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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프라니요(Tempranillo)는 ‘일찍’이라는 스페인어 템프라노(temprano)에서 따온 이름에서 나타나듯 빠르면서도 균형과 품질을 유지하는 부지런한 매력이 돋보이는 품종입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와인 산업 성숙도가 이탈리아나 프랑스보다 늦어지면서 다른 국제 품종들에 비해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선을 보인 것 역시 상대적으로 늦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국제 품종과의 블렌드를 통해 명성과 인지도를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스페인 만의 고유의 떼루아와 토착 품종의 대중화를 기대하는 전략을 주로 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스페인의 명망 있는 와이너리인 베가 시실리아(Vega Si 전세보증금이란 cilia)에서 생산하는 우니꼬(Unico) 입니다.
템프라니요에 국제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를 섞어서 만드는 장기 숙성 와인인데, 출시되기까지 10년 이상 숙성하고 병입 후에도 50년 이상 추가 숙성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일찌감치 그 복합미와 구조감을 인정받아 전 세계 와인 애호 돈대출 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요즘은 스페인 현지에서 300~400유로, 한국에서는 병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와인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최고급 와인을 수십년 간 만들어온 와인메이커가, 스페인 최고라는 찬사와 기득권을 집어던지고 최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인은 몇년 사이 무섭게 유명 2억 대출이자 해지는 중입니다. 바로 아우사스(Ausas) 입니다.



리베라 델 두에로에 위치한 아우사스의 포도밭 중 한 곳.




떼루아 해석에만 오롯이 집중한 와인
오늘 쇼핑몰창업지원센터 의 주인공 아우사스 와이너리를 설립한 자비에 아우사스(Xavier Ausas)는 베가 시실리아에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년 간 우니꼬 생산을 담당했던 와인메이커 입니다. 스페인 최고의 와이너리에서 고급 와인의 정수를 배우고 가꿔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가장 명망있는 와인메이커 중 한 명으로 칭송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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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왜 최고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만의 와인에 대한 확고한 철학 때문입니다. 아우사스씨는 자신만의 와인 아우사스에 순수함, 생동감, 일관성이라는 해석을 담고 싶었다고 강조합니다. 스페인어로 해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그의 와인, 인터프레타시온(Interpretacion)의 명명에서도 그 의지가 잘 드러납니다.
와인의 원재료, 포도가 생산되는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지역의 떼루아를 있는 그대로 와인 속에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리베라 델 두에로는 스페인의 주요 와인 산지를 꼽을 때 빼놓지 않는 곳입니다. 북부 두에로 강을 따라 100㎞ 넘게 펼쳐진 해발 750~850m의 고원지대 포도밭이죠. 덕분에 낮과 밤의 일교차가 매우 심하고, 산미와 풍미가 잘 발달한 포도가 자라납니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과거엔 템프라니요 100% 와인을 만들기엔 적당하지 않은 지역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베가 시실리아 역시 우니꼬에 국제 품종인 메를로와 까베르네 소비뇽 등을 넣어 구조감, 질감 등을 보완함으로써 최고급 와인을 만들었죠. 온화한 대서양성 기후로 지역 자체가 템프라니요에 최적화된 리오하(Rioja)와는 상당히 다른, 어찌보면 불리해보이는 조건이었던 셈입니다.



리베라 델 두에로 와인 지도.




가장 잘 아는, 좋은 것만 모았다
이 지역에서 30여년 가까이 와인을 양조해왔던 아우사스씨도 이런 불리함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그는 왜 이곳을 택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가장 잘 아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아우사스씨는 인터프레타시온이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가장 캐릭터가 뚜렷한 마을들의 40년 이상 된 오래된 포도나무의 포도만을 고르고 골라 만든 와인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모라디요 데 로아(Moradillo de Roa)에서는 신선함과 구조감을, 로아 데 두에로(Roa de Duero)에서는 초키(Chalky·분필 같은 감촉) 뉘앙스와 미네랄리티를, 구미엘 델 메르카도(Gumiel del Mercado)에서는 풍부한 과실미와 산미, 나바 드 로아(Nava de Roa)에서는 우아함과 제비꽃 뉘앙스 등 입니다.
지역의 드넓은 포도밭에서 자신만의 해석이 독보적으로 드러난 마을의 최고 포도만을 사용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가 30여년 가까이 이 지역 최고의 와이너리에서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분야에서만 수십년의 경력을 가진 최고의 장인이 모든 공력을 모아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도구를 고른 셈입니다.



고원 지대인 리베라 델 두에로의 올드 바인(오래된 포도나무)의 모습. 이 지역은 일교차가 크고 강수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블렛 방식으로 포도나무를 키운다. 보기엔 모양새가 이상하지만, 오랜 기간 깊게 내린 뿌리 덕분에 응축된 풍미를 끌어낸다.




오로지 한 가지만 집중해서 만든다
아우사스 인터프레타시온의 또 다른 매력은 브랜드가 단 하나뿐이라는 점 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가장 비싼 와인,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RC·Domaine de la Romanee-Conti)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는 소속 8개 주요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와인들 12병을 한 벌에 담은 컬렉션이죠. 한 가지 상품만 생산하는 게 아니라 등급 혹은 지역을 나눠 여러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는 셈입니다.

이는 대부분 와이너리에서 통용되는 방식입니다. 가장 좋은 포도로 가장 공을 들인 플래그쉽급과 그 다음 단계로 브랜드의 캐릭터와 차별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미들급, 일반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쉽게 어필할 수 있도록 하는 엔트리급 등 등급을 나누는 것은 현대 와인 산업에서 보편화된 방식이죠. 와인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다양한 만큼 많은 소비자들이 자신들을 선택하도록 해 와이너리 입장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도로 고품질화에 쏟기 위함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우사스 와이너리의 와인은 오로지 인터프레타시온 한 종류 뿐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기본인 와인 산업에서는 의외인데요. 아우사스씨는 이에 대해 “많은 와이너리가 하나의 와인만 생산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하나의 와인만을 생산한다. 해석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와인을 생산하기보다, 한 와인에 모든 자원을 투입해 일관된 품질과 독창적인 스타일을 유지하고 싶다는 신념으로 읽힙니다.



아우사스 와이너리의 설립자이자 양조자인 자비에 아우사스. [전형민 기자]




새 도전에 나설 때 선물할 만한 와인
장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아우사스에게 ‘와인메이커로써, 당신은 지휘자인가 작곡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한참 고민하더니 지휘자(Conductor)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은 각각의 포도밭에서 최상의 관리로써 만들어지는 원재료 포도들을 조화롭게 양조해 하나의 와인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이라는 설명입니다.

아우사스 인터프레타시온은 아주 고급 품질의 와인입니다. 향은 잔에 따를때부터 잔 밖으로 풍부하게 퍼져나오고, 잘 익은 블랙체리와 블랙베리, 자두 등 과실미가 돋보입니다. 미묘한 타임 등 허브류의 뉘앙스가 끝에 숨어있고, 오크 숙성을 한 덕분에 오래 숙성된 빈티지의 경우 바닐라와 가죽, 커피의 향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마시기 보다는, 10여년 정도 셀러에 뒀다가 최고 절정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맛보는 즐거움이 훨씬 클 것 같은 와인입니다. 어린 와인을 일찌감치 맛봐야겠다면, 적어도 마시기 2~3시간 전에 미리 오픈하고, 가능하다면 디캔팅하는 것도 추천할만 합니다.
리베라 델 두에로의 거장이 오랜 연단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색깔을 내기 시작한 와인, 아우사스 인터프레타시온. 오래하던 업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지인에게, 10년 뒤 더 창대하기를 기원하며 선물하기 좋은 와인으로 추천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