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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즙수병햇 작성일25-01-14 06:16 조회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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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임 시절의 김영삼 대통령


ⓒ 국가기록원




우리 현대사에 대통령 지지율이 90%를 넘었던 해가 있었다. 1993년이었다. 취임 첫해에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시행, 안기부 개혁 등 과감한 개혁으로 지지율이 90%에 이르렀던 김영삼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당시 최 목돈만들기 고의 연예인이었던 최진실이나 서태지의 인기를 앞설 정도였다.

임기 후반이었던 1997년 11월 외환위기를 맞아 지지율이 6%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기는 하였지만 임기 초반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지지율이 높을 때 그가 '학실히'라고 말해도 국민은 '확실히'로 알아들었지만, 지지율이 떨어지자 그가 제주도를 '관광 도시'를 단기적금추천 만들겠다고 해도 국민은 '강간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렸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과 전면전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 중재 노력으로 미국은 전쟁 대신 협상을 택했고, 북한은 NPT에 채권채무조정 복귀하였다. 이런 전쟁 위기 속에서도 비상계엄은커녕 경계계엄조차 선포되지 않았다. 전쟁도 계엄도 없이 위기는 무뎌졌다.
우리 현대사에서 1993년은 광고의 영향력이 유난히 심했던 해였다. 특히 광고에 '애처가 바람'이 거셌다. 세탁기 광고에 등장한 "남편들도 빨래를 하자", 청소기 광고에 등장한 "잡혀 사는 게 편안한 것"이라는 카피는 선 월차 사유 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맥스웰하우스 커피 광고에 등장한 배우 안성기는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내에게 커피를 타다 바치는 자상한 남편으로 등장해 주부들의 환호를 받았다.
TV 광고가 애처가 바람을 일으켰다면 신문 광고는 또 다른 바람을 몰고 왔다. 바로 체인 형태의 커피전문점 바람이었다. 커피전문점은 인스턴트커피를 팔던 다방과는 여러 가지 연말정산급식비 로 달랐다. 커피전문점에서는 인스턴트커피 대신 원두커피를 팔았다. 당시 유행하던 커피메이커를 이용하는 업소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드립이나 사이폰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분위기였다. 다방은 주로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어둠침침하였던 반면 커피전문점은 지상에 있으면서 매우 세련된 분위기를 자랑했다. 손님이 주문하고 음료를 직접 받아다가 마시는 셀프서비스 문화도 새로 등장한 커피전문점이 지닌 장점이었다.
대학로에 처음 문 연 커피전문점
이런 체인점 문화는 20세기 초반 프랑스에 등장한 '폴(Paul)'이나 라두레(Ladurée) 같은 카페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다양한 패스트푸드의 등장으로 체인점 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1955년에 등장한 프랜차이즈 식당 맥도널드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에 문을 연 롯데리아가 체인점 문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는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 버거킹, 맥도널드, 그리고 KFC 등이 속속 등장하였다.
커피전문점으로는 1979년 대학로에서 처음 문을 연 후 점차 매장을 늘려, 한때 전국적으로 60여 개의 매장을 거느렸던 '난다랑'이 효시였다. 대학로의 1호 매장은 1986년에 '밀다원'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운영하다 1999년에 문을 닫았다. '난다랑'은 1992년 동아실업에 인수된 후 1993년에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셀프서비스 중심의 '비인'과 풀서비스 형태의 '난다랑멤버스'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1988년 12월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쟈뎅'이 문을 열었고, 이어서 ㈜미원의 '나이스데이', 한국도토루의 '도토루', 동서식품의 '헤르젠' 등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커피체인점 문화가 급속하게 성장하여 신문 광고를 점령하다시피 한 것이 1993년이었다.
1993년 한 해 동안 신문 광고에 등장한 원두커피전문점 광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신문 광고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대표적인 업소로는 '메카' '뮤즈' '자이네르' 'K-Shop' '세이브' 'SACOS' '뜨레모아' '커피타임' '아이리스' '샤갈' '커피매거진' '팡세' '팜스테르' '메디아' '원바이포' 'Coffee Today' 'Join' '뮤렝' '커피라인' '상파울루' '하비비' 'Greco' '커피그린' '메델리노' '그루터기' '블랑' '드림' 등이다.

"재래식 다방은 흐림, 커피전문점은 맑음"










▲  1993년 9월 13일 자 <동아일보> 기사 "재래식다방 '흐림' 커피전문점 '맑음'"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당시 원두커피전문점 모집 광고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첫째는 유럽풍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특히 이탈리아와의 기술원조나 일리(Illy) 등 이탈리아 커피 원두를 내세운 광고가 많았고, 이외에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콜롬비아 커피 맛을 내세우는 전문점 광고가 많았다. 가수 권인하를 내세운 '미스터커피'는 "이탈리아 정통 원두커피의 깊고 풍부한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광고 카피를 사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페터치니'는 이탈리아 포멕(FORMEC)과의 기술 제휴를 자랑하였다.

두 번째로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점을 많이 내세웠다. 많은 업체에서 "불황을 모르는 고소득 유망사업, 커피전문점"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영향력 있는 신문에서 체인점 창업에서 실패할 확률은 5%, 성공 확률은 80%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던 것도 이런 체인점 창업 열기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조선일보> 1993년 3월 8일 자).
세 번째로는 베이커리와 커피의 결합을 강조하는 광고였다. 이해 6월 1일부터 식품위생법 개정으로 카페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음식점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허용된 것이 계기였다. 예컨대 커피전문점 '해피타임'은 체인점 모집 광고에서 '햄버거+피자+커피'를 내세웠고, '맥필드'는 "커피와 즉석빵 종합 체인점"이라는 점을 앞세웠다.
1993년 3월에는 전국적으로 50여 개의 커피체인점이 있었고, 서울에만 400여 개의 매장이 성업 중이었다. 7월이 되자 체인점 형태의 커피전문점이 100개를 넘어섰고, 서울에만 1700여 개, 지방에 300여 개, 총 2000개를 넘어섰다. 매달 100개 이상의 커피 체인점이 문을 여는 셈이었다.
<동아일보>의 표현대로 "재래식 다방은 흐림, 커피전문점은 맑음"이었다.(9월 13일 자)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한 '교육방송'은 12월 14일 저녁 시간에 '커피전문점 설치 요령'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내기에 이르렀다.
원두커피전문점의 유행
커피전문점이 체인점 형태로만 유행한 것은 아니었다. 대도시와 도시 근교에 원두커피나 드립커피, 혹은 에스프레소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보헤미안'이 1988년 서울 혜화동에서 문을 연 이후 대학로의 '에스프레소클럽', 홍대 입구의 '칼디커피', 대구의 '커피명가', 포항의 '아라비카' 등 스페셜티커피 전문점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조선일보>가 1993년 10월 21일 자에 '도시 근교 외딴 카페 인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소개한 카페만 해도 가평의 '뜨락', 포천의 '터', '서운동산', '팔야촌', 광릉의 '야외스케치', 남양주의 '아뜨리', '목마루', 양주의 '사슴의 집', '흑과백', 고양의 '표표', 강화의 '산까치'. 양평의 '힐하우스' 등이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들렸다. 약사가 약국 문을 닫고 커피전문점을 차렸다는 소식이었는데, 개업 첫해에 약국 수입과 커피전문점 수입이 비슷한 정도라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서울 양재동에 문은 연 '에르디아'를 운영하는 약사 노정희씨 사연이 <조선일보> 1993년 9월 5일 자에 실렸던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커피전문점 창업에 뛰어들게 만드는 흥미로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원두커피전문점의 유행으로 원두커피의 소비 비중이 인스턴트커피의 10%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동아일보>는 원두커피가 '옛 명성'을 되찾았다고 표현하였다.(1993년 5월 19일 자) 우리나라 역사에서 인스턴트커피 유행으로 커피 맛이 획일화되기 이전에 제대로 된 원두커피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해에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일본과 대만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국제농업개발원이 이해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간 세 나라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커피 소비량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352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다. 1년에 72잔을 마시는 대만보다는 압도적으로, 그리고 195잔을 마시는 일본보다 월등하게 많았다.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 결과였지만 일본을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에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의 1/4이었던 그때나, 일본을 따라잡은 지금이나 일본을 이기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좋아하는 우리 민족이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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