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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야빛나송 작성일24-12-22 11:47 조회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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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엘벡의 작품을 읽으면 내 주머니 사정을 꼭 살펴보게 된다. 음식과 술 때문이다. 대단히 비싸고 사치스러운 미식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말하자면 “한국에서 저렇게 먹자면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즐기는 칼바도스나 아르마냑 한두 잔을 가끔 먹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한국에서 ‘프랑스식’ 미식은 비싸다. 어떤 작품이든 우엘벡은 자신의 음식 취향을 숨기지 않는다. 스시에 대한 기묘한 경멸(〈세로토닌〉)처럼 불편한 구석도 있지만 말이다. 하기야 소설 도입부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본인 애인 ‘유주’에 대한 경멸의 연장선에서 스시를 비꼬고 있기는 하다.


삼협농산 다른 얘기인데, 이 소설은 일본에서 발표되고 나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우리도 언제나 ‘한인’이 등장하는 외국 작품에 아주 민감한데 일본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는 늘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고 사는 나라니까(이제는 안 그래도 될 듯하지만). 유주는 자기 덩치만 한 명품 가방을 여행용으로 들고 다니고, 샴페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며, 매력적이지만 지적 교류 한국장학재단소득연계상환 를 하기에는 부족한, 우키요에(일본 에도 시대 풍속화)에 나오는 일본 여자처럼 작품 속에서 그려진다.


“유주는 늘 그렇듯 볼썽사납게 화장을 떡칠한 얼굴이었다…”


그뿐 아니라 유주는 화장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여자로 표현된다. 중 사금융연체기록 대한 스포일러라 여기서 쓸 수는 없지만 유주의 성적 취향에 대한 서술은 역겹게 느끼는 게 온당할 정도다. 그러니 일본인 독자들의 불편함이 왜 없겠는가. 주인공(플로랑)이 인종 불문하고 원하는 여자의 신체적 조건에 대한 언급은 나중에는 솔직히 좀 지친다. 내 친구는 나와 이 소설에 대해 문자를 주고받다가 ‘우엑벡’이라고 썼는데, 그건 오타가 아니라 그의 소설 월차 사유 이 주는 얼마간의 불쾌한 분위기를 비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엘벡의 글쓰기가 온당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역시 미식을 대하는 태도다.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그의 음식 취향을 만족시키려면 돈이 들 뿐이지, 유럽에서 그처럼 먹고 마시는 일은 중산층에서도 가능한, 그다지 요란스럽지 않은 취향 무직자당일대출 을 드러낸다. 더구나 이런 대목은 아주 반갑기까지 하다. 유주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을 여행할 때 식당을 가는 대목에서 나오는 서술이다.


“미슐랭 가이드 별 하나를 받은 호텔 식당에서 돈 아르강이 ‘존의 시장’이라는 메뉴를 통해 바스크 지방의 요리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요리들을 선보였다(볼드체는 원작이나 번역체에서도 동일하게 강조되어 있다). 근래에 웨이터들이 (···) 문학적인 허세가 가득한 어조로 아뮈즈부슈가 어떤 재료로 세심하게 구성되었는지 거창하게 읊는 기벽을 습득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호텔 식당들은 참을 만했으리라.” 미슐랭 가이드나 뉴욕에서 인기 있는 〈뉴욕타임스〉의 레스토랑 비평, 유럽 여러 나라들의 미식 평가가 사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벌이는지 아는 나로서는 차라리 이런 묘사들엔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아아, 저 지긋지긋한 ‘창의적인 재해석’이란 문장에 대해 우엘벡도 구토를 하고 있구나, 하고 동지적 연대를 보내고 싶은 대목이다.


프랑스 농업학교 출신으로 살아가던 주인공 플로랑은 우울증으로 ‘캅토릭스’라는 신약을 처방받는다. 그는 사랑과 연애에 여러 번 실패(?)했으며, 우울증 약의 부작용으로 발기부전도 겪는다. 그는 어느 날 아무런 암시 없이 자기 집에서 증발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그건 증발이라기보다는 농업학교 시절 사귀었다가 끝내 지키지 못했던 옛 애인에 대한 갈망의 복잡한 속내와 관련된 일탈이기도 하다. 그는 주로 흡연이 가능한 호텔을 찾으며, 그곳에서 장기 숙박을 한다.

농산물이 주요 소재로 나오는 이유

그건 유주로부터 탈출이기도 한데, 몬 산토에서 일하던 그는 새 직장으로 노르망디 지역의 치즈 등 유제품을 홍보하는 태스크포스 팀에 지원하기도 한다. 이 시도는 나중에 농업학교 시절 친구인 에메릭을 찾아서 노르망디에 찾아가게 되는 소설의 결말로 연결되는 이야기다. 에메릭은 고향인 노르망디에 돌아가서 자연적인 농법으로 소를 키우고 젖을 짜는 일을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끝내 비극적인 운명을 마주치게 되는 인물이다.


플로랑은 어쨌든 노르망디 3대 귀족 치즈인 카망베르, 퐁레베크, 리바로를 홍보하는 노르망디의 관청에 지원하게 된다. 소설에서 노르망디의 치즈는 자주 등장한다. 노르망디는 프랑스 최대의 고급 치즈 생산지이다. 카망베르는 우리도 아는 치즈이고, 브리도 그 지역의 주요 치즈다. 물론 미국에 이 치즈를 수출하는 일은 ‘미국의 프랑스 치즈에 대한 이해 부족과 무식함’으로 난관을 겪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도 좋은 유럽 치즈가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홍보나 소비 부족도 있지만 비가열한 생우유로 만든 치즈의 수입이 막혀 있어서다. 우엘벡이 실제로 농업 그랑제콜 출신으로 이 방면에 해박한 사람이라는 점도 소설에서 노르망디, 치즈 같은 농산물이 주요 소재로 나오는 단초가 된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산 살구 수입 개방으로 프랑스 살구 농업은 망할 거라는 이야기도 소설에 나오는데, 이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소설은 플로랑이 에메릭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파국으로 향한다. 이 장에서도 어김없이 유럽 사회의 병적인 포르노 문제나 동남아시아를 향한 성 구매, 소아성애를 누리는 어떤 미치광이의 설정을 끌어내서 조금은 나른해지는 독자들을 깨워버린다. 그러고는 에메릭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에메릭의 좌절과 패배가 친구인 플로랑의 시선으로 아프게 노출되는데, 자연 양계법의 실패나 우유 가격 문제 등이 주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우유 문제는 실제로 프랑스를 흔들었던 2018년 노란조끼운동의 과정에 속하기도 한다. 이 소설이 노란조끼운동보다 먼저 출간되었으므로 예언적인 소설로 더 널리 홍보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플로랑이 몰락해가는 에메릭을 찾아갔을 때 ‘너를 위해 앙두유(Andouillette) 소시지를 가져왔어’ 하고 말하는 장면은 음식이 인간관계에서 갖는 따뜻한 온도를 상징하는 대목으로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에메릭은 종말을 위한 전투에 쓰기 위해 사들인 돌격소총 등을 손질하며 플로랑을 맞는다. 플로랑은 분위기를 띄워보고자 둘 사이의 오랜 우정을 상징하는 서민적인 음식인 앙두유 소시지를 잘랐다.


“그는 외모가 변해 있었다. 퉁퉁해지고 코는 빨간 딸기코가 되었고, 무엇보다 시선이 섬뜩했다….”


소설에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우엘벡과 비슷한 연배의 서구 사람들이 핑크 플로이드에게 받았던 영향을 생각하면 그저 심심해서 핑크 플로이드가 나오는 것은 아닐 테다. 핑크 플로이드 하면 하드록을 떠올리지만, 이 노래는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슬프고 감미로운 곡이다. 여기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차일드 인 타임’도 거론된다. 소설을 읽다가 두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었다. 작가와 접점 하나가 생겼군,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랜트체스터 메도스〉(Grantchester Meadows, 1969)


“Icy wind of night be gone this is not your domain”


“밤의 시린 바람이여 물렀거라, 이곳은 너의 영역이 아니다”


In the sky a bird was heard to cry


하늘에선 새가 지저귀는 것이 들리며


Misty morning whisperings and gentle stirring sounds


안개 낀 아침의 속삭임과 마음을 울리는 부드러운 소리들이


Belied the deathly silence that lay all around


주위에 온통 퍼진 죽음 같은 고요함을 속이네


(후략)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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