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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 확인용 신분증 제시하셔야 입장 가능합니다. 여권도 없어요?"
현장학습으로 콘서트장을 찾은 영롱고 학생들 앞을 가로막는 스태프. "나 왜 안 돼?" 인도네시아에서 온 전학생 닐루 유아나가 묻는다. "지금 저희 학생 외국인이라고 이러시는 거 아니에요!" 학생을 통솔하는 김은지 교생 선생님이 항의해보지만 닐루는 결국 입장을 거부당한다.
2020년 '오늘의 우리만화' 상을 받은 정영롱 작가의 신작 '끄나빠' 속 한 장면. 이주배경 청소년 닐루가 다른 외모 때문에 차별당하는 한 에피소드다. 정 작가는 "김은지 선생님은 무척 소심한 성격인데도 자기 학생의 일에는 아이폰신용불량 자기 일처럼 화를 낸다"며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모습이 김 선생님과 같았으면 좋겠고, 이런 태도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차별받는 사람을 위해 차별받지 않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일은 "대신 분노하는 것"이라는 게 정 작가의 생각. '끄나빠'는 인도네시아어로 '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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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부 팔린 '만화 인권 교과서'
4컷 만화 형식으로 유쾌하게 그려낸 '끄나빠'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창비가 손잡고 지난달 펴낸 '창비인권만화' 시리즈의 신간 '호시탐탐'에 실려 있다. 2003년 '십시일반', 2006년 '사이시옷', 2013년 '어깨동무' 이후 11년 만의 신작이다. 2001년 인권위 출범 커리어우먼 이후 인권 개념이 낯설 당시 '만화 인권 교과서'로 뜨거운 반응을 부르면서 30만 부나 팔려 나갔다. 이번에도 국내 인기 만화가 8명이 '인권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에 인권을 만화로 그려내겠다'라는 일념 하나로 뭉쳤다.



창비인권만화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2003년 아파트 전세 시세 출간된 '십시일반'부터 지난달 4번째 발행된 '호시탐탐'까지. 창비 제공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일을 좀 안전하게, 사람답게 할 수는 없냐는 거야!" 넷플릭스 시리즈 'D.P'의 원작이 된 웹툰을 그린 김보통 작가가 '최후의 보호막'을 통해 벼려낸 문제의식이다. 그는 산업재해가 만연한 노동 현장의 꺼져가는 원인을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하지 않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싼 기계'"로만 대하는 데서 찾았다. "쓸모가 없어진 기계는 폐기하면 그만이지만 쓸모없는 사람은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요.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면 사람들이 안 볼 테니 재미있게 판타지처럼 풀어내봤습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정년이'의 원작자인 서이레 작가는 요니요니 작가와 함께 동성혼을 다룬 '청첩장 도둑'을 선보였다. 서 작가가 스토리를 짜고, "팬시(fancy)한 작화가 강점"인 요니요니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가족의 자랑거리였던 '엄친딸'이 커밍아웃하고 결혼하는 과정을 동생 시점에서 다룬다. 서 작가는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보다 동성혼에 대한 반감이 덜한 듯 보이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없는 듯 조용히 살라'는 기성 세대의 혐오와 결국 맞닿아 있더라"며 "그런 맥락에 대해 잘 말해볼 기회로 삼고 싶었다"고 했다. 요니요니 작가는 "이 사람들 편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렸다"고 했다.



서이레·요니요니의 '청첩장 도둑'의 한 장면. 창비 제공



존재 의심 받는 약자들에게 "여기 당신의 편이 있다"
만화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하비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은 김금숙 작가의 '섬'은 지역 소멸과 초고령화를 절묘하게 교차시킨 작품이다. 6년 전부터 강화도에서 사는 김 작가가 체감한 문제를 그대로 담았다. 한 번에 하나의 작품에만 매달리는 게 그의 작업 철칙이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손을 보탰다. 여순 사건을 주제로 한 장편을 준비 중인 그는 "힘든 주제를 갖고도 쉽게 풀 수 있는 게 만화의 힘"이라며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읽을 수 있는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2016년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 '혼자를 기르는 법'의 김정연 작가는 '수수께끼'를 통해 여전히 제대로 명명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 문제를 다룬다. 모두에게 필요한 돌봄이지만 시장의 '상품'이 됐다가 누군가에겐 '엄마'나 '도리'라는 이름으로 내맡겨지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는 "돌봄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인데 누군가에게는 비극이거나 희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삶에 대한 존엄이 굉장히 협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짚고 싶었다"고 했다.



구희 작가가 쓰고 그린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의 한 장면. 창비 제공


'호시탐탐'은 노동, 여성, 성소수자, 지역 소멸, 기후위기, 돌봄 등 우리 속으로 곪아 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기후위기인간'으로 주목받은 구희 작가의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4월부터 열대야가 찾아오는 2035년이 배경인 작품. 한여름 러닝을 하다 탈진을 경험했던 그의 눈에 우연히 학교 체육관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그는 "학교 강연을 가보면 체육관 없는 학교가 없더라"며 "2035년이 되면 바깥 활동이 아예 어색해질 수도 있겠다, 그러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어떻게 될까, 여기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사회 부조리를 주로 그려 온 최경민 작가는 '참교육'으로 가해자의 인권과 사적 제재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1990년대 체벌 금지, 촌지 거부를 내세웠던 교사 운동의 슬로건이던 '참교육'은 오늘날 물리적 처벌을 통해 잘못을 일깨우는 것으로 뜻이 변질됐다. 최 작가는 "사적 제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짜로 문제의 해결을 바란다기보다는 영화의 통쾌한 클라이맥스를 바라듯 불합리한 상황을 봐 버린 자신들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라며 "정답을 내기보다는 함께 고민해보길 바랐다"고 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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