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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때려 빨갱이야. 꺼져, 꺼지라고." "니가 먼저 쳤잖아. 카메라 왜 들이미냐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3월19일 오후 6시30분경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찬반 진영 간 몸싸움이 일어났다. 시작은 말싸움이었다. 탄핵 반대 농성을 하던 윤 대통령 지지자 앞을 찬성 세력이 지나가면서 시비가 붙었다. "개딸을 휘집어라" "빨갱이들아, 파면하라"는 등 말이 오갔다.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서로 삿대질까지 주고받았다.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진 건 5분이 채 안 됐다. 한 중년 여성이 반대 진영 청년 남성의 멱살을 잡자 순식간에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30여 명 남짓한 사람이 서로 예금담보대출 이자 멱살을 잡으며 밀쳤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의 티셔츠는 가슴까지 말려 올라갔다. 충돌을 제지하던 경찰관까지 밀어버렸다. 주위에 있던 경찰관이 급히 달려들어 싸움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격앙된 상태였다.
유튜버들은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더 부추겼다. 상대 진영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싸움을 생중계했다. 일부는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 대출이자계산법 렸다. "마이크 치우라고. 쟤네들 좀 못 하게 해줘요"라는 항의가 터져 나왔다. 한복을 입고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이 멈춰 서더니 카메라를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싸움은 경찰이 양측 사이에 바리케이드를 치면서 끝이 났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후 현장에 있던 김아무개씨(53)에게 '크고 작은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가 부동산후순위 '라고 물었다. 김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오늘 오전에도 좌파랑 우파랑 한바탕 붙었어요. 맨날 있는 일인데요 뭘. 많으면 하루에 세 번씩도 싸워요." 현장에 있던 경찰 관계자도 "흔히 있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지나가다가 서로 시비가 붙는 것이 하루이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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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찬성과 반대 진영 간 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여기는 애국 보수들의 성지, 좌파들은 한 발자국도 못 들어온다"
대한민국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 기금이란 내란(內亂)' 논란에 휩싸이더니 석 달 만에 '내전(內戰)' 우려에 직면하면서다.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라는 종착지를 두고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선고일이 계속 미뤄지면서 갈등은 더 격렬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조속한 복귀를 바라는 세력, 이에 맞서 즉각 파면을 염원하는 세력 모두 광장으로 나가 투쟁 대오에 합류하면서 헌재 앞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날 시사저널이 찾은 서울 종로구 재동의 헌재 정문 앞에선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노숙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들 뒤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헌재 탄핵 원천무효. 각하 판결 촉구'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들의 '찬탄(탄핵 찬성) 세력'을 향한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한 모습이었다. 한 참가자는 "여기는 애국 보수들의 성지"라며 "좌파들은 한 발자국도 못 들어온다"고 말했다. 김아무개씨(53)는 생업과 가정을 제쳐두고 헌재로 왔다. 김씨가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님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서 싸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경기도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갔다가 이제 헌재까지 왔다. 일은 노트북을 들고 와서 차에서 잠깐 한다. 가정도 있지만 지금 투쟁보다 중요한 게 있느냐."
헌재 재판관들 소유로 추정되는 차량이 빠져나올 때면 비난이 쏟아졌다. "재판관들이 퇴근할 때를 노린다. 우리는 누구 차량인지 모르니까 일단 재판관 차량이라고 생각하고 '문형배 사퇴하라'는 등 소리를 지른다. 안에서는 잘 안 들릴 수도 있으니 마이크를 드는 건 필수다. 북과 꽹과리를 치는 사람도 있다." 헌재 앞에서 만난 윤 대통령 지지자의 전언이다.
3월19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3월19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어느 매체에서 왔나" 취재진 향한 적대감도
적대감은 취재진을 향해서도 드러냈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어느 매체에서 왔느냐"부터 물었다. 한 유튜버는 "미안한데 우리 시청자들이 해주지 말라고 한다"며 거절했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는 "잠깐 기다려 보라"며 유튜브 채널을 살펴보고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진 후에야 인터뷰에 응했다. 시위 주최 측인 박종남씨(가명·42)는 "집행부의 검수를 받은 매체만 취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선고 당일 '인용' 결정이 나면 이들의 흥분은 극에 달할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주최 측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박씨는 "최대한 평화롭게 시위를 하는 것이 목표다. 단식 중인 사람도 많은데 우리가 힘이 있겠느냐"면서도 "최악의 경우 인용이 됐을 때 시위대가 투쟁에 나서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도 난감한 상황이다. 선고 당일 경찰은 헌재 인근을 접근 불가능한 '진공상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광화문 일대에 선고일 무렵에는 80여 개 부대 5000여 명 이상, 선고 당일에는 140여 개 부대 9000여 명 이상을 배치하겠다고 했다. 계획 이행을 위해서는 '노숙 알박기'를 하는 지지자들을 강제로 해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지지자들이 버티기에 나설 우려가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헌재로부터 불과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탄핵 찬성 집회가 열렸다. 걸어서 12분이면 닿을 수 있는 위치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5000여 명(경찰 비공식 추산)은 "헌재는 윤석열을 지금 당장 파면하라" "파면이 답이다, 내란을 끝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촛불행동 운영위원인 정아무개씨는 "반탄(탄핵 반대)들을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이들은 민주시민이 아니고 비상계엄으로 나라가 망하든 말든 관심이 없는 세력"이라면서 "윤석열(대통령)의 파면이 나올 때까지 광장에 나올 것이고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나 보자"라고 강조했다.
이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몸조심하라"고 말한 뒤라 집회 열기가 평소보다 더 뜨거운 듯했다. 이 대표는 광화문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최 대행에게 "대통령도 헌정 질서를 파괴할 경우에는 현직이어도 처벌하게 돼 있다. 국민 누구든 현행범으로 최 권한대행을 체포할 수 있는 것"이라며 "몸조심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으로는 진영 간 갈등이 대립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전해졌다. 오아무개씨(48)는 "'탄핵 찬성' 배지를 가방에 달고 집을 나왔을 때 나를 흘겨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고개 숙여 인사해 주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면서 "모두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지만 다른 입장이라도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잘 안됐기 때문에 이 지경까지 온 것"이라고 토로했다.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이 결정되자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헌재 방향으로 진입 도중 차량에서 떨어진 스피커에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탄핵' 땐 어땠나…선고 당일에만 4명 숨져
이대로라면 8년 전 비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헌정사 첫 대통령 파면이 결정됐던 2017년 3월10일, 선고 직후 헌재 일대에는 순식간에 격앙된 지지자들이 뒤엉켰고 결국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지지자 집회를 주도했던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회장 등에 대한 판결문에는 그날의 상황이 자세히 담겼다. 선고 당일 오전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이 나오자 주최 측에서는 오전 11시21분경 "국민 저항권을 발동할 것"이라면서도 "폭력을 쓰지 말자"며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30분 후 분위기는 급반전됐고 무대 위에서 "무조건 돌격, 헌법재판소가 죽든 우리가 죽든 돌격"을 외쳤다.
집회는 정오를 기점으로 급격히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다. 헌재로 향하려던 시위대는 경찰 차벽에 가로막히자 "트럭으로 밀어버리자, 밀면 경찰 압사" 등을 외쳤다. 급기야 한 참가자가 경찰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50차례가량 들이받는 아찔한 상황이 이어졌다. 시위대는 충돌로 벌어진 차벽 틈을 비집고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 했고, 경찰이 막아서면서 극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방송차량 위에 있던 철제 스피커가 시위 참가자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면서 여러 명이 바닥에 쓰러졌고 3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주최 측은 "고인을 위해 청장년 50명이 앞으로 와 버스를 엎어야 한다"며 참가자들을 자극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에만 4명이 숨졌다. 현장에서 크게 다친 1명도 한 달 후 사망했다. 경찰관 33명을 포함해 총 6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폭력 사태를 주도한 혐의를 받았던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입건된 30명 가운데 8명은 구속, 22명이 불구속 수사를 받았는데 버스로 차벽을 들이받았던 인물 외 나머지는 모두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기우가 아니다. 2025년 3월의 우리 모습도 마찬가지다. 헌재 선고가 있기도 전에 벌써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있는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부근에서 분신을 시도한 50대 남성이 1월20일 숨진 데 이어 3월19일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 분신을 시도한 79세 남성이 사망했다. 3월17일에는 광주 북구 운암동 한 사거리에서 60대 남성이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8년 전에도 갈등은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큰 대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면서 "사람들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과격해졌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가로막혔다고 판단하면 스스럼없이 폭력을 불사한다"고 강조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늘어나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특정 이념을 반영해 주는 언론이나 유튜브 채널만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국회의원도 이에 편승해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졌다"며 "정치권이 각성하고 극단으로 나누어진 진영을 봉합하지 않는 한 후폭풍은 오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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