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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차범석 평전'을 펴낸 전성희 교수가 12권으로 묶어 펴낸 '차범석 전집' 등 차범석 선생 관련 책들이 가득 꽂힌 연구실 서재 앞에 섰다. 전 교수는 "선생은 연극을 할 땐 호랑이같은 독설가였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아내와 가족을 아끼고 사랑한 로맨티스트였고, 좋은 자리에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출 줄 아는 흥이 많은 분이었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경찰야근수당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차범석(1924~2006) 선생이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 한국 드라마학회장과 차범석학회장을 지낸 전성희(65)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이달 초 선생의 80여년 연극 인생을 조명한 ‘차범석 평전’(태학사)을 펴냈다. 2017년 초 우리 연극사이 권위자 유민영(87) 단국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전집 발간 채무불이행정보 위원회가 구성된 뒤, 햇수로 8년간 ‘차범석 전집’(전 12권) 등을 펴내며 간단없이 노력한 끝에 나온 첫 평전이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의　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선생의 삶을 “연극을 향한 헌신, 연극을 위한 순교”라고 정의했다.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연극에 미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연극을 위 필요함 해 안락한 삶과는 평생 거리를 두시면서도, 3남 2녀 생활비와 학비를 오로지 글을 써서 충당했으니, 고료가 들어온다면 원고 청탁은 거절하는 법이 없으셨죠.”



극작가 차범석(1924~2006) 선생의 200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시절 모습. 그는 평생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은행이자 계산법 썼다. /조선일보DB


그는 “그래서인지 찾으면 찾을수록 선생이 쓰신 글과 자료가 계속 나왔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제일 힘들었다”며 웃었다. 1년에 몇 차례씩 전남 목포 문학박물관의 차범석관 수장고에 내려가서 길게는 열흘씩 머물며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차범석 선생은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의 부부창업 초기 1~49화 대본 대부분을 써서 인물과 이야기의 틀을 세우기도 했다. “누런 갱지로 묶여 곧 바스라질 듯한 전원일기 초기 대본을 휴대폰 카메라 사진 3300장으로 찍어서 ‘차범석의 전원일기’(전 3권)로 펴낼 수 있었어요. 당시 ‘한국의 소피아 로렌’으로 불리던 고(故) 김수미 배우를 ‘일용 엄니’ 역으로 파격 캐스팅한 것도 선생이셨습니다.”
사실주의 희곡의 걸작 ‘산불’(1985)의 극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전 교수가 보기에 차 선생은 “수십년쯤은 시대를 앞서 간 분”이기도 했다. 그의 희곡을 관통하는 것은 소외와 차별을 겪는 사람들과 소수자들을 향한 따뜻한 연대의식. ‘열대어’(1966)엔 미국 유학 갔던 아들이 데려 온 흑인 며느리가, ‘장미의 성’(1968)엔 동성애자가, ‘옥단어!’(2003)엔 지적 장애를 가진 날품팔이 여인이 등장했다. 당대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뒀던 연극 ‘갈매기떼’(1963)는 이데올로기와 전쟁이 사람과 삶을 어떻게 황폐화했는지 탐구했다. “한강 작가가 탐구한 ‘역사의 폭력성과 그에 맞선 연대’라는 테마는 선생의 희곡에도 이미 명징하게 흐르고 있어요. 시대를 뛰어 넘어 살아 숨쉬는 문제 의식과 이야기로 다시 읽히길 바랍니다.”



2006년 12월 19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차범석 연극재단 발족식 모습. 차범석 선생의 부인 박옥순 여사(앞줄 가운데)와 가족들이 차 선생이 남긴 자택을 처분해 기부하면서, 국내 가장 권위있는 희곡상인 차범석희곡상을 주관하는 이 재단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박 여사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출가 임영웅, 배우 백성희,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 배우 전무송, 차 선생의 차남 순규, 극작가 윤대성, 하철경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극작가 노경식, 소설가 이세기,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호동 국립극장 운영위원, 유민영 연극평론가, 김수용 영화감독, 차 선생의 장녀 혜영씨. /조선일보 DB


라이선스 개념도 없던 시절의 번안극이나 유학파들이 주도한 실험극 위주의 연극계 분위기에서 ‘극단 산하’를 창단해 ‘대중극’을 주창하고, 끊임없이 창작극을 쓰고 무대에 올리며 우리 현대 연극을 정착시킨 것도 제대로 평가돼야 할 선생의 공이다.
전 교수는 평전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차범석의 일생은 오로지 연극에 대한 헌신이었다. 그의 삶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목포의 수줍음 많은 소년은 불나방처럼 연극에 자신을 던져 타올랐고, 차범석은 한국 연극의 거대한 산맥으로 남았다.”



전성희 저 '차범석 평전' 표지. /태학사