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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야빛나송 작성일25-03-13 18:49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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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생활은 웃고 시작했다. 없었다. 쓰고 말에2월14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 외상소생실에서 의료진이 중증 외상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사람의 몸은 피와 근육, 뼈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몸이 ‘물질’이라는 사실은 견고해 보이는 이것들이 추락, 찔림, 교통사고, 낙상 등으로 파괴됐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사고는 수시로, 불시에, 누구에게나 들이닥친다. 사람은 순식간에 의식을 잃거나, 언어를 잃는다. 고통과 단말마만 남는다. 이런 사람들을 ‘중증 외상환자’라고 부른다. 중증 외상환자의 생존율은 사고 발생 후 1시간 내에 어떤 의료 조치를 받느냐에 좌우된다. ‘골든아워’다. 


한국은 금계산계곡 오랫동안 중증 외상환자의 불모지였다. 2011년 해적에게 피랍된 석해균 선장을 구조하면서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진 이후 이듬해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정부의 지원을 받는 권역외상센터 설립에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 보건복지부는 ‘외상센터 추진사업’을 진행하고 권역별로 17개 외상센터를 세울 계획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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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나 추락, 자살 등으로 다발성 골절과 광범위한 장기·신체 손상을 입어 과다 출혈 등 합병 증상을 보이는 중증 외상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이다. 초기 처치 및 응급 시술과 수술을 할 뿐만 아니라 외상 중환자실과 외상 일반병동을 운영해 환자의 회복을 돕고 외래진료까지 맡아 이들이 일상생활로 한국장학재단 공인인증서 복귀하는 전 과정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일반 응급센터와 다르다.


2014년 인천(가천대학교 길병원)·충남(단국대학교병원)·전남(목포한국병원) 3곳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전국에 권역외상센터 15곳이 설립됐지만 서울은 예외였다. 한국 전체 평균 외상사망률이 개선됐는데도 서울은 계속 제자리걸음이었 워크아웃제도란 다. 서울에는 마지막까지 권역외상센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형 상급병원이 즐비한 서울은 역설적으로 중증 외상환자가 생존할 확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도시였다. 취약계층 비중이 높은 중증 외상환자들이 초기 처치조차 받지 못하고, 구급차 안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 지방자치단체통합원서접수 률(외상환자 중 적정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사망자 비율)을 비교해보자. 수치가 낮을수록 외상환자를 더 살렸다는 의미다. 이 통계는 권역외상센터의 유무가 중증 외상환자의 생존율에 미치는 영향을 알려준다. 2015년 국내 예방 가능 외상사망률은 30.5%였다. 서울은 30.8%로 평균과 비슷했다. 전국에 9개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된 2017년, 국내 평균 예방 가능 외상사망률은 19.9%로 상당히 개선됐지만 서울은 30.2%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5개 권역 중 가장 높았다. 미국·독일·일본 등의 예방 가능 외상사망률은 10~15% 수준이다.




2023년 7월21일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가 서울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었다. 24시간 365일 중증 외상환자를 치료하는 곳으로 현재 의료진 111명이 소속되어 있다. ⓒ시사IN 박미소



서울권역외상센터 선정에 소위 빅5 병원(서울대병원·연대세브란스병원·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우고자 나선 곳이 국립중앙의료원이었다. 2023년 7월,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가 서울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었다. 국립중앙의료원에는 2014년부터 병원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외상센터가 존재했지만 부침이 있었다. 2016년과 2018년에 외상센터 전문의 대부분이 사직하는 대규모 집단 퇴사가 일어났고 그때마다 존폐 위기를 겪었다. 2019년, 외상센터 설립을 포기하지 않고 남은 전문의는 고작 3명. 이틀에 한 번꼴로 당직을 하며 센터를 지켰다.


2018년부터 서울권역외상센터 설립을 주도해온 김영환 전 센터장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의료 파업이 맞물려 중증 외상환자들이 최악의 상태에 내몰린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전에도 중증 외상환자들을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는데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빠르게 악화됐다. 코로나에 걸린 외상환자들이 계속 발생하는데 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 병원이나 집 안에 고립된 취약계층이 낙상에 의한 골절, 뇌출혈이 생겨도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외상환자들이 계속 방치되는 것에 의료진 모두가 고통스러워했다. 국가재난 상황에도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권역외상센터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보건복지부와 병원 집행부, 의료진 모두가 뜻을 모았다.”




2월17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 외상소생실에서 윤석화 센터장이 외상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팬데믹 시기에 외상센터가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지만 국립중앙의료원은 ‘코로나19로 상태가 악화된 중환자’ 치료와 ‘코로나19에 걸린 외상환자’들을 맡으며 진료를 멈추지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26년에 이전할 계획이었다. 크고 좋은 병원으로 옮기면 그때 권역외상센터를 개소하자고 계획하고 있었지만 사회적 재난을 겪으며 내부 여론이 뒤집어졌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과 희생 위에 해외의 원조를 받아 건립된 곳이다. 국가 병원으로서 공공의료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서울 의료의 공백, 빅5 병원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외상센터가 해야 할 일이었다(김영환 전 센터장).”


국립중앙의료원은 역사적 상흔을 치료하며 명맥을 이어온 의료기관이기도 하다. 4·19 혁명 당시 250명에 이르는 부상자와 사상자를 치료했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의료 구조를 맡았다. 세월호 참사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고, 메르스 중앙거점의료기관, 코로나19 대응 중앙감염병병원으로 역할했다.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을 때는 환자 11명을 수용하며 가장 많은 중환자 진료를 맡기도 했다.


〈시사IN〉 취재진은 2월14일부터 나흘간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중증외상센터)를 방문해 의료진과 동행 취재했다. 외국인 관광객과 의류 도매시장으로 떠들썩한 도심 한가운데에 1958년 세워진 아담한 벽돌 건물인 국립중앙의료원(National Medical Center·NMC)이 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한밤중에 보면 병원은 오도카니 홀로 있는 섬처럼 이질적이다. 하지만 생명이 위급한 어떤 시민들은 365일 24시간 언제나 불이 켜진 NMC 중증외상센터와 연결돼 다시 살아날 마지막 기회를 얻는다. 이곳에서는 외과, 신경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으로 구성된 외상 전담 전문의 10명과 간호사 101명으로 꾸려진 외상팀이 환자를 치료한다. 2023년에는 중증 외상환자 633명이 이곳에서 응급진료를 받았다. 중증외상센터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의료의 최전선을 지킨다.




매일 아침 8시, 중증외상센터 의료진은 중환자실 등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진료 상황을 공유한다. ⓒ시사IN 박미소


■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와 현실의 다른 점

70대 윤정호씨(가명)는 건물 청소를 하는 노동자다. 2월14일 오후, 영상을 웃도는 날씨였지만 날이 흐리고 간간이 세찬 바람이 불었다. 건물 3층 높이에서 작업을 하던 그는 순식간에 아스팔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충격으로 갈비뼈 7개가 부서졌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배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그가 NMC 중증외상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사고 발생 30여 분 뒤인 2월14일 오후 2시46분. 구급대원에게 경추와 척추를 고정하는 응급조치를 받고 외상센터로 이송됐다.


환자가 도착하기 전, 당직이던 윤석화 센터장과 류리나 전문의, 소생구역·수술지원 간호사 일곱 명 등이 외상소생실에서 윤정호씨의 초기 처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직 의사는 당직폰으로 전원을 요청하는 구급대원에게 전화를 받는데, 이때 환자의 사고 경위와 상태를 미리 듣고 이송 여부를 결정한다. 추락 사고의 경우 의료진은 바닥의 형태(흙, 아스팔트 등)부터 난간 유무, 음주 여부, 의식 수준, 연령, 헬멧 착용 여부 등 다양한 사항을 확인해 환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확보한다. 환자를 외상센터에서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이기도 하고, 환자가 도착하기 전 미리 초기 치료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증외상센터는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이송 기준에 따라 환자를 받는다. 예를 들면 6m 이상 높이에서 추락한 경우, 오토바이 사고 시 시속 30㎞ 이상 속도에서 충돌한 경우, 보행자라면 차에 치여 튕겨져 나가거나 차체에 깔린 경우 등이 ‘중증 외상’에 속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경증으로 보이지만 혈압·체온·맥박·호흡 등 활력 징후(바이털 사인)가 불안정한 경우에는 우선 이송을 받기도 한다. 소생실에서 응급처치를 한 후에 적합한 병원으로 전원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로만 설명을 들으면 상태를 파악하기 힘들 때도 있는데 뭔가 의심스럽다 싶으면 환자를 받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외상센터의 방향이다(류리나 전문의).”




2월15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차량 충돌로 이송된 환자를 의료진이 응급처치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중증외상의 가장 주된 사고 원인은 운수 사고다. ⓒ시사IN 박미소



윤정호씨가 소생실로 이송되자 의료진 10여 명이 순식간에 윤씨를 둘러싸고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이름이 뭐예요? 왼손 움직여보세요. 어디가 많이 아파요?” 윤석화 센터장이 묻자 환자는 소리 대신 입을 우물거리고 손가락만 약하게 움직였다. 그사이 간호사들은 환자를 탈의한 뒤 양팔 혹은 다리 등에 정맥과 동맥 혈관 라인(a-line)을 잡고 채혈을 한다. 한편에서는 구급대원으로부터 현장 사진을 확인하고, 의료시스템을 통해 환자의 과거 병력을 체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피가 나는 부위를 확인해 거즈를 덧대고 열상 부위를 체크해 사진을 찍는다. 중환자실 병상을 예약하고 CT 촬영 일정을 확인하는 일까지 동시에 일어난다.


그사이 의료진 수가 점점 불어났다. 근무 중이던 정진호·하계성·이나현·최진욱 전문의가 소생실로 내려와 합류하고 곧이어 응급외상 초음파(e-FAST), 엑스레이(트라우마 시리즈) 촬영을 담당하는 의료진까지 차례로 소생실로 들어왔다. 환자가 소생실에 와서 응급 정밀검사를 마치고 CT 촬영을 위해 이동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여 분. 외상환자 한 명에 10명이 넘는 의료진이 투입돼 초기 처치를 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팀워크는 중증외상센터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다. ‘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 맞는’ 의료진의 내공이 단시간에 정확한 의료 처치로 이어지는 곳이 외상소생실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정진호 전문의는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와 실제 외상센터의 차이로 ‘의료진을 대하는 태도’를 짚었다. “드라마에서는 다른 과 선생님들이 주인공에 비해 우스꽝스럽게 나오기도 하고 주인공이 그런 선생님들을 무시하듯 말하기도 하더라. 하지만 실제로 외상센터는 모든 게 협업이다. 천재 의사 한 명이 모든 걸 끌고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함께’한다는 점이야말로 외상센터의 진짜 매력이다.”


소생실은 응급수술실이기도 하다. 심각한 중증 외상환자가 이송될 경우 소생실 베드에서 환자의 몸을 열기도 한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환자를 수술실로 올려 보내고 나면 사방에 피가 튀어 있고 수술 기구가 엉망이 돼 나뒹굴기도 한다.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모두가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든다. 정진호 전문의가 말하는 외상센터에서 맛보는 보람은 이런 순간이다. “저 혼자였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환자를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살릴 때, 그때가 정말 짜릿하거든요. 한번은 트럭에 치인 환자인데 이송 중에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가 왔어요. 그때 저랑 같이 당직을 했던 분이 흉부외과 김영웅 선생님이었고, 수술지원 간호사분들도 굉장히 숙련된 분들이 함께 계셨어요. 환자가 오자마자 가슴을 열고 심장을 손으로 짜더라고요. 대동맥을 겸자로 막아버리면 피가 나던 부위에 피가 돌지 않기 때문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해요. 이미 죽어서 왔다고 생각한 환자가 살아난 거예요. 그때부터 모두가 다시 바빠지는 거죠.”




외상소생실에서 응급 정밀검사를 마친 중증 외상환자를 의료진이 영상의학과로 이송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정진호 전문의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며 중증외상센터를 “여전히 숙련된 선생님들 덕분에 배우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 살리는 재미”로 일하고 있는 자신은 “누군가의 눈엔 철없고 현실감각 없는 사람”일 거라며 웃었다.


외상소생실에서 초기 집중치료에 투입되는 의료 자원은 일반 응급센터와 비교해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중증 외상환자는 단독 손상이 아니라 다발성 손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처치가 이루어져야 하고 첨단 장비를 이용해 정밀한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도 다반사다. 이렇게 인력·공간·장비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비용을 진료비로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은 민간 병원들이 중증외상센터 설립과 운영을 기피하는 이유다.


결국 ‘기회비용’의 문제다. 윤석화 센터장은 서울이 중증 외상환자의 불모지였던 이유를 “훌륭한 상급병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 병원은 중증 외상환자들을 수용할 공간과 인력이 없다. 암센터나 심혈관센터처럼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진료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증 외상 치료는 진료비에 비해 수가가 낮아 환자를 받을수록 적자가 난다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다. 권역외상센터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국고보조금(응급의료기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적자를 보존하기에는 실효성이 낮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8년 보건복지부 의뢰로 아주대병원·부산대병원·울산대병원 등 권역외상센터 세 곳의 수익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상환자 한 명당 손익률은 -8.7%였다. 환자 한 명을 받을 때마다 약 145만9000원 손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외상 중환자실

온몸에 링거관과 드레인관(몸속에 고인 체액과 피를 빼내는 관), 링거액을 달고 있는 환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바이탈 모니터의 반복되는 기계 소리나, 제 몸에 상처를 내거나 링거줄이 엉키게 하지 못하도록 보호 장갑을 끼워놓은 손으로 침대 손잡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들의 말을 대신했다.


중증 외상 중환자들이 집중치료를 받는 NMC 외상센터 중환자실에는 20개 병상이 있다. 중환자실 정중앙에는 간호 스테이션이 있고 환자들의 바이털 사인 모니터가 간호 스테이션을 둘러싼 벽면에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병상마다 그날 투약해야 할 약물이 카트에 담겨 있고, 환자별로 소변량과 체온, 의식 사정, 동공반사 확인 등을 기록하는 모니터가 있다. 다종의 의료 장비가 환자 옆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안에 누워 있는 이들은 작아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면 평범한 이웃의 얼굴이다. 지하철역 계단에서 행인에게 부딪혀 낙상한 환자는 뇌출혈과 두개골 골절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진을 돌던 의료진은 환자의 다리가 편하도록 병상 각도를 조절하고, 목에 연결된 기관절개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날 먹어야 하는 약물의 투여량을 조절하고, 수면 상태를 확인하며 진통제의 종류도 바꿨다. 환자들은 보행 중 SUV 차량에 부딪히거나 달리던 택시에 충돌해서, 난간에 서서 작업하다 건물에서 떨어지거나, 길 가다 트럭에 깔려서 중증외상센터로 왔다.




2월14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 외상소생실에서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한 119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사고 상황과 상태를 보드에 적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020년부터 NMC 중증외상센터에서 근무 중인 권다은 간호사는 외상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엄마가 외가의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어요. 그때 목이 부러지고 심하게 다쳐서 큰 수술도 하고 중환자실에 오래 있었어요. 정말 안 좋은 상태였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건강이 회복되더니 이전 모습으로 퇴원했어요. 그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멋있더라고요.”


일터나 집안, 출퇴근길이나 늘 다니던 도로에서 사람들은 대비하기도, 예방하기도 힘든 재난의 습격을 받는다. 삶이 일순간 출렁거린다. 특히 중증 외상환자 중에는 야외 노동자, 의료급여 수급자 같은 경제적 취약계층 비중이 높다. NMC 외상센터의 2023년 진료통계에 따르면 내원 환자 5명 중 한 명은 직업과 관련된 기전으로 외상센터를 찾았다. 의료급여 1·2종 환자가 9%(58명), 노숙인과 행려인이 2%(13명)였다.


NMC 외상센터에서는 보호자가 없는 취약계층 환자도 적지 않게 온다. 보호자 대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도입해 참여 병상률을 80%까지 확대했다. 서울시 지원금으로 사회복지사를 별도로 채용해 환자들의 일상 복귀도 지원하고 있다. 경제적인 지원 제도를 함께 찾고, 환자의 관심사와 능력을 지역사회와 연계해 회복 후에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방법을 탐색한다. 사회적 안전망을 함께 고민하는 것까지 ‘치료’의 과정 안에 담아서 환자의 회복 의지를 북돋는다.


의료진도 각자 방식으로 환자를 만난다. 자기만의 ‘회진의 기술’을 연마하기도 한다. 윤석화 센터장은 회진을 오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환자들은 하나하나 확인할 것이 많다. 호흡기 관련 문제부터 심장·소화·영양·신경·감염 관련 문제 등 꼼꼼하게 살필 것들이 숱하다. 윤 센터장은 오래 묻고 오래 본다. 10가지 중 9가지를 확인했어도 딱 하나 놓친 것에서 문제가 악화돼 다시 몸이 망가지기도 하는 것이 중환자이기 때문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 중환자실에서 정진호 전문의가 아침 회진을 돌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정진호 전문의의 회진 기술은 ‘밝은 분위기 만들기’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청년이 있었어요. 당연히 너무 마음이 힘들었겠죠. 그런데 제가 너무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농담도 걸고 장난 친 것들이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힘든 일일수록 우리라도 ‘당신은 괜찮아질 거야’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퇴원하고 피자가 먹고 싶다는 환자에게 피자를 사주기도 하고, 단것을 좋아한다는 환자의 말에 “오늘 식단에 꼭 단 거 넣어달라고 할게요” 하기도 한다.


생사를 오가는 이들을 그토록 많이 만나면서도 의료진은 ‘죽음’에 무뎌지지 않은 듯 보였다. 2017년부터 외상센터에서 근무해온 성금란 수간호사는 “결국 회복돼 일상을 되찾는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외상센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환자들을 늘 만난다. 개복한 상태로 계속 피를 흘리고 의식을 찾지 못하고, 큰 수술을 수십 번씩 받기도 한다. 누구든 그런 환자를 보면 이 사람이 다시 두 발로 걷고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거다. 그런데 결국 의식을 되찾고, 일반병동에서 재활을 하고, 퇴원하고, 외래진료를 하러 와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는 거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다. 진통제를 줄여서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모습만 봐도 이제부터 회복이 시작되는 거란 믿음도 생긴다.”


2월21일 밤 11시. 하루의 마지막 회진이 시작됐다. 한 간호사는 뇌압으로 눈이 감기지 않는 환자의 눈에 안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다른 간호사는 의식이 없는 환자가 평소보다 길게 경련을 한 것 같다며 당직 의사와 긴 대화를 이어갔다. 의식을 찾아가는 걸까 하는 기대로 여러 번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다. 어둡게 조도를 낮춘 중환자실은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버티며 생을 포기하지 않은 환자들을 조용히 응원하는 듯했다. 이날 밤은 임종 면회를 온 보호자들이 늦은 시간까지 중환자실 밖을 지키고 있었다. 병상과 병상 사이에 삶과 죽음이 있다.




2월17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 외상수술실에서 류리나 외상 전담 전문의가 수술을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 ‘죽겠어 죽겠어’에서 ‘살고 싶어’

백관현씨의 왼쪽 팔에는 커다란 문신이 있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환자복 사이로 ‘rock it!'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전직 미술 선생님이다. 취미로 록밴드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은퇴를 하고 앞으론 맘껏 원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에 타투이스트가 되려고 문신을 배웠다. 왼쪽 팔 문신은 자신이 직접 새긴 것이다. 그런 그는 요즘 완치 후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상상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병원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이렇게 계속 치료를 받다 보니까 내가 이곳에서 받은 것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가 될진 모르겠어요. 환자들을 이송하는 일을 도와도 좋겠고요.”


석 달 전, 백씨는 신호를 위반한 차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골반이 완전히 골절돼 과다 출혈로 이어지고 패혈증까지 생겼다. 그의 아내 말에 따르면 “자가호흡이 안 돼서 에크모(인공심폐기)를 연결하고 링거를 12개씩 연결한 채로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한 달 동안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지난달 퇴원한 그는 최근 무릎뼈를 골반에 이식하는 2차 수술을 마치고 다시 ‘아웃 오브 베드(환자를 침상 밖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다. NMC 중증외상센터에 있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 일반병동은 본관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병동은 40병상, 준중환자실은 10병상을 확보하고 있다. 준중환자실은 중환자실처럼 바이털 사인 모니터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병상이 부족해서 환자를 받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일부 병실에는, 통상 복도에 있는 간호 스테이션을 병실 안에 두어 간호사들과 환자가 더 많이 소통할 수 있게 했다.


김희수 간호사가 휠체어를 탄 환자와 복도 끝을 오가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부터 오래 병상에 누워 있던 환자들은 몸을 추스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휠체어를 타고 잠깐이라도 움직이거나, 보조 보행기(워커)를 이용해 산책을 하는 간단한 행동이라도 근육을 붙이고 무뎌진 감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2월14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 일반병동에서 정효미 진료보조간호사가 외상환자의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그뿐 아니라 중증 외상으로 신체가 손상된 환자들은 몸이 회복되어도 우울증 때문에 침대 밖으로 잘 나오려 하지 않는다. “보호자 가족이 없는 환자들은 휠체어라도 타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상호작용이 없어지면 자포자기하는 분들도 많아요. 사고의 범주도, 외상의 수준도 다양한 분이 많다 보니까 ‘내가 이렇게 됐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하는 분들도 있고요(정효미 간호사).”


2024년 기준 NMC 중증외상센터 환자의 9%(67명)는 자살 자해 환자다. 자살 시도 후 외상을 얻게 된 이들은 더욱더 고립되려고 하기도 한다. 이들을 변화시킬 계기도 몸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일에서 시작된다. 정효미 간호사는 응급실 간호사로 근무하다 2년 전 NMC 외상센터에 오게 되었고, 현재 진료지원 PA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소생실에 환자가 오면 의료처치를 지원하고, 환자를 이송하는 등 예전부터 해오던 업무에 더해 이곳에서 처음 맡게 된 업무도 있다. ‘환자를 침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재활 지원이다.


재활의학과 의료진이 하는 전문적인 재활과 달리 이곳에서는 스스로 화장실을 가고, 양치를 하고, 옷에 단추를 끼우고, 밥을 먹을 수 있게끔 돕는다. 악역을 자처한 정효미 간호사는 “계속 괴롭힌 분들이 결국 좋아지더라”며 웃었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예요? 오후에 와서 산책하러 갈 거니까 일어나세요’ 하면서 오며 가며 쿡쿡 찔러요. 회복은 정말 주위 사람의 관심으로 이루어지더라고요. 때로는 환자가 듣기 싫은 얘기를 할 때도 있어요. ‘(병원) 밖에 나가면 지금처럼 간호사들이 안 도와준다’ ‘누가 안아서 화장실에 데려다줄 때까지 매번 기다릴 거냐’ 하거든요. 싫다는 분도 계시지만 나중에는 ‘너 언제 오냐?’ ‘와서 이거 가르쳐달라’ 하기도 하시고요.”




2월14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증외상센터 일반병동에서 정효미 간호사가 외상환자의 물리치료를 돕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가서 혼잣말만 하다 올 때도 많다. “오늘은 비가 오네요.” “오늘은 다섯 바퀴만 돌아볼게요.” 환자가 아무 말이 없어서 무뚝뚝한 자신의 말 몇 마디가 전부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별것 아닌 말들이 환자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안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손을 들고 인사를 해주거나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고 힘을 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도 ‘이 사람은 어떤 미래를 살게 될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2월14일 병동에서 만난 정효미 간호사는 ‘사라 컴빌라이저’라는 몸을 세우는 기계를 이용해 한 환자를 돕고 있었다. 커튼을 젖힌 창문으로 늦겨울의 맑은 햇빛이 병상을 채웠다. 백발이 성성한 환자는 분홍색 수면 양말을 신고 기계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삿바늘에 푸른 멍이 든 가느다란 팔로 간호사의 팔을 잡고 놓지 않았다. “죽겠어, 죽겠어” 하던 그는 어느 순간 “살고 싶어”라고 말했다. 마주 앉아 있던 정효미 간호사가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글·김다은/사진·박미소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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