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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대놓고 무례한 것보다 낫지 않냐는 인식도 나올 법하지만, 이런 속성은 필연적으로 '한 사람 몫'이란 또 다른 집단주의적 면모와 연결된다. 겉보기엔 티가 생애 첫 주택청약제도 나지 않아도, 좀 유별나거나 집단의 질서를 벗어나면 멸시하거나 따돌리는 '이지메'로 연결된다. 그런 면모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원자화와 맞물려 인간 소외를 불러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가 생겨도 티를 내지 않고 은폐되다 보면 곯는 편이다. 일이 곪아 터진 후에야 비로소 진상이 파악되는 셈이다.
유무형의 상처를 입은 이들, 사회적 관심 유니온저축은행 과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공론화하길 꺼리는 풍조는 그들의 상황을 더 은폐하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사회 역시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방관으로 일관한다. 그 결과는 사회 통합력의 저하와 폐쇄적 집단/개인의 확산이다. 상대적으로 종교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 않던 일본 사회에서 논란 많은 신흥종교나 그들만의 고립된 집단, '인간 증발' 현상이 급격하 직전학기 성적 게 늘어나는 건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 일본 영화의 상징적 이름 중 하나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파문>은 그런 지점과 딱 맞아떨어지는 접속 통로로 우리를 이끈다.
집 나간 남편이 10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발견한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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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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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주택가, 정원도 제법 잘 꾸며진 단독주택에서 '요리코'는 남편 '오사무', 아들 '타쿠야'와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스도' 가족은 무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듯 보인다. 병상에 누워 수발해야 하는 시아버지 돌봄이 만만할 리 없지만, 요리코의 일상은 크게 모자랄 것도, 딱히 아쉬울 점도 없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표본처럼 그려진다.
요리코는 동네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할인 행사라도 잡혀 있는지 마트 앞에는 줄이 잔뜩 서 있다. 가게가 개점하자 주민들은 앞을 다퉈 매장으로 달려간다. 대체 무슨 이벤트이길래 궁금해하던 관객은, 그들이 모두 생수 매대에 몰리는 걸 보고 의아한 감정에 휩싸일 테다. 직원은 1인당 2병만 구매 가능하다며 안내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할당량을 챙긴 요리코는 귀가해 저녁상을 준비한다. 아들은 거실 소파에서 빈둥거리고, 남편은 정원 화분에 물을 주던 참이다. 식사 준비를 마친 요리코는 아들에게 아빠를 불러오라 하지만, 부스스 일어나 정원으로 나갔던 타쿠야는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남편은 그날 이후 소식이 끊겼다. 말 그대로 '실종' 상태인 것이다. 주변에는 갑자기 직장에서 단신 부임 파견을 나갔다고 둘러대지만, 남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요리코가 수발하던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대학을 마친 아들은 먼 큐슈에서 직장인이 되었다. 네 식구가 살던 집은 이제 요리코 홀로 지키는 중이다. 남편이 있던 시절 꽃과 나무가 무성하던 정원은 몰라보게 변했다. 공들여 그가 관리하는 정원은 일본 전통건축 양식처럼 정원석과 모래로 꾸며져 있다. 요리코는 자신이 쇼핑하던 동네 마트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생활한다.
그의 집 실내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개 세상을 떠난 가족의 위패가 모셔질 자리에 생수가 든 물병과 유리구가 차지하고 있다. '녹명수'라는 신비한 효능을 지닌 생명수라 한다. 요리코는 물의 영험한 에너지를 숭배하는 신흥종교에 시간과 돈을 바치며 외로움을 달래듯 보인다. 매일 제단에 모신 생명수에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모래 정원의 물결 파문을 정리하는 건 물론, 주기적인 신자 모임에 열성으로 참여한다. 잡념을 없애고 부정적 마음을 치유하는 의식을 마치면 요리코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다. 어쨌건 겉으로 봐선 상처를 이겨내고 나름대로 잘 사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게 평온한 시간이 이어질 것처럼 보이던 어느 날, 요리코는 맞은편에 숨어 집을 바라보는 수상쩍은 중년 남자를 발견한다. 질겁하고 문단속을 하려던 그는 사라진 남편이 남루한 행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포착한다. 하지만 요리코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남편의 실종 이후 풍파를 어지간히 겪은 듯하다. 배신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차마 내쫓지는 못하고 집안에 일단 들이긴 했지만, 대화 없이 냉랭할 따름이다. 염치없이 눈치만 보던 남편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밝힌다. 요리코의 마음은 '파문'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일본 힐링 영화 명감독이 과감히 선보이는 사회적 재난과 가족 붕괴
▲ "파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노래할 때, 일본 영화는 늘 소환 대상이었다. 드라마의 합본 아니면 애니메이션/특수촬영물 말고 딱히 내세울 게 없이 오글거리는 내수용 작품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따라붙곤 했다. 물론 그런 폄하에도 불구하고 열광적 팬은 늘 국내에 존재했다. 대개 한국 독립영화와 대비되는 소소한 일상의 극세사 모델, 혹은 '힐링-치유물'로 분류되는 일군의 흐름이었다. 후자의 경우 드라마 <심야식당>과 <고독한 미식가>가 대표다. 그리고 극영화에서 상징적 이름이 바로 <파문>을 연출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일 것이다.
감독이 익숙하지 않다면, 대표작 <카모메 식당>을 떠올려보자. 특별한 사건 없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일본식 주먹밥 가게를 연 주인공과 하나둘 가게에 합류한 동료, 그리고 이국의 손님들이 어우러지는 소소한 풍경은 일본과 유사한 경쟁체제에서 숨 가쁘게 사는 한국 관객들에게 상당한 잔향을 남겼다.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작품 속 배경, 디자인 등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국내에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엇비슷한 양산형 힐링 답습은 감독 본령이 아니었다. <안경>과 <요시노 이발관>처럼 태평양 바다, 나라현 산골 다양한 배경 옮겨가던 감독은 외국인 연기자를 대폭 등용한 <토일렛>, '치트키' 반려묘와 인간이 어우러지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거쳐 자신의 영화가 그저 예쁘기만 한 '팬시'가 아님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후속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성 소수자를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켰고, <강변의 무코리타>는 상처 많은 과거를 뒤로 한 채, 바닷가 연립주택에 입주한 주인공의 재활을 그려냈다. 사회에서 낙오했거나 음지에서 배척받는 이들의 비중이 늘고, 인물들 깊이는 더해져 갔다. 그런 도전이 <파문>에서 전면화한다. <카모메 식당>으로만 감독 이름을 기억하던 이들이라면 이 신작이 무척 낯설 테다. 하지만 오기가미 나오코의 세계는 크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동시대 영화가 조명해야 할 몫에 더 집중한 것뿐이다.
가짜 힐링을 넘어, 이웃과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해법이다
▲ "파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영화는 관객에게 몇 가지 물음표를 던지고, 의문이 해소되는 과정으로 전개한다. 우선 남편이 왜 사라졌는지가 첫 번째 미스터리다. 물론 단서는 주어진다. 도입부에서 각자 일에만 골몰하는 가족이 일순간 집중하는 순간이다. 바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유출이다. 요리코가 생수를 수급한 것 역시 방사능 유출 때문이다. 비도 무턱대고 맞으면 큰일 난다. 겉으론 도쿄 주택가 일상은 평화롭지만, 공포와 균열은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남편 실종도 아무리 봐도 연관되어 있다.
생명수에 등급 나눠 신자들에게 비싸게 파는 교단의 행태, 신도를 늘리기 위해 빈민구제 봉사에 열성인 풍경들은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파고드는 전형다. 요리코는 겉으론 교단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마트에서 강짜를 부리는 진상 고객이나 예의 바른 요청을 무시한 이웃에게 티 나지 않는 증오를 품을 때마다 행하는 소소한 복수는 그 평정이 위장에 불과함을 폭로한다. 의미 없어 보이던 작은 행간이 어떻게 반복되며 축적되는지 지켜보면 종이 모서리에 베이는 기분이다.
요리코는 현모양처이자 신실한 신도라는 가면을 쓰고 10년을 살아왔다. 이는 자신의 이미지 조작인 동시에 시댁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남편, 사회적 명망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를 억압하던 시아버지에 대한 숨은 분노가 만만치 않음을 관객은 점점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에 품은 우월감과 욕망은 감출 수 없다. 아들이 데려온 애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그는 공공연히 차별적인 언행을 드러내고, 독차지한 유산을 거머쥐고 암 치료비를 목적으로 돌아온 남편을 박대한다.
하지만 요리코가 악인은 아니다. 평판 좋고 이해될 구석 많은 인물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현저히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 충분히 선량하고 공정하게 응대한다. 그러나 본인의 한을 감추려다 보니 자신까지 속이고 말았다. '내가 제일 불행'하다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근래 세태의 전형적 존재다. 결국에 사이비 종교에 귀의해 거짓 평안을 누리는 게 아닌, 가족 및 이웃과 소통하며 솔직한 심정을 꺼내고, 타인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진정 요리코가 그토록 찾던 구원인 것이다.
남편이 사라진 후 그가 보상처럼 물려받은 집 정원은 전통 정원 '고-산수 [枯山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형태다. 모래에 구현한 파도 문양은 마음의 수양과 다도 문화에서 수립된 '와비-사비' 수양법과 연동되는, 일본 전통 조경의 정점 중 손꼽힐 정도다. 하지만 정작 그 집주인의 속내는 거친 풍랑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형세다. 마침내 위선을 집어던지고 진정한 자신과 대면할 때 주인공은 경이로운 영화적 찰나를 화면 가득 펼쳐낸다. 눈으로 목격해야만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힌트 하나만 내자면, '자우림'의 명곡 <일탈> 가사와 정확히 통하는 대목이란 것.
<작품정보>
파문波紋 (Ripples)2024|일본|드라마/코미디2025.01.15. 개봉|120분|12세 관람가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출연 츠츠이 마리코, 미츠이시 켄수입 ㈜엔케이컨텐츠배급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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