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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5-04-14 08:35 조회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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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발굴 조사 -이번 전시에서는 수많은 출토품 중 32점을 선별하여 특별 공개한다.경주 낭산 동북쪽에 있었던 이 절터에 있는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삼층석탑이다. 바닥돌의 각 면마다 2개씩 안기둥을 새기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고,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세 발 달린 청동 솥 靑銅초 Cauldron,통일신라옛 사진으로 보는 삼층석탑'인백사仁伯寺'와 '奉'이 새새겨진 비석 조각글씨가 새겨진 비석 조각- 1차 발굴 조사 -'眞'과 '窮'이 새겨진 비석 조각발견된 금동불입상은 크게 'U자형과 Y자형', 두 가지 유형의 옷주름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상이 오른손을 들어 두려움을 없애주고[施無畏印], 왼손을 내려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與願印]는 손 갖춤을 하고 있다. 관음보살로 추정되는 상은 장식이 달린 목걸이와 함께 왼손에 깨끗한 물을 담는 정병淨甁을 쥐고 있다.주요 성과를 소개하자면, 우선 조사 지역의 북쪽 경계에서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도로가 발견되었다. 신라 왕경 내에서는 월성을 중심으로 너비 23m의 남북대로, 너비 15.5m의 동서대로가 확인되었다. 이 도로는 너비 16~17m로 황룡사 터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전 황복사 터 출토 불교조각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금동사리함/금동사리함 뚜껑 안쪽에 새겨진 글자, 신라 706년경, 국립중앙박물관 (사진)낭산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2k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고 가을 정취를 벗 삼아 신선이 노니는 복 받은 땅 낭산에 자리한 전 황복사 터로 다녀왔다.1942년 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금동사리함 뚜껑 안쪽에는 글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승하한 신문왕(재위 681~692)을 위해 왕비인 신목태후와 아들인 효소왕(재위 692~702)이 692년에 석탑을 세웠고, 이후 700년에 신목태후가 돌아가시고 702년에는 효소왕이 승하하자 성덕왕(재위 702~737)이 706년 사리갖춤을 석탑에 넣고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대좌#金銅臺座Pedestal, 통일신라- 5차 발굴 조사 -- 3차 발굴 조사 -전 황복사 터 출토 명문자료전 황복사 터 傳 皇福寺址반원모양 금동 장식#金銅半球形裝飾Hemispere-shape Ornaments, 통일신라신장#神將像浮彫Guardian, 통일신라좌측의 명문이 잘 보이지 않으나 우측의 글씨 '神'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이 유적에서는 기단석으로 사용되던 십이지신상이 확인되어 1920년대 후반부터 조사가 이루어졌다. 1942년에는 절터 내 삼층석탑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었고, 이후 몇 차례의 부분적인 조사가 더 진행되었고, 2016년부터는 (재)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본격적인 발굴을 실시하고 있다.가을 나들이와 함께 본 전 황복사 터의 출토 유물들이었다.전 황복사 터를 발굴하다#녹유벼루綠釉硯 Inkstone, 통일신라우리는 살면서 행복幸福을 바라고, 죽은 사람을 위해 명복冥福을 빌며, 새해 덕담으로 '복'을 빌어 인사를 나눈다. '복'은 그만큼 우리 삶과 가깝게 맞닿아 있다. '복'을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옛사람들이 바랐던 '복'은 '황복사'라는 절 이름에서 잘 나타나며, 절터 내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갖춤에서도 확인된다.* 황복사 터를 다녀 오면서 만난 경주 외동의 가을 풍경장소: 국립경주박물관 영남권수장고반원모양 금동장식들은 안쪽에 큰 촉이 있어 나무로 된 건축물이나 가구 등에 고정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불꽃모양 금동장식은 작고 둥근 난간 위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으로 만든 장식은 뒷면 위아래에 각각 촉이 달려 있는데, 이와 흡사한 형태의 유물이 황룡사 터에서도 출토되어 주목된다. 이외에도 발이 세 발 달린 청동 솥, 청동그릇, 청자병, 녹유벼루 등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물이 건물터에서 발견되었다.1942년에 탑을 해체, 수리할 때 2층 지붕동 안에서 금동으로 만든사리함과 순금으로 만든 불상 2구, 유리구슬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사리함의 뚜껑에는 탑을 건립하게 된 이유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목간木簡은 나무를 깎아서 그 위에 글을 쓴 것을 말한다. 연못 터에서 출토된 목간은 소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적외선 촬영 결과 '上早(軍)寺迎詔(談)沙弥卄一年'이라는 10글자의 묵서가 판독되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나, 목간 끝부분에 구멍이 있어 승려의 신분을 나타내는 신분증 또는 물품의 꼬리표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돌에 새겨진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있는 무장武將의 모습이다. '악귀'라고 불리는 '생령生靈'을 깔고 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장상의 옷자락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황복사는 신라의 고승#의상義湘(625~702)이 출가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는 의상이 황복사에 있을 때, 여러 사람과 탑을 돌면서 계단이 아닌 허공을 밟고 올랐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데 황복사 터를 황복사라고 단정할 만한 확실하 근거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유적 주변에서 '황복사皇福寺'라고 씌어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사찰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명칭 앞에 '전傳'자를 붙이게 되었다.당초문양과 '佛' '前'이 새겨진 비석 조각#경주황복사지#삼층석탑, 국보 제37호 (안내문에서)Newly Excavated Artifacts from a Temple Site known as Hwangboksa2012. 8. 27. ~ 10. 24.'황복사皇福寺'가 씌여진 기와조각 (탁본 사진)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낭산 동쪽 기슭에서 '황복사皇福寺'명 기와 조각을 발견불꽃모양 장식#金銅火焰形裝飾Frame-shaped Ornament, 통일신라병 靑銅甁 Bottle, 고려공예품은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일상생활에서 실용적이면서 예술적인 가치가 있게 만든 물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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