원력을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동해안 산불 피해 지역의 산림은 기본적으로 자원복원력을 가진 것으로 종합 판단한다’고 결론 내렸다.
춘복산 정상부에서 내려다보니 사방으로 남색과 초록색 비닐 덮개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수년간 소나무재선충 방제 작업으로 만들어진 훈증 무더기가 그 흔적이다. 이번 산불과 뒤따른 모두베기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 밀양 산불 때 진화가 어려움을 겪었던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바싹 마른 장작이 덮개에 싸여 있는 통에 불을 끄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10여 년 전부터 이런 식의 훈증 무더기가 우리 산림 곳곳에 만들어져 있지만 위치나 전체 개수, 훼손 여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남쪽 비탈에 아직 벌목되지 않은 채 남은 소나무 숲이 보였다. 우듬지까지 불에 타 피해가 심한 지역으로 예산이 배정되는 대로 베어질 곳이다. 윤상갑 기술사가 말했다. “여기(춘복산)가 어떤 숲이었고 왜 이렇게 피해가 심했는지 알 수 있어요. 자세히 보세요. 소나무 단순림(한 종류의 나무로만 이뤄진 숲)인데다, 비슷한 연령대 소나무만 있어요. 하층 식생이 아예 없잖아요. 최근까지 숲가꾸기가 이뤄졌다는 거죠. 이런 건 숲이 아니라 인공적인 공원이죠.”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춘복산. 2년9개월 전인 2022년 5월 산불이 일어났다. 막대한 돈·인력이 투입돼 재개발식 벌채와 조림이 이뤄졌다. 여전히 황량한 모습이지만 한편에 물오리나무·느릅나무·감태나무·때죽나무 등 활엽수로 이뤄진 숲이 살아남아 숨 쉬고 있었다.


산불 더 키우는 나무 솎아베기
나무를 솎아베는 숲가꾸기는 1998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임시 사업이다. 이후 ‘돈 되는 숲’, 즉 경제림 조성을 목표로 산림청이 추진하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25년 숲가꾸기(솎아베기) 명목으로 산림청이 신청한 예산은 2516억원에 이른다. ‘미래목’이라고 해서 큰 나무들은 가지치기해서 남겨두고, 작은 나무들은 ‘미래목’이 자라는 데 방해된다고 해서 베어내는 작업이다. 벌기령(베어 쓰게 된 나무의 나이·참나무류 기준 25년)이 짧은 우리나라에선 주로 빨리 자라는 소나무가 ‘미래목’이 되는 일이 많다. 이제 막 어른 나무로 성장하려고 애쓰는 참나무류 등 활엽수는 반복적으로 베어진다. 수원함양·산지재해방지·자연환경보전·산림휴양·생활환경보전·목재생산 등 다양한 산림의 목적 가운데 목재생산 쪽에 치우쳐 산림정책을 펴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숲가꾸기가 대형 산불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숲가꾸기는 산불의 3요소(산소·열·연료) 중 바람(공기)이 통하는 길을 터줘서 산불이 퍼진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나무는 ‘탈 것’이 아니에요. 2월 정도 되면 수액을 채취하는 고로쇠나무를 생각해보세요.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시기인 봄에 나무들은 그렇게 물이 꽉 차 있습니다. 산림청은 이른바 ‘사다리 이론’을 들고 와서 하층, 중층에 나무가 있으면 그걸 타고 불이 올라온다고 해요. 하지만 수지 때문에 불이 잘 붙는 소나무도 아래 식생이 잘 형성돼 있으면 오히려 아래쪽만 살짝 타고 맙니다. 하층·중층 식생을 제거해서 바람에 불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오면서 피해가 커지는 거죠. 최근 수년간 밀양·고성·합천·울진·강릉 등등의 전국 산불을 현장 조사했는데, 하나같이 숲가꾸기가 이뤄진 곳의 피해가 큽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가 설명했다.
현장을 살펴보니 춘복산에도 동쪽에 엿새 동안 지속한 밀양 산불 난리 통에도 멀쩡하게 살아남은 생명의 땅이 있었다. 한 아름 되는 물오리나무들과 느릅나무가 20m 이상 크게 자라 가지 끝에 붉게 새순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래쪽으로는 감태나무·때죽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드문드문 소나무도 보였다. 홍 교수는 “이곳도 숲가꾸기를 아예 안 한 곳은 아니다. 한 지 5년쯤 된 곳”이라며 “숲가꾸기를 중단하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산불을 막아주는 숲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산림청은 일부 연구 결과를 근거로 “고강도 숲가꾸기를 실시해도 산림 내 풍속에 큰 변화가 없다. 숲가꾸기를 하면 연료(나무)의 밀도가 낮아져서 산불 위험성이 낮아진다”고 반박하며 산림정책 수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런 정반대 의견 충돌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를 포함하는 ‘숲가꾸기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무안면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위해 모두베기를 한 숲의 베어진 졸참나무. 소나무재선충을 막겠다며 아무 관계도 없는 참나무들까지 베어지고 있다. 나이테를 세어보니 22살이었다. 이런 모순은 돈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소나무만 솎아내면 중장비로 모두베기할 때보다 비용이 최대 7배가량 비싸다고 한다.


인위적 간섭 줄여야 숲 살아나
2023년 3월 발생한 지리산 대성골 산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부산대·순천대 등이 참여한 당시 민간조사단 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 면적은 121㏊로 역대 발생한 국립공원 산불 중 최대 규모였지만 아래쪽 초본만 태우고 지나간 수준의 낮은 강도 피해가 92%로 나타났다. 나무 대부분이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복잡하게 얽힌 숲속 식생이 산불 확산을 막아준 것이 확인된 셈이다. 당시 민간조사단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인간의 간섭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질 때 산불에 가장 강한 숲이 만들어지게 된다. 인위적 간섭을 줄이는 것이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산불에 안전한 숲이 되는 지름길이다.”
산불만 산을 벌거숭이산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이날 밀양시 무안면에서 소나무재선충 방제 목적으로 모두베기가 이뤄진 두 곳을 더 찾았다. 각각 5㏊, 8㏊ 민둥산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의 종류를 바꾸는 ‘수종전환 방제’와 ‘모두베기’가 이뤄진다는 것은 지난 25년 이뤄진 농약 위주의 소나무재선충 방제가 실패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우리가 고추밭에 탄저병이 걸리면 약을 치는데, 약 치는 이유가 뭔가요? 고추를 살린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수종전환 방제는 목표로 하는 소나무를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니까, 사실은 방제라고 하면 안 되겠죠.” 윤상갑 기술사가 말했다.
그런데 현장을 살펴보니 베어진 게 소나무뿐이 아니었다. “수종전환 방제시 활엽수는 최대한 존치하고 있다”는 산림청의 설명과 달리 졸참나무·굴참나무 등등 활엽수들이 맥없이 베어진 채 밑동만 남아 있었다. 이렇게 벌거숭이가 된 산은 산사태 위험이 커 사방댐을 건설하는 등 추가적인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 또 이를 관리하기 위한 임도 건설의 명분이 된다. 그렇게 자연의 영역은 줄어들고, 산림파괴는 심화·격화된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 대해 윤상갑 기술사는 “비용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들어가 산에서 나무를 한 그루씩 베면 잣나무 한 그루에 20만원, 소나무는 15만원인 데 비해 기계가 들어가면 재적(㎥)당 2만5천원이다. 보통 한 그루가 1재적 정도 하는 것을 고려하면 비용이 최대 8배 차이가 난다. “이런 식이면 경남 지역 산을 다 없애야 할 겁니다. 숲을 살리자고 하는 일 아니었나요?” 윤상갑 기술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홍석환 교수는 산림청이 수종전환 방제의 효과를 홍보하는 것에 대해 “사람이 없으면 감기 걸리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소나무재선충이 많이 발생한 건 과거 벌거벗은 척박한 산에 잘 자라는 소나무가 최근 비옥해지는 환경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의 순리대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소나무가 잘 자라는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강원도 동쪽 비탈면 등 일부 지역은 소나무가 자라기 알맞은 곳도 있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은 참나무류 등으로 자연스러운 수종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걸 돈을 써서 수종전환한다고 베어내면서 막고 있는 거죠.” 홍 교수의 말이다.
최병성 초록별생명평화연구소장이 말했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벌채로 우리나라 산림 상황이 너무도 심각한 상태입니다. 벌채한 지 10년이 지나도 숲이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요. 조림한 나무들은 줄줄이 고사하고, 그 나무들을 살린다고 풀 베고 숲가꾸기를 하는 통에 활엽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요. 예산을 따내야 하기 때문인지 산림청은 산림정책 비판에 대해 검증하려 하지 않고 관행을 고수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너무도 시급한 문제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 숲은 어떤 모습일까요?”
밀양(경남)=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춘복산. 2년9개월 전인 2022년 5월 산불이 일어났다. 막대한 돈·인력이 투입돼 재개발식 벌채와 조림이 이뤄졌다. 여전히 황량한 모습이다.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춘복산. 2년9개월 전인 2022년 5월 산불이 일어났다. 막대한 돈·인력이 투입돼 재개발식 벌채와 조림이 이뤄졌다. 여전히 황량한 모습이다.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춘복산. 2년9개월 전인 2022년 5월 산불이 일어났다. 막대한 돈·인력이 투입돼 재개발식 벌채와 조림이 이뤄졌다. 여전히 황량한 모습이다. 윤상갑 기술사가 피해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춘복산. 2년9개월 전인 2022년 5월 산불이 일어났다. 막대한 돈·인력이 투입돼 재개발식 벌채와 조림이 이뤄졌다. 여전히 황량한 모습이다. 벌채가 예정된 소나무 단순림을 자세히 보면 바닥 하층 식생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숲가꾸기(솎아베기) 사업이 이뤄진 흔적이다.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상동면의 한 숲. 누렇게 고사한 소나무와 살아 있는 소나무, 방제로 훈증 무더기가 된 소나무가 섞여 있다. 경남 지역에서 아주 흔한 광경이다.





2025년 2월28일 경남 밀양 춘복산에 산불 조심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이곳엔 2년9개월 전인 2022년 5월 산불이 발생했다. 막대한 돈·인력이 투입돼 재개발식 벌채와 조림이 이뤄졌다. 여전히 황량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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