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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최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집계가 시작된 196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요즘 사람들은 한 끼에 평균 밥 반 공기 정도로 버티고 있다. 반면 돼지, 소, 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1인당 60.6㎏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
우리 경제의 산업화는 외식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를 가져왔다. 20년 전만 해도 식탁에서 볼 수 없었던 아파트 매매 취득세 브로콜리, 셀러리, 파프리카가 등장하고 식당에선 부대찌개, LA갈비와 같은 정체가 모호한 음식들이 팔리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배달 음식의 소비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
한 시대의 음식문화 발전에는 항상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들은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개발하고, 그것을 즐기며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식기와 햇살론프리워크아웃 식탁예절을 도입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오늘날의 음식문화를 만든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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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루어핑이 그린 원매 초상 (사진=취리히 대학)
◇사치로 절정을 달리던 ‘중국음식’
명나라 말에서 청나라 중기에 이르는 약 200년은 중국음식이 사치의 절정을 달리는 시기였다. 채식을 우선으로 강조하던 명나라에 예금과 적금 서 청나라로 넘어가면서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해삼, 전복 등 이른바 산해진미를 우선으로 하는 호화풍조가 유행했다. 그 시절 선비들이 남긴 기록에는 음식을 위해 가산을 탕진하고, 사물을 낭비하는 풍조를 개탄하는 글이 적지 않다. 청나라 중기의 진굉모는 ‘풍속조약’에서 “모두 희귀하고 기이한 것만 숭상하고 산해진미도 각각의 재료에 맞는 요리법을 적용해 다양한 현대스위스 음식을 내놓으니 연회 한 번에 많은 비용을 쓴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작은 모임에도 중인들이 연 수입을 다 쓸 정도로 낭비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만한전석도 이 시기에 나온 것이니 더 이상의 부언은 필요가 없지 싶다.
사치풍조 속에서도 당시의 문화 중심지였던 강남지역의 선비들은 그러한 세태를 경계하고 참된 맛을 연구하는 모임을 결성한 흔적도 남아 있다. 중국의 요리책도 이 시대에 출간된 것이 전체의 3분의 2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1792년에 시인 원매(袁枚, 1716년~1797년)가 저술한 ‘수원식단(隨園食單)’은 당대의 음식을 총망라한 것으로 중국요리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절강성 항주 출신으로 2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한림원 학사가 됐다. 지방관으로 10년을 떠돌면서 관직에 환멸을 느낀 그는 부친의 상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러고는 남경의 소창산에 엄청난 규모의 저택과 정원을 조성해 ‘수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자신의 아호도 ‘수원노인’이라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저술 작업과 후진양성을 하며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교유하고 미식과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지냈다.
원매는 아주 특이하고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심덕잠 일파가 주창한 복고주의적 격조설에 맞서 “시는 인간의 감정을 진솔하게 노래해야 한다”는 성령설(性靈說)을 주장했다. 원매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해 유교적 예교주의 통념과 도덕적 문학관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며 보수 시단을 비판했다. 원매는 당시의 지식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여성 제자를 수십 명 키웠고, 그들과 교유하며 시회를 열기도 했다. 여성들의 작품을 높이 평가해 자신의 문집에 상당수를 수록하기도 했고 그들을 위해 ‘수원여제자시선’을 편찬해주기도 했다. 이런 대담한 행동과 진보적인 문학관은 당시 문단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그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소득 전업 작가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호사와 애정행각을 즐기고 살았다.
상어 지느러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단에 큰 영향 미친 ‘원매’, 요리법 집대성하다
원매는 일생 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소창산방시집’, ‘수원시화’ 등 총 10종 180여 권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이다. ‘청대건가삼대가’(淸代乾嘉三大家)의 일인으로 일컬어지며 성령파의 거두가 된 그는 청나라는 물론 조선 후기 시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서 원매의 성령관을 최초로 수용한 흔적은 1778년에 출간된 이덕무의 ‘청비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연암 박지원과 이옥, 홍석주, 김정희, 조두순 등이 원매의 문학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19세기 들어 등장한 조희룡, 정지윤, 최성환 등 중인층 시인들도 성령관에 기대어 신분으로 차별받는 자신들의 비통한 심정을 시로 표현했다.
원매의 저술 중에서 특이한 것은 음식에 관한 책 ‘수원식단’이다. ‘수원식단’은 원매가 40여 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즐긴 각종 음식의 요리법을 집대성한 방대한 저작이다. ‘수원식단’은 총 14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요리사가 꼭 알아야 할 항목과 요리사 경계해야 할 항목을 언급한다. 다음으로 해물, 돼지고기, 물고기 등 11개 종류에 달하는 식재료의 요리법과 마지막으로 차와 술에 관한 항목이 나온다. 책에 수록된 요리법만 무려 362가지다. 원매는 책의 서문에 공자 같은 성인이 남의 하찮은 기예라도 훌륭한 것은 취했던 자세를 사모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도 “남의 집 음식이 맛있으면 반드시 자신의 요리사를 그 집 주방에 보내 제자의 예를 갖추고 배우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로 오랜 세월 많은 요리법을 수집했다. ‘수원식단’은 요리에 대한 공경의 뜻과 배우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룬 결과물이다.
전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리에 대한 원매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음식을 탐구하는 자세는 학문을 연구하는 정신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요리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항목의 첫째로 “식재료의 성질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같은 식재료라도 품질의 좋고 나쁨이 숯불과 얼음만큼의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맛있는 요리는 요리사의 공로가 6할, 재료 구매의 공이 4할이라 했다. 그런 다음에 양념과 씻는 방법, 화력, 색과 향, 그릇, 내는 순서, 위생관념 등을 거론하고 제철에 맞는 식재료의 사용을 강조한다. 끝으로 본분을 알아서, 좋은 것만 따지지 말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음식을 요리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솜씨를 따르지 않고 남의 것을 모방이나 하다가는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도 그리지 못하는 꼴이 된다고 경고한다.
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리사가 경계해야 할 14가지 항목 제시해
원매는 또 “음식의 폐단을 없앨 수만 있다면 요리에 대한 도의 경지가 반은 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리사가 경계해야 할 항목 14가지를 제시한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금과옥조지만 귀로 먹는 것과 눈으로 먹는 것을 주의하라는 대목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귀로 먹는 것은 맹목적으로 음식의 이름만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귀한 식재료만 탐하는 것은 귀로 먹는 것이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맛있는 두부는 제비집보다 풍미가 뛰어나고 맛없는 해물은 신선한 나물보다 못한데도, 명성 있는 재료만 찾는 세태를 통렬히 꾸짖고 있다. 눈으로 먹는 것은 음식의 양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맛도 없는 음식을 많이 차려내는 것은 눈요깃거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아가서 재료의 본 맛을 살리라 했고 지나치게 가공하는 것을 삼가라고 했다.
제비 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원식단’에는 다양한 식재료의 요리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그 상당수는 원매의 요리사였던 왕소여(王小余)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왕소여는 그의 요리냄새를 맡으면 열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모두 놀란다고 할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다. 그는 그 대단한 재주로 중국의 역사에 남은 요리사인데 원매는 그를 총애했고 그와 자주 음식에 관해 토론했다. 왕소여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원매는 식사 때마다 그를 그리워하며 울었다고 한다. 원매는 그를 기리기 위해 ‘요리사 왕소여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일본의 중국문학자 이나미 리츠코(井波律子)는 호화로운 정원에 살며 자유롭고 풍족한 생애를 보낸 원매를 ‘도시형 은자’로 분류했다. 그녀는 또 그를 “유난히 스케일이 크고 일종의 요기를 발산하는 괴물 은자”라고도 했다. 원매처럼 마음 가는 대로 주유천하 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산 사람을 권력에서 일탈했다고 굳이 은자의 범주에 넣은 것은 너무 분석의 틀에 맞추려 한 시도가 아닐까. 심지어 노신은 원매가 전통에는 도전했지만 그의 시작들은 대부분 유람하며 감상한 경관과 자지레한 사물을 읊은 것으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결여돼 있다고 했다. 이 또한 사회적 금기를 거부하며 유유자적의 생애를 보낸 시인을 격동기 사상가의 잣대로 재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문을 하게 만든다.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
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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