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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즙수병햇 작성일25-01-12 21:58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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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어렸을 때 위인전을 많이 읽었는데,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1980년대 아동용 위인전에는 엉터리 교훈이 참 많았다.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근로기준법 야간수당 건 아무리 생각해도 본받을 일이 아닌데 그 시절에는 어린아이들에게 그걸 본받을 일이라고 가르쳤다.
내 경우에는 그 위인전들이 인생관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인생의 목표는 남들이 감탄할 만한 업적을 남기는 데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런 믿음을 지니면 업적을 남기지 않는 삶을 우습게 보게 된다. 그런 잘못된 태도가 마음 한 스탁론비교 구석에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흔적이 남아 있다. 김다혜씨를 인터뷰하는 동안 나는 그 위인전들이 내게 남긴 마음의 흔적을 의식했다.
다혜씨는 수도권의 한 시각장애 특수학교에서 일하는 교직원이다.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교직원 150여 명의 급여와 관련된 업무를 혼자 담당한다. 아마도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따 학사지원 위의 일에서 가장 거리가 먼 직업일 것이다. 다혜씨는 몇 년 전까지는 발달장애 특수학교에서 같은 업무를 했고, 그 전에는 중견기업 사무직 직원이었다.
“제 직업에서 즐거운 일… 즐거운 일이라. 즐거운 일이라기보다는 조금 좋아하는 일은 있어요. 4대 보험공단에서 납부해야 할 금액을 보내오는데 그게 제가 미리 공제한 액수랑 숫자가 맞아떨어지면 자동차할부저금리 약간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이게 숫자가 안 맞으면 선생님들한테 그만큼 돈을 더 받거나 돌려드려야 해요.”
30대 중반인 다혜씨는 조용한 성격이고, 말도 조용하게 한다. 성격과 직업이 닮았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급여 담당이라는 자리는,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는다. 사고가 날 때만 존재감이 드러나는 자리다. 많은 사람이 다혜씨의 일을 당연하게 비씨카드사 돌아가야 할 일로 여긴다. 업적을 세우는 날도, 감사 인사를 듣는 날도 없다. 하지만 다혜씨는 자신처럼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잘 맞는 일이라고 조용히 말한다. 예측 가능하고, 사람을 대하는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이 좋다면서.
“제 일은 월 단위, 연 단위로 돌아가요. 매달 초는 강사, 17일은 교직원, 30일은 시급제 근로자 급여 지급일이고, 10일은 사회보험료 납부일이에요. 수당 종류가 7, 8개 되는데 받으시는 분들의 직종이나 상황에 따라 금액이 달라요.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다니는 특수학교이다 보니까 다른 학교에는 없는 직종도 많죠. 예를 들어 셔틀버스가 많이 있어야 하고, 그 버스 운행을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어야 하고요.”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적용되는 부분도 있지만 다혜씨가 직접 손으로 계산해야 하는 사항도 적지 않다. 수령인이 병가로 쉬었더라도 어떤 수당은 그대로 지급되고, 어떤 수당은 쉰 기간만큼 제외한다. 초과근무수당은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수당은 명절이 있는 달에만 지급된다. 매달 정규 인사 변동자를 확인해야 하는데, 다혜씨가 일하는 학교는 다른 곳에 비해 채용과 퇴직 등의 수시 인사 변동이 잦은 편이다. 미룰 수도 없고 틀려서도 안 되는 일이라 마감 때면 늘 신경이 곤두선다. 1월 말부터 5월 초까지는 연말정산 업무 때문에 비상이 걸린다. 2월 말까지는 거의 매일 밤 10시까지 야근이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문의 전화가 진짜 끊이지 않고 오거든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요. 그리고 자료를 잘못 제출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잘못된 자료는 담당자 책임이 아니라 제출한 본인 책임이죠. 그분이 손해를 입어도 제가 누구한테 추궁당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한눈에 틀린 자료라는 게 보이면 그건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보완해달라고 부탁드려요. 안 그래도 되지만… 그냥 제 성격이 그래요.”
다혜씨가 일하는 학교는 국립학교이고, 다혜씨도 국가직 9급 일반행정 공무원이다. 공무원 시험은 노량진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합격했다. 20대 후반의 일이었다. 당시 경쟁률은 100 대 1이 넘었다.
“대학에서는 외국어를 전공했어요. 대학을 다닐 때는 제가 공무원이 될 줄 몰랐고, 첫 직장도 전공을 살려서 들어간 곳이었어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특수학교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이 싫어서 큰맘 먹고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어요. 그런데 지금도 반복적인 업무를 하고 있네요.”
국가직 9급 일반행정 공무원은 어느 부처에서도 일할 수 있다. 원하는 부처에서 일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부처의 공석에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먼저 공석이 나야 하고, 같은 자리를 지원하는 경쟁자들보다 점수가 높아야 한다.
“1지망은 문화체육관광부였어요. 그런데 경쟁률이 높은 부처라서 배정되지 못했죠. 교육부가 2지망이었는데 본부에는 자리가 없고 산하기관에만 갈 수 있더라고요. 국립대랑 특수학교에 빈자리가 있었는데, 특수학교를 택했어요. 지원할 수 있는 국립대가 너무 먼 곳에 있더라고요.”
다혜씨는 이전까지 발달장애와 시각장애를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도 잘 모른다’고 조용히 말하는 사람이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에 대해서는 “처음 갔을 때는 놀라기도 했고 아이들을 쳐다보게 되기도 했는데…”라며 말을 잠시 흐렸다가 “귀여운 아이들이에요”라고 문장을 마쳤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에서 시각장애 특수학교로 옮겼을 때는 학교가 무척 조용하다고 느꼈다.



다혜씨가 사용하는 계산기와 달력이다. 다혜씨는 “흔한 물건이지만, 이게 제 일을 제일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실물 계산기와 종이 달력이 컴퓨터 앱보다 더 편하다고 한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혼자서도 다닐 수 있으니까 복도에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이 벽을 짚고 다니니까 행정실에서 복도로 나올 때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야죠. 바로 앞에 학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앞이 조금 보이는 아이도 있고 아예 안 보이는 아이도 있어요. 비장애인으로 태어났는데 사고로 시력을 잃은 아이들도 있고요.”
다혜씨가 일하는 건물에는 중고등학생 교실이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복도에서 수다를 떤다. 수다 내용은 눈이 보이는 아이들과 다르지 않지만, 서로 보지 못하는 아이들의 대화는 좀 더 간절한 느낌이다. 지금 누구 왔어? 우리 어디 갈까?
다혜씨는 구내식당에서 보통 유치원생들이 먹는 시간에 함께 점심을 먹는다. 다혜씨가 식사하는 테이블 옆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말을 건다. 누구야, 이건 무슨 반찬이야, 맛있어, 먹어봐. 다혜씨는 그런 대화를 들으며 자기 몫의 밥을 꼭꼭 씹는다.
시각장애 특수학교 교사들 중에는 시각장애인이 있고, 때로 그 선생님들이 그를 찾아와 자기 급여와 수당에 관해 묻는다. 도표를 보여줄 수 없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장애인의 노동을 도와주는 근로지원인과 함께 오는 시각장애인 선생님도 있다. 그럴 때는 근로지원인만을 향해 설명하지 않으려 애쓴다. 설명을 마치고는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근로지원인 양쪽 모두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꼭 확인한다.
다혜씨의 일터인 특수학교는 앞으로 일터를 찾아야 하는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에는 아이들이 바리스타 보조 업무를 실습할 수 있는 교내 카페가 있었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에서는 침술과 안마를 가르친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에는 교과목이 따로 없지만 시각장애 학생들은 비장애인 학생처럼 여러 과목을 배운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미술 과목도 있다.
학부모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다. 매일 아침 아이를 교실까지 데려다주는 어머니나 아버지도 있다. 그러나 1층에서 헤어지면서 아이들이 혼자 계단을 이용하도록 이끄는 부모도 있다. 그 아이들이 앞으로 수많은 계단을 만나야 할 터이기에. 어느 날부터는 자신들이 곁에 있어 줄 수 없을 것이기에.
어느 학교나 교사들과 행정실 사이에는 얼마간 갈등이 있다. 특수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반 학교건 특수 학교건 학교의 역할이 커지면서 업무가 늘어나거나 새로 생기는데, 그게 누구 몫인가에 대해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의 생각이 같지 않다.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지침도 명료하지 않다. 학교에서 일한다고 해도 역시 사람인지라, 교사건 행정실 직원이건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래도 교무 선생님들이 총동문회 행사를 준비할 때 행정실 직원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 일을 도왔다. 행정실장이 먼저 교사들에게 “일손 모자라지 않으세요? 저희가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하고 물었다. ‘우리가 왜 교사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반대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시각장애인들이 옛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 큰 위안을 얻는 행사였다. 졸업생 중에는 연로한 분도 있고, 시각장애뿐 아니라 다른 장애도 지닌 중복장애인도 있었다.
다혜씨는 건물 입구에서 강당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행사 전에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요령을 다시 확인했다. 무작정 도우려 들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을 것, 자신을 도와달라는 사람만 안내할 것, 자신이 어느 편에 서는 게 편한지 물어볼 것, 반걸음 앞에 서서 상대가 팔꿈치 윗부분을 잡을 수 있게 할 것.
“그런데 건물 입구랑 강당이 워낙 가까워서 다들 그냥 알아서 잘 찾아가셨어요. 그분들이 다닌 학교이기도 하고요.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분도 안 계셨네요.”
다혜씨는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라며 조용히 웃었다. 그녀는 다음 행사에서도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복도 한구석을 지킬 것 같다.
총동문회 행사장은 시끌시끌했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졸업생들이, 자신과 같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만난 이들이 웃고 떠들었다. 다혜씨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복도 한구석에 조용히 서 있었다. 업적을 세우지도, 감사 인사를 듣지도 않았다. 아무 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날, 그저 당연한 하루였다.



장강명 작가


그런 날 오가는 수다를 1980년대 어린이용 위인전은 다루지 않았다. 그런 수다를 위해 복도를 지키고 서 있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런 위인전에는 실리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 위인전들을 원망한다. 이제 나는 가만히 복도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이름과 지역 등 일부 사실을 변경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장강명 작가

장강명 l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아내 김새섬 대표와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 www.gmeum.com)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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